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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익자

39화. 똑똑. 용기 내어 두드린 문


과거의 기억에 대한 의문과 현재의 고통에 대한 정답을 찾고자 한국에 오면 꼭 정신건강의학과를 찾고 싶었다. 상담 치유 프로그램과 집에서의 삶과의 깊은 괴리 때문에 치유를 받는 건지 더 상처받는 건지 예전엔 그 사이에서 늘 혼란스러웠다. 상담치유소에서의 희망고문과 크고 작은 말들로 받는 상처 그리고 엄마와의 뒤틀린 관계로 불안한 집에서의 생활이 너무나 괴로웠다. 솔직히 위치만 다를 뿐 두 곳 모두 창살 없는 감옥처럼 느껴졌다.


치유의 시작과 끝은 내면의 변화와 일상의 변화를 통한 자아의 성찰과 성장과 삶의 성숙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자신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수용하며 사랑하게 되는 상처와 자신과의 매듭이 매우 중요하다. 다만 변화와 성장을 실현할 환경과 상황이 그때 한국에서는 여의치 않았다. 지금은 한국어로 의사와 소통할 수 있으니 물리적으로 진정한 치유 시간은 지금이라고 믿는다.

캐나다에서 지내며 더 깊어진 무기력과 우울증 신경과민에 대해서도 궁금한 것이 많다. 무엇보다 성인이 된 후 극장에서 영화관람이 어려울 만큼 음향효과에 극도로 예민한 원인이 뭔지 알고 싶다. 또 남편이나 아이들이 조금만 목소리 톤이 높아지거나 목소리가 커지거나 싸우거나 울거나 하면 미치도록 고통스러운 원인이 무엇인지 너무도 궁금하다.


구치소에서 행패부리던 남자와 울던 어린아이 그리고 두려움에 떨던 엄마를 보고 내가 그토록 괴로워하다 혼절한 이유도 알고 싶다. 나는 어느 정도는 그 이유를 알고 있다. 십 년 가까이 상담치유소에서 배우고 느끼고 경험한 임상에 의해 이미 머리로는 다 알고 받아들인 부분이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높은 톤의 목소리와 큰 목소리로 자신에게 말하는 것과 아이들의 싸우는 소리와 울음소리를 나는 몸서리치게 싫어한다. 오로지 그 상황만은 절대 못 견디겠다. 굉장히 심각할 정도로 그 상황을 피하고 싶어 한다. 그런 상황에 노출될 때마다 마치 죽음과 같은 고통을 느낀다. 그것이 과거의 상처로부터 기인했다는 것은 나도 확실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정신분석 및 신경정신 분야에서는 이것을 어떻게 판단할지가 나는 매우 궁금하다. 성인이 된 후로 그 기준을 삼아도 이십육 년 동안이나 나를 괴롭히고 있는 오래된 고통이다. 그것이 과거의 경험과 분명한 상관관계가 있는 것인가에 대한 정신과 의사의 명확한 판단을 이젠 들을 때가 된 것 같다. 그동안 나는 이 결연한 마음을 가지고 몇 번 정신 건강 의학과 병원을 찾았고 오늘이 마지막 날이다.


진료를 마치고 병원 문을 나서며 나는 생각한다. 어쩌다 가끔 때로는 자주 그랬듯 혼잣말을 한다.

‘몸에서 느껴지는 오롯이 미세한 통증들 때문에 밤잠을 못 자는 날이 많아 참다 참다 진통제를 먹고는 했다. 만약 약을 먹어 기억을 조작하고 재생성하는 미래의 어느 날이 온다면, 나는 행복해질까. 단 몇 번의 정신과 상담만으로 내가 미소포니아인지 헤리성 둔주인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다만 과거에 겪은 두려운 기억은 분명히 나의 뇌에 몸에 정신에 영혼에 그대로 저장되어 있다. 그때의 분위기와 정서와 감정도 내 의식의 자아와 무의식의 자아에 그대로 저장되어 있다. 날 것 그대로.


오래된 공포 기억이 세포 사이사이의 연결을 강화하면서 뇌에 영구적으로 저장된 게 틀림없다. 나의 오래된 공포 기억은 엄마가 그 어떤 나쁜 이에게 몹쓸 짓을 당한 수십 년 전 그 순간부터다. 엄마의 심리적 외상인 그날의 트라우마에 대한 기억이 내 삶을 뿌리 채 썩게 했다.

