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시간에 지랄한다고 욕 먹었어요
류시화,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
어떤 동료를 만날까
전생에 옷깃을 3천 번 스쳐야 이생에서 한 번 만난다는데, 1년을 같은 아이들과 동거동락하는 우리는 얼마나 큰 인연인가. 올해 중2 담임에 ‘배정’되었다. 꼴랑 여섯 반, 나를 포함 여섯 명이 1년을 같이할 동료들이다. 20대 둘, 30대 둘, 40대 둘. 여자 다섯, 남자 하나. 공립학교 교사란 게 보따리장사다. 4년마다 학교를 옮기고 맡을 업무와 학년은 매년 바뀐다. 매일 3-4시간을 떠들어대느라 성대결절이 왔던 시기도 있었지만 이제 그정도 컨트롤은 한다. 마음먹지 않아도 나이는 먹지만 그게 또 그저 먹는 건 아닌 모양이다. 물만 주는데도 콩나물이 자라는 것처럼.
어떤 관리자를 만날지, 어떤 학생들을 만날지, 어떤 동료를 만날지 알 수 없다. 옆자리 동료도 3월 2일에야 난생 처음 만나게 될 확률이 높다. 남들이 보면 복지부동인데 그 안에서는 실로 다이나믹스펙터클한 하루하루가 한 달이 되고 한 학기가 되고 1년이 되어 나의 한해를 이루어나간다.
신규 교사 시절, 나의 희노애락은 우리반 아이들에게서 시작해 우리반 아이들로 끝났다. ‘처음’이 주는 설렘과 열정은 다행인지 불행인지 얼마 가지 못했다. 관리자가 중요한 시절이 있었다. 교장교감이 좋으면 학교가 좋았고 교장교감이 싫으면 일할 맛이 안 났다. 좋거나 싫거나, 중간은 없었다. 올해 아이들은 이제껏 만난 적이 없는 유형의 인간들이다. 매일 나를 시험에 들게 하는, 중2라고 써붙여놓은 것 같은 아이들. 2학년 담임이 발표되는 날, 2년 연속 담임을 맡은 한 선생님은 울면서 자신의 운명을 탓했다. 교장, 교감은 싫지도 좋지도 않다. 솔직히 학교에서 그들의 존재 이유를 모르겠다. 무릇 조직의 리더들이 어쩔 수 없이 겪는 비애 혹은 루저들의 습관성 불평불만. 아무튼 학생이든 관리자든 직장에서 행복할 만한 조건은 아니다. 그럼에도불구하고 나의 직장생활이 불행하지는 않다.
“오늘 수업시간에 지랄한다고 욕 얻어먹었어요.”
“뭐?”
“저보고 지랄하지 말래요.”
벌점이 100점을 초과한지 오랜지인 그반 학생이 오늘은 급기야 막말까지 하고야 말았던 것이다.
“조퇴해라. 5교시 수업 내가 들어갈게.”
“6교시는 내가 들어갈게.”
“그럼 7교시는 내가?”
“쌤, 오늘 7교시 없어요~~”
“아깝네. 7교시 들어가고 싶었는데.”
그렇게 우리는 서로 위로하고 한바탕 웃고 만다. 학생한테 욕먹는 처지에, 자존심 내세울 것도 없는 마당에 하소연이라도 할 데가 있다는 게 어딘가.
photo@지인
누군가를 안다는 것은 그 사람을 잘 모른다는 것과 동의어일 때가 많다. 누군가를 안다고 믿지만, 그 사람에 대한 나의 생각과 감정을 믿는 것이다. 또한 누군가를 좋아하고 싫어하지만, 사실은 나의 판단과 편견을 신뢰하는 것이다. 206p
가까운 관계라 해도 어떤 사람을 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류에 가깝다. 섣부른 판단으로 우리는 누군가를 잃어간다. 관계가 공허해지는 것은 서로를 모르기 때문이 아니라 안다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안다는 것, 진실한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자신의 편견을 깨고 그와 함께 계단 끝까지 내려가는 숙제를 안는 일이다. 209p
없는 게 많은 우리학년
유독 우리학년은 합이 잘 맞는다. 유독 없는 것도 많다. 학생에게든 관리자에게든 학부모에게든 잘보이고 싶은 마음이 없고, 승진 욕심이 없고, 단짝도 없다. ‘왜 저렇게 하지?’ 하는 의구심보다 ‘무슨 생각이 있겠지’ 하는 마음이 먼저니, 판단하는 관계에서 받는 불안감이 없고 편안하다. 내가 이들을 만난 것도, 이들이 나를 만난 것도 운이 좋았다. 이들을 만나 다행스럽게도 올 한해 내 삶은 희-노-애-락의 톱니바퀴가 맞물려 잘 돌아가고 있다.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알았겠는가.
p.s. 우리학년을 마지막으로 중학교 생활을 마감하고 고등학교로 옮겨왔다. 모두 건강하게, 그랬던 것처럼 힘들어도 웃으며 지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