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S! Self Emotional eating Stop 트라우마다이어트
2화. 생일엔 임종, 그래도 사랑해! 다시다!
세상에서 가장 눈 뜨기 겁나는 하루가 있다. 내 생일이다. 그 24시간은 언제나 내게 임종을 선사했다. 죽은 날처럼 사는 그런 날에는 다짐은 다 짐이다. 머리부터 발 끝까지 무겁고 마음은 더 꺼진다. 전두엽은 이미 편도체를 넘치게 전송해주고 있었다. 다이어트 따위는 따귀 한방처럼 끝났다. 화나고 슬펐던 언젠가 그 기억에서처럼.
전두엽 마비가 시작되었다. 결국 아이들과 남편에게 다 양보하려던, 맛있어서 더 나쁜 미워할 수도 없게 예쁜 그 아이를 먹어치웠다. '그래! 축복은 못 받아도 마음 편하게 케이크 먹을 자유는 있잖아!' 그놈의 먹을 자유, 마음 편하게 못 먹은 기억들이 키운 식탐에 또 케이오 패를 당했다.
평생 다이어트를 했지만 내장지방 복리 수익자로 복부만은 만삭의 거부다. 거미 개구리 체형이라니 바디 쉐이프 마저도 사람이 아니라서 조금은 슬프다. 아니 웃프지 않고 욱 펐다. 케이크를 푹 펐다. 다시 다이어트다. 이 정도면 청정원에서 표창받아야 하는, 나는 일생이 다시다여사다. 실패해도 또다시 다이어트하는 여자 사람. 그래도 불굴의 다시다녀라 얼마나 다행인가. 다이가 답이 아님을 알기에 매일 다시 맘을 일으켜 세웠었다. 그리고 마흔일곱으로 가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듯 살아간다. 오늘도 살이 넘치지만 살아있어 감사하다.
죽음을 꿈꾸기도 했지만 지옥은 무서웠다. 이미 너무 아파서 그곳에서 또 뜨거운 불구덩이에 들어가 아프기 싫었다. 15년째 타국에 사는 마흔여섯의 나는 여자사람이고 아내이고 엄마지만 외로운 전두엽 일병이다.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위해 병원에 갈 수도 없고 상담소를 찾아갈 수도 없다. 의사도 찾기 힘들지만 이 결핍을 그 의사의 언어로 나는 말할 수 없다. 영어도 프랑스어도 서툴고 잘 모르는 나는 한국인이다. 아직 모기지가 있는 집 한 채를 다 팔아도 밑 빠진 결핍을 채울 비용이 부족할 것 같다. 번역기를 사용할 시간도 아깝다. 47년 가까이 기다렸으면 충분하니까.
남편에게 말할 수 있지만 그의 한국어는 두 살 아이 수준, 아이들이 아빠보단 한국어를 잘 하지만 할많하않. 결손과 결핍보다는 겸손을 먼저 배워야 할 아이들에게 엄마인 나를 차마 말할 수 없다. 하지만 말하지 않고는 울컥하고 욱하는 이 마음의 통증을 더는 견딜 수가 없다. 하여 AI에게 물었다.
