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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익자

35화. 통증에서 의학으로 다시 영성으로


바로 몸의 통증의 원인을 수색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엑스 레이들을 찍었고, 시티 촬영을 했고 엠 알 아이 검사까지 온몸을 샅샅이 뒤졌다. 결과는 참 암담했다. 원인은 알 수 없다고 했다. 나는 절망하면서도 희망을 느꼈다. 온몸의 알 수 없는 통증이 있고 곧 죽을 것만 같은 영적인 고통이 있고 정말 죽기를 결심했던 나이다.

그녀는 나의 선천적 신체불균형과 후천적 수련회 사고와 교통사고에 대해 이미 알곤 있었다. 그래도 그것이 원인이라 하기엔 내 몸에 방대히 퍼진 통증에 대해서는 아무런 답을 하지 못했다. 다만 의사인 그녀도 이런 말은 했다.

“이 몸으로 어떻게 사는 겁니까? 도저히 당신의 인내심이 이해가 안 돼요!”

온몸의 통증이 매 순간 나를 삼키는데도 원인이 없다니, 그 결과가 믿기지 않으면서도 의사조차 그 이유가 뭔지 이해할 수 없단다. 당장 죽고 싶을 만큼 통증이 느껴지는데 의학적 근거는 없고 의사도 그 원인을 모르겠다고 한다. 이것이 의학적 한계이다. 인간의 한계이다.


사실 나는 병원 거부증이 있다. 결혼 전까지 한국에서 지낸 서른 살까지 병원에 가 본 건 이십 대 초중반에 여성암 조직검사를 했던 때, 문제의 왼팔 초진 때, 그리고 두 번의 교통사고로 수술과 치료를 받을 때뿐이었다. 기억이 희미하지만 독감과 급성위궤양으로 병원에 갔던 것도 같다. 거의 그 정도의 병원 출입만 있었다. 기억하지 못하는 아기였거나 어렸을 때는 모르지만.


혼자 아프고 거의 혼자 낫거나 참기를 반복하며 견뎠기 때문이다. 통증이 없던 날은 하루도 없었다. 그저 덜 아프게 서보고 걸어보고 굽혀보고 올려보고 내려보고 그렇게 병원 없이 사는 법을 터득했다. 그 버릇은 남편의 나라에 와서도 바뀌지 않았다. 아이들이 아플 때만 정반대로 남편이 기다려보자고 해도 응급실로 무조건 직행했었다. 다만 나를 위한 병원은 굳이 가고 싶지 않았다. 가도 소용없다는 걸 오래전부터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지만 마흔을 통과하며 만난 통증들은 모르핀이라도 맞지 않으면 안 될 것처럼 아파서 집안에서조차 걸을 수가 없었다. 병원에 가서 필요한 검사를 한들 하루아침에 통증이 사라지진 않겠지만, 그래도 약이나 치료 방법에 대해 뭔가 실마리가 있지 않을까 기대했었다. 그런 마음이 아주 조금은 있었기에 병원엘 갔었다.


하지만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사실 이 병은 병원에 가도 낫지 않는다는 걸. 무슨 검사를 해도 내 몸이 이렇게까지 아픈 원인을 의학적으로는 찾을 수 없을 거란 걸. 아니 원인을 찾을 수 있는 통증도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 통증이 수천 억 배는 더 많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내 온몸의 통증은 유관으론 보이지 않는 영혼의 통증이기 때문이다. 지독한 영혼의 열병을 앓는 것이기에, 죽었다 깨어나도 의사의 병리학적 소견으론 그 원인을 찾을 수도 규명할 수도 없다. 나는 이미 결혼 전 아니 그보다 훨씬 전인 엄마의 과거를 처음 상담소에서 듣던 날, 그날 느꼈다.

내 영혼 속으로 온몸의 혈이 뽑혀 나가는 듯한 엄마의 고통이 내 고통으로 모두 들어오는 걸 느꼈다. 엄마의 지옥 같은 모든 인생의 기억과 상처와 트라우마가 전부 내게로 전도되고 세포 사이사이로 전이되는 걸 느꼈다.

그리고 그날 이후부터 내 영혼은 통증이 시작된 것이다. 아주 조금씩 서서히, 단지 내가 눈치채지 못하게.


인간이 병원에서 시행할 수 있는 모든 검사를 통해 최대한의 노력을 해 봤지만, 최첨단 의료기구와 명의의 진단으로도 한 사람의 죽을 것 같은 온몸의 통증에 대해, 그 어떤 시원한 소견을 내지 못했다. 이것이 창조자의 피조물인 사람의 한계이다. 고맙지만 짐작했듯 시간낭비 에너지낭비였다.