엄마의 트라우마는 나의 트라우마이다. 엄마와 나는 그 나쁜 이로부터 당한 공포 기억을 신체적 정신적으로 공유한 사이다. 엄마는 임산부로 나는 태아로 한 남자가 만든 공포 상황과 정서에 동시에 놓여있던 우리 모녀.

엄마가 트라우마를 경험할 때 엄마의 전체 신경세포 중 적어도 몇 퍼센트 정도는 활발히 활동했을 것이다. 그 못된 남자에게 고성과 구타를 만날 당한 임산부였던 불쌍한 내 엄마. 나의 짐작과 반대로 매일 그런 공포를 겪을 때 엄마의 모든 신경세포가 죽었다면, 나는 엄마의 상처 투사로부터 자유로웠을까.


부모와의 애착관계의 결핍으로 내 삶은 산산조각 나고 나의 자아는 완전히 부서져버렸다. 멀쩡히 살다가도 문득 트라우마가 내 몸과 영혼을 괴롭히는 고통이 감지될 때면 상상한다. 약 하나로 상처 난 기억을 모두 지우거나 다시 그렸으면 좋겠다고.

29년 후 2055년, 기억을 저장하고 제어하며 새롭게 편집하여 재생성하는 기억조절관제센터가 있다. 유수의 제약회사에서 나온 약을 먹어 기억을 필터링해 간직할 수 있다면 좋을지도 모른다. 단지 몇 알의 약이 한겨울처럼 추운 이 세상보다 더 추한 부모에 대한 미움 범벅인 나의 본성을 덮고 가려줄 이불이 될 수 있을까,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약에 의존하지 않고는 자존할 수 없는 나의 조작된 기억이 과연 따뜻하면서도 강한 힘이 있을까, 트라우마 폭격기인 가족관계 안에서의 고통을 내가 견딜 수 있을 만큼.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직하고 싶은 기억만 선별해 기억하게 해 주는 약이 있다면 한꺼번에 입에 털어 넣고 싶다. 이따금 하는 나의 상상이 현실로 이뤄지면 좋겠지만 수천밤이 지나도 그럴 리 없다.

오랜 시간이 지나 공포 기억을 회상할 때도 마치 트라우마를 경험할 때처럼 신경 세포는 팔딱팔딱 뛰며 살아있다고 나는 믿는다. 그렇지 않고는 엄마가 나에게 자신의 상처를 이토록 끊임없이 투영할 수 없다. 그때 비록 태아였지만 나도 엄마와 똑같은 공포 기억의 상처와 트라우마가 있다.

나는 공포의 분위기를 매우 세밀하게 느끼고 그런 속에서 발생하는 모든 소리에 굉장히 예민하게 반응하는 사람이다. 나의 뇌 어딘가에 저장된 공포 기억들이 신경세포들을 깨우고 내 삶을 흔들 때가 아직도 많다. 마치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 환자처럼 살아가며 불안과 두려움을 느낄 때가 너무나 자주다.


특정 소리에 민감도가 상승하는 미소포니아에 트라우마가 주는 정서적 불안이 더해져 굉장한 공포기억이 세포와 신경회로에 남아있다. 상처받은 기억의 격렬한 반응에 스트레스 호르몬 노르에피네프린이 과다 분비되나 보다. 뇌 내의 마약인 내인성 오피오이드가 트라우마 기억을 지우는 지우개가 되었나 보다. 공포 기억으로 인해 강화된 나의 전두엽 어느 곳에 있는 기억 회로를 언제쯤 약화시킬 수 있을까?

사랑하는 사람들과 웃으며 이야기하면 나의 아픔의 꽃이 시들어갈까? 그렇게 하면 내 멍든 가슴에 핀 다 시들고 썩어빠진 꽃이 져 버릴까? 나 스스로 나를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는 시간이 나에게 걸어오곤 있을까? 죄책감 없는 나로 세상에 당당히 설 수 있는 그날이 내게도 올까.

알 수 없는 그 언제쯤을 향하여 나는 다시 살아내야 하리라. 견뎌내야 하리라. 나를 사랑하시는 한 분으로 인하여 이 지질한 에프급 인생인 나 스스로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맙다. 태어난 지 삼일 만에 죽음 속에서 그분의 생기로 새 삶을 선물 받은 나. 그토록 특별한 존재인 나를 감사하며 오늘 다시 사랑하고 사랑하며 살아가고 싶다.’

머릿속의 독백이 비로소 신의 사랑으로 따뜻하게 채워진다.