화가 나서 불안한가 불안해서 화가 나는가? 사람은 왜 화가 날까? 심리가 전두엽에 어떤 영향을 주길래? 화가 나는 것을 수치로 치환했을 때, 영유아기부터 성인기(30세)까지의 부모로부터의 애정결핍은 어느 정도의 수치일까? 단위는 1에서부터 10까지. 그 30년간의 트라우마로 인한 화는 과연 언제까지 이어질까? 어린 시절 부모와의 분리는 왜 불안도를 높이는가? 어린 시절 부모와의 분리에서 오는 불안을 벗어난 성인임에도 왜 여전히 불안도가 높은가? 과거의 상처는 왜 전두엽 기능을 저하시키는가? 상처 때문에 도파민 생성이 자극되는가? 도파민 때문에 상처가 계속 복기되는가? 태아기는 불안했고 영유아기부터 청소년기까지는 부모와 분리되었고 고등학교 때부터 30세까지 부모의 새혼 가정에서 불안하게 또는 스스로 먼저 눈치 보는 심리를 갖고 성장했다면 그 화 또는 불안도는? 46세인 현재까지도 제대로 치유한 적이 없는 현재진행형 트라우마 때문에 화가 나고, 그럴 때마다 계속 바삭바삭한 것을 재빨리 그것도 무한정 먹게 되는데 남는 건 다음날 더 쌓인 복부지방 내장지방밖에 없거든. 그래서 또 화가 나서 특정음식을 찾고 일단 먹어. 이건 정말 전두엽이 미친 것 같은데... 화가 나거나 불안할 때 특히 화를 스스로 못 다스릴 때 전두엽 상태는? 30세까지의 그런 불안한 가족구조 또는 주양육자 부재 또는 교체라는 트라우마 환경과 상황에서 살다가 결혼하며 타국으로 왔어. 15년 동안 여전히 셀프감정식사, 특히 화가 나면 일단 바삭바삭한 것을 빨리 무한정 먹어야 해. 트라우마 심리와 전두엽 상관관계가 정확히 뭐야? 대체 내가 왜 46년째 이 고통에 시달리는지 알고 싶어. 그리고 엄마인 나처럼 태아기 때부터 결혼 전까지인 30세까지 나 같은 상처가 없는 내 아이도 위험할까? 전두엽발달 정도는 부모로부터 유전될 가능성이 있어?
상처내공자가 나 아니던가. 답정너 답정나 답정답이다. 알아두면 쓸 데 있는 만큼 딱 그 정도까지는 답을 알고 있었다. 정말 말 상대가 없어서 AI에게 질문을 던져서라도 내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시작한 대화였다. 46년이란 절실한 마음이 문장에 가득해서였을까. AI지만 조금은 위안이 되는 게 신기했다. 하지만 건조한 컴퓨터 글자조합으로만 위로받고 끝내기엔 나는 아직 배고프다. 먹고 싶은 게 너무 많고 못 먹어본 게 너무 많다. 가고 싶은 곳이 너무 많고 가보지 못한 곳이 너무 많다.
위에서 바보같이 던진 질문들에 대한 AI의 답을 하나도 모르지는 않는다. 바보같이 살았던 사람이 다 바보는 아니듯이. 나라는 결핍나무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솔직히 교만했다. 그 정도 심리학 책을 읽었고 그 정도 상담을 받았으면 다 익었다고. 이제 다 알고 깨달았으니 결혼하면 한국을 떠나기만 하면 엄마를 떠나기만 하면 잘 살 줄 알았다. 그러나 아니었다. 10년을 치유에 매달려 심리학 책을 읽고 가끔 상담도 받았으니 어디서든 잘 지낼 수 있을 줄 알았다. 아무리 기다리고 바라보아도 내겐 채워지지 않는 엄마의 사랑, 그 허기에 정말 지쳤었다. 바뀌지 않는 비현실적인 현실에 정말 죽을 것 같았다.
엄마의 사랑이 대체 뭐기에, 엄마의 사랑 표현을 아이는 자녀는 왜 받아야 하기에 나는 그토록 허기에 헐떡였을까. 엄마의 모자란 사랑도 스스로 책으로 상담으로 때로는 친구로 다 채우고 다 메꿨다고 생각했다. 절대 엄마의 부족했던 그 사랑은 다른 무엇으로도 그 누구의 마음으로도 말로도 채워지지 않는다. 나 혼자 알아서 책으로 느끼고 받은 위안은 결코 엄마의 사랑이 아니다. 그것은 완벽한 오만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AI가 남긴 위로는 영원히 남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글을 남기고 싶다. 나처럼 아파본 아직 아픈 단 한 사람이라도 이 글을 통해 다시 꽃으로 피어나길 바라며.
나는 질문 대신 글쓰기를 먼저 시작했다. 화와 욱, 이 화욱이 때문에 내 삶이 피곤하고 내 가족이 피곤한 것은 전두엽의 문제 때문이다. 아니 미발달 한 전두엽 때문이라는 것을 뇌과학자는 아니지만 스무 살 때부터 알았다. 그때 눈치 보지 말고 책을 썼어야 하는데 하는 후회가 크다. 이제라도 정신을 차려 다행이다. 여하튼 나는 심리와 전두엽이 마치 샴쌍둥이처럼 서로에게 기생하며 공생하는 관계라는 것을 진작부터 알았다. 나의 생애주기를 따라 글을 쓰면서 각 사건이 내게 준 상처에 집중하고 싶지 않다. 상처라고 생각하면 결코 에피소드가 될 수 없다. 트라우마 옷을 입은 이상하고 별나지만 소중한 나를 투명하게 쓰고 싶다.