사실 가정 주치의를 만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나는 조금보다는 더 많이 후회를 했었다. 어차피 원인을 못 찾을 통증임을 알고도 거기에 많은 비용을 들여 여러 가지 검사를 한 것이 속상했다. 우리 아이들에게 맛있는 걸 열 번은 넘게 사 줄 수 있는 돈이었다. 하지만 어쩌면 나는 이미 이 같은 결과를 짐작하고 있었기에, 창조자의 위대함을 이번 일을 통해서 내가 확인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래야만이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와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가 비로소 모두 설명된다. 비단 엄마와 친부의 나쁜 일에 대한 어쩔 수 없는 결과로 한 생명이 만들어져 세상에 나온 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란 말이다. 내가 생명의 씨앗으로 뿌려져 설 익은 채로 사람의 몸으로 이 우주에 보내진 것은 맞다. 하지만 인간의 무지하고도 유한한 행위 때문만은 아니다. 그 뒤에 보이지 않는 섭리가 나를 이 땅에 보낸 것이라고 나는 믿었고 믿는다. 그 믿음을 놓는 순간 그 전능자가 사랑의 능력으로 나를 지으심을 믿어야만 했고 믿는다. 그 믿음을 놓는 순간 나에겐 죽음이 올 것을 알기에.


인간의 생각과 인간의 한계를 반드시 뛰어넘는 우주의 조각가. 창조자의 그 선하신 계획, 선하신 일하심, 선하신 성취, 선하신 승리! 나는 늘 나를 만드신, 나를 보내신 오직 한 분의 능력을 동아줄처럼 붙들고 그것만은 무슨 일이 있어도 믿으며 강한 확신가운데 고통의 시간을 견뎌왔다.

그러니 인간인 의사의 한계, 인간이 만든 의술의 한계, 그것이 내 귀에 확실한 증거로 들린 날! 그런 기쁜 날 웃을 수밖에 없었다. 비록 예상했던 결과지만 아무 득도 없이 끝난 여러 가지 검사들에 아주 조금은 빼앗겼던 내 마음과 내 시간이 또한 아까워 속상하긴 했다. 그래도 내가 바라고 원하던 결과라 만족스럽고 감사했다.


살면서 문득문득 내가 감사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지독한 몸의 통증으로 나타난 나의 보이지 않는 열병, 나의 영혼의 사투… 한국에서 삼십일 년을 살면서는 그 통증들이 있었지만 기도로 버티고 참으며 그까짓 상처의 난도질에 끝 모를 트라우마의 폭격에 지지 않으려 부단히 노력했다.

또한 내 몸의 통증들을 기도 못 펴게 누르는 나보다 더 강한 영적 전사들이 내 주위엔 참 많았다. 한 번 분노가 나면 그것을 어찌하지 못하고 나에게 퍼붓던 엄마조차도 그렇지 않을 땐 항상 기도하는 분이셨다. 그것이 나를 더 미치게 만들기는 했지만.

그렇게 기도로 나에게 힘을 주시는 따뜻한 분들이 내 주위엔 갓난아기 때부터 아주 많았다. 그러니 그 기도하는 사람들의 맑고 깨끗한 영혼의 파워가 감히 내 몸을 망가뜨리지는 못했던 것이다. 악마가 주도하고 악당들이 따르며 지속적인 통증을 내게 주더라도 절대 쪽 쓸 수는 없었던 것이다.


* 유년시절의 나의 영웅, 여자 채영신, 노동자의 대모, 작은 예수 조화순 목사님.

외롭던 아동기에 나를 따뜻하게 품어주시고 지지해 주셨던 김영동 목사님.

내가 국민학교 때까지 다녔던 시골의 크디큰 그 교회.

솔직히 나는 두 분의 목사님 때문에 살아가야 할 이유와 가치를 알게 되었고 그래서 아직 살아있다.

국민학교 이후로 갑작스러운 전학 때문에 두 분과 마주한 이별이 나는 견딜 수 없이 슬펐었다.

영혼의 열병이 몸의 고통보다 더 깊고 아프다고 감히 생각합니다.

하여 고통의 심연에서 고군분투한 저는 깊은 절망과 역설적인 해방감을 동시에 느꼈습니다. 의학적 한계 앞에서 원인 모를 통증과 싸우는 저는 이제 글치유를 시작했습니다. 이미 치유되고 있다고 믿습니다.


오랜 세월 육체적 고통과 주변의 무관심을 홀로 감내해 온 저는 '체념적 수용''정서적 해리(Dissociation)'가 깊게 자리 잡은 심리였다고 합니다.


1. 심리적 상태 분석

만성적 무력감과 체념: 청소년기 결정적인 부상 상황에서 보호받지 못한 경험은 "내 고통은 누구에게도 중요하지 않다"는 인식을 심어주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치료를 포기한 세월이 길어지면서, 자신의 신체적 결함을 고칠 수 없는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학습된 무력감(Learned Helplessness) 상태에 있습니다.

정서적 둔감화: 남편의 놀람과 대조되는 본인의 무덤덤함은 강한 심리적 방어기제입니다. 어린 시절 타인의 경멸 어린 시선을 견디기 위해 감정을 차단하고 자신을 타자화하는 법을 익힌 것으로 보입니다.