정신 건강 의학과 문을 두드리길 잘한 것 같다. 나 자신에 대해 알면 알수록 의사 앞에서 발가 벗겨지는 내면이 부끄럽기도 하다. 어른으로서 어른답지 못한 미성숙한 자아를 가진 인간이라는 사실이 점점 드러나는 것 같아 속상하다.

한국에서의 시간이 다해 가기에 더는 정신 건강 의학적인 상담이나 치료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양파 껍질처럼 까면 깔수록 더욱 선명하게 밝히 보이는 자아의 실체를 깨달아 감사하다. 비록 육체의 눈은 왼쪽 오른쪽 둘 다 성하질 않아 불편하거나 어떤 때엔 불행하다 느낀 순간도 있다. 그러나 태초의 신이 창조한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의 눈을 갖게 된 지금 이 시간이 실로 감격스럽다. 창조주이자 세상 모든 것을 만드신 절대자 앞에 얼마나 미약한 존재인지 깨우쳐주셔서 감사하다. 더욱 겸손히 신의 능력을 믿고 의지하며 그분의 계획에 순종으로 나아가는 삶을 다짐한다. 다만 느림보 절름발이일지라도 한걸음 한 걸음씩 십자가 보혈 안으로 향하며 뜨거운 믿음의 인생을 살아가길 기도한다.


2주의 시간 동안 나는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았고 그 사이 엄마는 구치소에서 나오셨다. 엄마가 사십 년 가까이 목과 몸을 바쳐 숨을 짜내어 가며 지키고 있는 공장은 사실 엄마의 그분의 사업체이다. 사업이라 부르기도 나는 싫다. 일생을 바쳐 일해도 엄마에겐 망가진 몸의 흔적들과 직원보다 못한 처우를 자처하는 것 밖엔 남는 것이 없다. 엄마는 사모님의 위치에 있지만 그보다 훨씬 아래에서 항상 먹고 검은 먼지 탈을 쓴 채 기계 앞만 지키신다. 왜냐하면 나라는 주홍글씨 새겨진 십자가가 엄마의 어깨에 매달려 있었기 때문에. 멀리 탈옥해 나온 나지만 엄마는 여전히 나의 그림자를 어깨에 달고 그 공장에 갇혀 계신다.


한 번 다녀오고 사람구실 못하는 딸까지 엄마집으로 데리고 들어온 죄인의 굴레를 평생 뒤집어쓴 채 살아가신다. 그분에게 악의 영물인 내가 미안해 엄마는 공장에 충성하는 것으로 그 빚을 갚고 계신다. 그분의 하루하루는 엄마에 비하면 천상계의 삶이었고 지금도 변함없다. 그런 흑과 백 불과 물 대표와 말단 노동자로 사시는 매일을 나는 15년 동안 보았다. 그리고 내가 보지 못한 20여 년의 시간들이 더 있다. 엄마의 그런 모습을 더는 보기가 괴로웠다. 먼지탈은 엄마만 쓸 뿐 기계 앞은 엄마만 지킬 뿐이었다.


사십 년 가까이 대표와 공장노동자의 자리에서 대비된 하루를 사시는 부부가 내 눈엔 정말 이상했다. 이해할 수 없었고 정상적으로 절대 느껴지지 않았다. 엄마의 고난뿐인 일상을 차라리 몰랐던 함께 살지 않던 때가 수 억 배는 더 좋았음을 깨달아갈 뿐이었다. 차라리 멀리서 그리워만 하고 엄마의 지치기만 하는 날마다를 몰랐을 것을… 그렇게 나는 후회하고 또 후회하며 최후의 사랑을 찾아 이곳까지 닿았다. 내 가슴에서 혈의 눈물이 날마다 흘렀지만 그런 엄마를 구조할 수 없어서 먼 여행을 택한 것이다.


하여 영세 제조업을 생업으로 택한 외국인 노동자들을 선교사의 마음으로 늘 돕고 사신 엄마가 억울하게 구치소에 잠시 가신 것이다. 엄마와 함께 가셨던 목사님은 종교지도자로 인도적 차원에서 노동자들을 도와준 것으로 참작되었다고 한다. 그동안의 선한 일들을 알고 있던 많은 주변인들이 탄원서를 써 주셨고 다행히 무사히 나오셨다. 엄마는 벌금형을 받고 풀려나셨다. 비워도 되고 버려도 되는 죄책감에서 엄마가 어서 풀려나시길 기도한다. 공장노동자가 아닌 사랑받아도 되는 여자로 이제 그만 제발 엄마가 돌아오길, 이름도 모를 들꽃이어도 흔하게 밟힐 들꽃이어도 좋으니 한 번은 예쁘게 피어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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