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읽은 아이들
윤동주,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내가 무엇이고 정성껏 몇마디 써야만할 의무를 가졌건만 붓을 잡기가 죽기보담 싫은 날, 나는 천의를 뒤집어쓰고 차라리 병 아닌 신음을 하고 있다. 무엇이라고 써야 하나? 7p
뼈를 저리게 하는 그의 시
“얼굴 하나야 손바닥 둘로 / 폭 가리지만 / 보고픈 마음 호수만 하니 / 눈 감을 밖에”라던 지용이 붓을 잡기가 죽기보다 싫다고 했다. ‘아직 무릎을 꿇을 만한 기력이 남었기에 붓을 들어 시인 윤동주의 유고에 분향’하는 그 마음이 얼마나 쓰라리고 아팠을까? 윤동주의 시는 동짓날 처마 끝에 달린 고드름처럼 영롱하고 차다. ‘뼈를 저리게 하는 그의 시’(215p)라는 표현보다 적절한 표현을 찾지 못하겠다.
1.
중학교 3학년이던 남학생이 교무실로 찾아왔다. 교과서에서 배운 윤동주의 시가 잘 이해되지 않아 방학동안 윤동주의 시집을 다 읽었다고 했다. 그러고 뭔가 질문을 했을텐데, 윤동주의 시집을 다 읽었다는 데서 너무 감격해 질문은 기억도 못하겠다. 교과서에서 배운 시가 이해되지 않아 책을 통째로 읽었다는 학생을 그 이후로 본 적이 없다. 반듯하고 성실한 남학생은 지역 의대에 합격했다. 좋은 의사가 될 거라고 말해주었는데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 남학생이 이해하기 어려웠던 시가 ‘참회록’이었을 것이다.
2.
중학교 갓 입학해 서로 탐색이 덜 끝난 봄, 선생님 까꿍! 하던 어처구니없던 남학생. 학교는 노는 곳이던 아이가 시 외우기를 하는데 랩으로 신나서 부르던 시. “내를 건너서 숲으로 /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 나의 길 새로운 길” 아이들은 환호하고 더 신나서 부르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윤동주의 시는 그대로 노래가 되는 걸 배우지 않아도 알던 귀염둥이. 어디 있든 잘 살고 있겠지.
3.
말이 없던 중학교 3학년 남학생, 뽀얗고 순한 얼굴로 차분하게 공부를 잘 했던, 늘 평점심을 유지하던 남학생. 국어시간에도 목소리 들을 일이 거의 없이 졸업을 했다. 중학교 마지막 시험이 끝나고 시를 쓰는데 제일 마지막으로 제출했지. 수학, 과학을 좋아해 시를 못 쓸 줄 알았는데 그래서 눈여겨보지도 않았는데. 나는 한 글자도 고치지 않고 그대로 시집에 실었다. 그것도 그해 아이들 시집 표지에.
해질녘 바이칼 알혼섬
별 헤는 밤
창 밖의 까만 하늘을
올려다 보면
별을 헤려고 해도
헤어지지 않는다
건물마다 불을 켜
별빛을 묻기 때문이다
내 마음에 묻기 전에
건물의 빛에 먼저 묻혀 버린
별들이 그리워지는 밤이다.
‘빛 공해로 인해 윤동주 시인이 가슴에 새긴 별을 이젠 새길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까워 이 시를 썼다.’고 했다. 서울대 보내는 데 목숨을 건, 학구열이 가장 높은 고등학교에 진학해서 이제 졸업반이 되었겠다. 불수능은 잘 보았는지, 순한 얼굴로 여전히 말이 없는지, 잘 살고 있는지.
4.
초등학교 졸업을 앞둔 우리 아이. 윤동주를 알 리 없다. 동시들을 읽어주었다. 언제까지 읽을 거냐며 무심하게 듣는다. 좋은 거 하나 골라보라니 ‘참새’를 골랐다. 이유는 ‘웃겨서.’ 아, 울고싶다. 내가 가르친 아이들은 분명 이렇지 않았는데! 윤동주 시가 웃긴 우리 아이, 그래도 잘 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