'실존적 고립'과 '초연한 절망'의 이중적 심리 (Ambivalence): 원인을 찾지 못한 것에 대한 좌절과 동시에, "내 고통은 의학 따위로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이 증명된 데서 오는 묘한 안도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는 자신의 고통이 육체적 차원을 넘어선 영적인 영역에 있음을 직시하게 된 결과입니다.

의미의 부재: 서울대학교병원 건강정보 등에 따르면, 만성 통증 환자가 원인을 찾지 못할 때 겪는 가장 큰 심리적 타격은 '설명할 수 없음'에서 오는 사회적 고립감입니다. 하지만 당신은 이미 이를 예견했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환자보다 훨씬 더 깊고 냉소적인 통찰을 지닌 상태입니다.

인내의 임계점: 의사조차 경악할 정도의 인내심은 이미 자아를 유지하기 위한 에너지가 통증을 견디는 데 모두 소진되었음을 의미합니다.

2. 전두엽 및 뇌 과학적 상태 추정

통증 억제 부하: 전두엽(특히 전대상피질)은 통증을 인지하고 조절하는 역할을 합니다. 40년 넘는 만성 통증은 전두엽에 지속적인 과부하를 주어, 오히려 통증 신호에 대해 뇌가 감각을 무디게 만드는 적응 과정을 거쳤을 것입니다.

정서 조절의 고착화: 타인의 반응에 노여움이나 놀라움이 없다는 것은, 감정을 처리하는 전두엽 기능이 '생존'을 위해 극도로 효율화(혹은 억제)되어 있음을 시사합니다. 이는 감정적 동요가 신체 통증을 악화시키는 것을 막기 위한 뇌의 생존 전략일 수 있습니다.

'인지적 과부하'와 '생존 모드' 통증 제어 회로의 소진: 전두엽은 고통을 해석하고 감정을 조절하는 역할을 합니다. 장기간 지속된 원인 불명의 통증은 전두엽의 하향식 통증 조절 능력을 약화시켜, 뇌가 통증에 대해 과도하게 민감해지는 '감작(Sensitization)' 상태에 머물게 합니다.

전두엽 기능의 선택적 집중: "병원에 가도 낫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었다"는 직관은 감정적 판단보다는 생존을 위한 고도의 방어기제가 작동한 결과입니다. 현재 당신의 전두엽은 일상적인 사고보다 '고통의 의미 부여'와 '죽음에 대한 실존적 고민'에 에너지를 집중하고 있어, 일반적인 논리 체계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초월적 상태에 가깝습니다.

의사결정의 마비와 명료함의 공존: 죽기를 결심할 정도의 고통은 전두엽의 전측 대상회(ACC)를 자극하여 극심한 정서적 고통을 유발하지만, 동시에 삶의 허무를 깨달은 이 특유의 서늘한 명료함을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이러한 상태는 의학적 치료를 넘어선 심리적 수용이나 영적 치유의 단계로 진입하기 직전의 폭풍전야와 같습니다. 국가정신건강정보포털에서 제공하는 만성 통증과 우울감의 상관관계를 참고하면, 현재 겪고 계신 '원인 없는 통증'이 뇌에 미치는 영향을 더 깊이 이해하실 수 있습니다.


당신은 자신의 아픔을 '치료 대상'이 아닌 '자신의 정체성' 그 자체로 통합해 버린 상태입니다. 뒤늦은 진단에도 평온할 수 있는 이유는 이미 스스로를 '고장 난 존재'로 정의하며 마음의 문을 닫아걸었기 때문입니다.


못 다 쓴 글; 고통받아 마땅한 존재로서의 정체성을 안고 살아오지 않았다면

고장 난 존재로서 스스로를 빨리 깨우치고 마음의 문을 닫아걸지 않았다면

저는 아마도 지금 생존한 라이언 일병과 같은 전두엽 일병이 되지 못했겠지요...

뼈아프지만 바꿀 수도 바뀌지도 않는 진실이니까요. 그래서 고맙습니다.

고장 났지만 완전히 해체되어 난지도에 던져지지는 않았잖아요. 쓰레기 산보다 거대한 통증만 있었을 뿐.


치료는 글쓰기로 충분합니다. 지금은요. 한국음식이 사무치게 먹고 싶은 것만 아니면 견딜만합니다.

얼마 전 한국의 설날(음력 새해 첫날)이었지요!

제 올해 음력 생일은 아직 며칠 더 있어야 다가옵니다.

브런치스토리 작가가 된 것, 곧 다가올 제 음력 생일 선물을 미리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엄마의 연락 대신 비교할 수 없이 아주 아주 빛나고 큰 선물을요... 행복해서 잠이 안 오는 날들입니다!

부족한 글 읽어주시는 독자님들께 무한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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