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러 쇼어, <교실을 위한 프레이리>
프레이리(1921~1997)는 브라질을 넘어서 20세기 대표적인 교육사상가이다. 그의 책 <페다고지(피억압자의 교육학)>는 1980년대 금서이기도 했다. 그만큼 그의 교육에 대한 철학과 방법은 피억압자들로 하여금 억압적 현실에 눈뜨게 하는 해방적이고 실천적인 사상이었다. <교실을 위한 프레이리>는 <프레이리의 교사론>을 번역한 대구경북의 교사모임 사람대사람에서 번역했다. 부제는 ‘현장 교육을 위한 프레이리와 비고츠키의 만남’이다.
비고츠키(1897~1934)는 언어와 학습을 통해 인지발달이 이루어지고, 사회적 상호작용이 중요하다고 했다. 비계(건설현장에서 인부들이 올라갈 수 있도록 설치해놓은 발판) 설정을 잘하는 교사가 유능한 교사이며, 교사의 적절한 질문이 학습자의 발달을 도와줄 수 있다고 했다. 심리학의 모차르트라 불리는 러시아의 심리학자 비고츠키와 브라질의 교육사상가 프레이리는 둘다, 개인의 성장이나 사회 변혁을 위한 도구로써 언어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비고츠키는 개인의 언어 구사 역량이 개인적 맥락과 사회적 맥락의 부단한 상호작용을 통해 발달해간다고 하는데, 이는 프레이리가 말을 통한 세상 읽기를 강조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교실을 위한 프레이리>는 세계 각국의 교사, 교수들이 프레이리와 비고츠키의 사상을 학교에서 어떻게 실천했는가를 보여주는 짧은 논문 모음집이다. 간만에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는 책을 읽었다. 길동무이자 좋은 선생님을 만난 것 같았다. 내가 왜 공교육 교사여야 하는지 답을 알려주었다. 교육의 답은 교실에 있다는 것!
학교에서 나는 아침 8시부터 오후 늦게까지 아이들을 만난다. 2층부터 3층, 4층까지 하루에 열 번쯤 계단을 오르내리며 교실문을 열고 아이들을 만난다. 우리의 만남은 모두 언어로 이루어진다. 게다가 나는 국어 교사다. 언어는 교사와 학생인 우리의 모든 것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 언어가 교사 일방적이면 아이들은 입을 닫는다. 대답하지 않고 질문하지 않고 침묵하거나 엎드리는 건 아이들이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저항이다. 무기력하다고 질책하지만 아이들의 무기력은 자기 말을 할 줄 모르는 아이들이 어른들에게 하는 반항이다. 말로 반항도 못 하는 무기력한 아이들이 나는 너무 불쌍하다. 반대로 교사가 침묵하면 배움이란 일어날 수 없고 교실은 아이들의 무질서한 말로 시장바닥이 된다. 아이들이 ‘잘’ 배우고 교사도 즐겁고 함께 성장할 수 있는 방법은 ‘대화’밖에 없다.
대화를 하려면 교사와 학생이 대등하게 만나야 한다. 수업의 주제를 학생의 삶에서 가져와야만 학생은 교사와 동등하게 대화에 참여할 수 있다. 아이들은 자신의 삶이 보잘것 없다고 여기겠지만 아이들이 듣는 노래, 친구들과의 대화, 고민, 뉴스 등 현실의 모든 것을 수업으로 가져와야 한다. 프로젝트 수업, 모둠별 협력학습, 배움의 공동체 수업, 거꾸로 수업, 하브루타 등 새로운 교육을 향한 방법들이 넘쳐나지만 그 핵심은 프레이리에게 다 들어 있다. 학생으로 하여금 배움이 일어나도록 용기를 주고 생각을 하게 하고 말을 하게 하고 글을 쓰게 하는 것은 결국 교사의 ‘질문’이다.
어떤 질문을 던질 것인가? 사실 그게 가장 어렵다. 교사인 내가 좋은 질문을 던지면 학생들은 알아서 생각하고 답하려고 웅성거린다. 게다가 교실이 안전하다고 느끼면 아이들은 어떤 말이든 잘 한다. 나는 ‘질문이 살아 있는 교실’을 꿈꾼다.
1년에 두어 번, 학교를 그만두고 논술시장에 뛰어들면 떼돈을 벌 수 있을 거라는 상상을 해본다. 고전, 논술, 인문학 등 그럴듯한 이름을 붙이면 솔깃해하는 학부모들이 많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결국 학교를 선택할 것이다. 돈보다 ‘교실’이 더 좋기 때문이다. 현실 학교는 가르치는 것보다 문서 처리가 우선이다. 가르치는 건 잘하는지 못하는지 표가 금세 안 나지만 문서 처리는 안 하거나 잘 못하면 바로 OUT이다. 교무, 교감, 교장 순으로 승진 안 하고 수업만 하고 있으면 무능력자 취급당하기 쉽다. 업무도 수업도 못 하는 교사, 이기적이고 학생과 소통하지 않는 교사들도 넘쳐난다. 학부모들은 또 얼마나 가지각색인가. 학교는 수백 명의 학생들과 수십 명의 교사들과 덧붙여 수백 명의 또 학부모들, 인간들의 부대낌으로 종일 바쁘게 돌아가는데 ‘교실’에서는 교사인 나와 학생인 아이들만 있는 우리만의 세상이다. 아이들이 어떻게 배우고 성장해 가는지는 교실에서만 볼 수 있다. 한 해가 지나 아이들이 다 빠져 나간 교실을 한번 둘러보고 문을 잠그고 나가는, 너무 허전해 마음이 저릿해오는 허전하고도 충만한 그 기분. 그 순간 나는 교사로서 살아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질문이 살아 있는 교실’을 꿈꾸며 프레이리를 읽는 시간, 역시 교사로서 살아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