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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r 민 Feb 12. 2021

모든 계획을 성취하는 비결

마태복음 5장 33~37절 헛된 맹세에 대해 말씀 묵상

 


 새해가 되면 이런저런 다짐이나 결심을 말하곤 합니다. 새해엔 교회 열심히 다닐게!” “올해는 꼭 운동 시작해야지!” “이번에 정말 술 끊고 말 거야!” 하고 마음에 굳센 뜻을 품기도 합니다. 그러나 작심삼일이란 말처럼 우리는 며칠 지나지 못해 마음에 품의 뜻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맙니다.      


 때로는 지키지 못할 약속이나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기도 하지요. 우리 올해는 꼭 한번 만나서 식사하자!” “이번 일만 잘되면한 턱 크게 쏘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제가 꼭 이 은혜 잊지 않고 갚겠습니다.” 상황이 안 되는 경우도 있고, 처음부터 지킬 생각이 없었던 일들도 있습니다. 여러 가지 경우가 있겠지만, 결론적으로 우리는 종종 의미 없는 다짐이나 약속을 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사람들의 이런 연약함을 아시곤 맹세에 대해 다음과 같은 규칙을 정해주셨습니다. 

 레위기 19장 12절 너희는 내 이름으로 거짓 맹세함으로 네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라 나는 야훼이니라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맹세를 할 때는 신중히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이름으로 맹세를 했다가 지키지 못하면 하늘 아버지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께서는 이 율법 조항을 새롭게 해석해 주셨습니다. 아예 맹세 자체를 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지요.     

 마태복음 5장 34절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 임이요      


 당시 유대인들은 직접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맹세하기보단, 성전이나 제단, 예물에 대고 맹세를 하곤 했다고 합니다. 직접 하나님의 이름을 들먹이기보단 좀 더 가벼운 마음으로 맹세할 수 있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하늘이나, 예루살렘 성전, 또한 사람들 스스로를 향해서도 맹세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당시의 그런 풍습을 꼬집어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지키지도 못할 맹세,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할 바에는 아예 맹세 자체를 하지 말하는 의미였지요.     


 주님께서는 여기에 한 말씀을 덧붙여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5장 37절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부터 나느니라     


 그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은 옳습니다, 아니라고 생각하는 일은 아닙니다,라고만 말하라 하셨습니다. 이보다 더 지나친 이야기들은 악, 즉 악마가 가져다주는 생각이라고까지 말씀하셨지요.      


 한 해가 시작된 지 벌써 두 달이 지났습니다. 이 짧은 두 달 동안 우리 또한 많은 헛맹세를 하고 살진 않았나 뒤돌아보게 됩니다. 원하든 원치 않은 사실 우리는 수많은 거짓말, 헛된 약속, 이루지 못할 다짐을 하며 살아갑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코로나 이전에 했던 많은 계획들을 우리는 지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함께 계획했던 여행들, 업무들, 수많은 만남들, 약속과 계획들이 코로나로 인해 다 무기한 연기되었지요. 정말 원치 않지만, 우리는 ‘코로나’라는 블랙홀 속에 갇혀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언제 끝날지, 언제쯤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지, 기약 없는 약속을 기다리고 있지요.       


 그런데 이 잉여의 시간들이 우리에게 귀한 깨달음을 주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우리는 이 무력한 시간 속에서 우리가 어떤 존재들인지 철저히 깨달아가고 있습니다. 이미 우리 주님께서는 2000년 전에 이 사실을 명확히 알고 계셨지요.  

 마태복음 5장 36절 말씀 네 머리로도 하지 말라 이는 네가 한 터럭도 희고 검게 할 수 없음이라     


 요즘은 좋은 염색약들이 많아, 흰머리를 검게도 만들지만, 사실은 다 가짜지요. 실제로 우리는 머리칼 하나도 마음대로 못하는 존재들입니다. 아무리 뛰어난 의료 기술력으로도 코로나를 막지도 못하지요. 로켓을 쏘아 사람을 우주로 보내는 시대가 되었지만, 우리는 여전히 이 땅 위에서 힘겨운 일상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코로나는 그런 연약한 인간의 실존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좋은 예가 되었지요.       


 예수님께서 도무지 맹세를 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까닭은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를 잘 아셨기 때문입니다. 지키지 못할 다짐, 이루지 못할 맹세를 아예 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또한 주님 시대의 그들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내 힘과 내 노력으로 사는 듯하지만, 사실 우리 힘으로 사는 게 아니지요. 아무리 노력한 들, 목숨을 한 시간도 연장하지 못하며, 가정이나 직장생활 역시 우리가 하는 듯해도, 주님께서 잠시만 은혜를 거두어 가시면, 우리의 모든 노력은 헛수고가 됨을 종종 깨닫게 됩니다. 