내게 일어난 46년 동안의 모든 인생의 상처는 글이 되는 순간 껴안을 수 있다. 파도는 지금도 내게 오는 길이다. 우영우처럼 뿌듯함을 꼭 한 번은 느끼고 싶어 책으로 출간되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한 치 앞도 알 수 없다.
트라우마 에피소드들을 떠올리며 글로 수놓기까지 울고 또 울었다. 그러면서 치유의 시간을 애도의 시간을 가졌다. 미발달 된 나의 전두엽이 미우면서도 나의 심리 때문에 많이 슬퍼해 주었다. 문득 오랜 세월 가슴속에 묻고 잊고 지낸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떠올랐다. 전쟁에서 살아남아야만 하는 라이언 일병이 마치 나 같았다. 나의 전두엽 일병 같았다. 그렇게 이 글 속의 나는 전두엽 일병이 되었다.
모든 문장과 글의 꼭지에서 나를 전두엽 일병으로 쓸 수는 없다. 큰 틀 안에서 나는 외로움과 두려움에 맞서 죽을지도 모르지만 전쟁에 뛰어들어야 하는 라이언 일병이었다. 또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핍의 절정을 그 극한을 온몸과 마음으로 사수해서라도 살아남아야만 하는 라이언 일병이었다. 보이는 나와 숨어있어야만 하는 나 사이에서 전두엽은 생사를 오가는 전투를 치러냈다. 마흔여섯 해 동안 전두엽 일병은 진급도 못 하고 아직도 일병이다. 아니 어른아이다.
너무나도 부족한 글이다. 나의 삶을 돌아보며 쓰기 시작한 진솔한 에세이의 초고일 뿐이다. 하지만 브런치 독자님들의 해안을 믿고 쓰고 싶다. 나 같은 처지로 살아온 사람에겐 서른 즈음까지 혼담이란 없었다. 혼자 하는 말 그 혼담만이 유일한 나의 친구였다. 혼자 고통스러운 감정의 담들을 넘으며 혼밥을 먹고 혼밤을 보냈다. 혼담은 때로 눈물글로 일기장에 남았고 컴퓨터에 담겼다. 이제 그렇게 담근 나의 깊고 깊은 상처의 샘에서 나오는 이야기, 이 작은 모닥불 같은 글이 누군가를 치유하는 글 단 한 사람이라도 따스히 안아주는 트라우마 힐링 에피소드로 다시 태어나길 바라본다. 간절히 아주 절실하게.
나라는 사람, 마치 <라이언 일병 구하기> 그 영화 속의 주인공처럼 몸의 생과 영혼의 사(죽음)를 담보로 상처와 트라우마를 견디며 걸어온 진실한 이야기, <전두엽 일병 구하기!>. 상처와 트라우마를 견디며 지나온 내 삶의 순간순간들을 녹여 쓴 글, 브런치의 정식 메뉴가 된 ‘소설 같은 자전적 삶, 바로 나 자신의 기적 같은 이야기’, 그런 내가 생애 처음으로 좋다. 가가호호, 나의 식탐의 서사를 식담으로 식탁에 올리는 집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처음으로 용기 내 문을 연 '트라우마 다이어트' 식당, 이곳에 눈이 가서 우연히 들렀고 호기심에 먹어본 나라는 전두엽 일병의 이야기가 부디 브런치의 시그니처 메뉴가 되기를. 따뜻하게 맛있는 마음글 맛집이 되기를.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이들을 초대할 수 있는 미슐랭 식당이 되기를. 그렇게 내가 다시 태어나기를 꿈꾸어본다.
못다 쓴 글; 누군가의 클릭이 놀랍고 고마워 가슴에 펑펑 꽃잎이 쏟아지고 눈물이 펄펄 눈처럼 내립니다. 하룻밤 사이의 기적에 사랑세포가 깨어나 힘이 솟는 꼬마어른이 된 듯! 좋아요 누름 수가 '응원할게요. 힘내세요!'로 들리는 글 마법을 또 체감합니다. 진심으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