    

  가정에서 아이들을 키우며, 지나다 문득 저 자신의 연약함을 느끼게 되는 때가 있습니다. 모든 일이 순탄하게 돌아갈 땐, 은근히 속으로 생각하지요. “내가 잘해서 그렇지, 내 인격이 훌륭해서 그렇지.” 하며 뿌듯해하다가도 생각지도 못했던 일들이 터지면, 곧 마음이 무너지게 됩니다.     


 한 번은 주말에 무척 마음이 곤하고 기운이 없었지요. 사소한 일이 발단이 되어 집사람과 옥신각신하게 되었습니다. 분위기가 살벌해졌고, 아이들도 슬슬 눈치를 보았지요. 저는 정말 진심으로 분위기를 풀고 싶었지만, 자꾸만 헛 나가는 말 때문에 일은 오히려 더 꼬여만 갔지요. 그런데 불쑥 구원투수처럼 둘째가 등장했습니다. 대뜸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지요.     


“곰 세 마리가 한 집에 있어, 아빠 곰, 엄마 곰, 아기 곰!” 엉덩이를 실룩실룩 대며 노래하는데 얼마나 귀엽던지요. 웃음을 꾹 참았습니다. 큰 아이도 눈치를 채고는 합세했지요. 평소엔 기분이 좋아야 한두 곡 할 텐데, 그날은 무려 30분 이상 춤과 노래를 저희를 섬겼습니다. 결국 저희 부부는 웃음을 터트렸고, 그렇게 가정의 평화가 지켜졌지요. 제가 할 일을 아이들이 대신해 주었습니다. 어쩌면 하나님께서 부족한 절 위해 아이들 속에 천사의 마음을 넣어 주신건 아닐까, 엉뚱한 상상을 해봅니다. 


 “아, 가정이 평안한 건, 다 주님 은혜이구나, 하고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다 연약한 존재들입니다. 아무리 돈이 많던, 배움이 깊던, 깊은 신앙심을 가졌던, 우리 안의 모든 유익한 요소들은 우리 스스로의 창작품이 아닙니다. 오직 하늘 아버지께서 우리 속에 은혜와 사랑을 부어주실 때라야만 우리는 선하고 온전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약하고, 변하기 쉬운 질그릇과 같은 우리에게 소망이 있는 까닭은, 우리 안에 계신 주 예수님 때문입니다. 우리는 변덕이 심하고, 헛맹세를 난발하는 존재이지만, 우리가 믿고 섬기는 주님은 그렇지 않으십니다. 신실하시며, 변치 않으시며, 영원히 우리를 사랑하시는 거룩하신 하나님이 되십니다. 

 야고보서 1장 17절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변함이 없으신 주님은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언제나 그 모습 그대로 우리를 사랑하시고 지켜주시는 좋으신 하나님이 되십니다. 

 히브리서 13장 8절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하나님이 되십니다. 영원히 변함이 없는 주님께서 오늘도 똑같은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시고 품어주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연약한 우리 자신에서 눈을 들어 영원토록 변함이 없으신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의 삶은 의미가 있고, 수수께끼와 같은 고난의 이유도 술술 풀리게 됩니다. 아무리 코로나를 붙들고 욕을 하고 화를 내도 현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지나간 과거를 회상하며 추억해 보아도, 이미 돌처럼 굳어버린 지난날들은 다시 돌아오지 못합니다. 한 치 앞도 예상 못하는 나 자신 또한 믿을 만한 존재는 아니지요. 우리가 소망을 둘 분은 오직 유일하시며, 변함이 없으시고, 신실하신 주 예수님 뿐입니다.      


 한 해를 시작하면서 어떤 다짐과 약속을 가지고 계신가요? 어떤 계획을 세우셨든, 그 모든 일들이 의미 있고, 우리에게 참된 유익을 주려면 먼저 예수님을 우리 삶에 초청해 드려야 합니다. 우리 주님이 함께 하지 않는 계획이나 다짐, 어떤 결심이나 맹세도 다 헛일이 되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함께  하실 때, 그곳이 가정이든, 사업장이든 심지어 교회나 개인까지도 의미 있고 복된 존재가 됨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을 향해 도무지 맹세하지 말라 말씀하셨던 까닭은, 그들이 어떤 존재임을 잘 아셨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을 사는 우리들 역시 약하고 연약한 존재들입니다. 그렇기에 우리에겐 예수님이 꼭 필요합니다. 주 예수님을 우리 삶에 초청해 드릴 때, 주님께서 우리를 변화시켜 주십니다. 어떤 문제를 만나셨습니까? 어떤 절망이나 단절을 경험하셨습니까? 그럼에도 우리에게 소망이 있는 까닭은 예수님께서 함께 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주 예수님의 손을 꼭 붙들고, 한 해를 새롭게 계획해 보는 건 어떨까요? 그와 같은 은혜가 우리들 가정과 삶에 가득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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