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작품,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성석제,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고등학교로 전근,
처음으로 가르치는 작품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고등학교로 전근해 처음으로 가르치는 작품. 중학교 생활지도에 지쳐(중학교가 생활지도만 한다는 것이 아니다. 내가 있던 학교의 특성상 수업보다 생활지도가 우선이었다.) 무뎌진 ‘교재 연구’의 과제를 던져준 첫 작품. 코로나19 재난 시기 온라인수업이라는 과제를 던져준 첫 작품.
인터넷에 떠다니는 수업들을 이것저것 들어봐도 구상이 잘 되지 않는다. 수업의 성패는 디자인!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풀어나가야 할까.
언제 샀는지, 읽기나 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책을 끄집어 든다. 예전에도 제목이 참 매력적이다 싶었는데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벤치마킹했다는 걸 알게 됐다. 차라투스트라의 익숙함과 황만근의 낯섦이 만들어낸 이색적 풍경. 쿠션에 기대고 이리저리 뒤척이며 느긋이 읽는다.
황만근을 낳은 그의 어머니는 집안의 안방을 차지하고 있다. 어머니는 어머니인데 젊다. 그리고 아주 곱다. 두 사람이 나란히 있으면 그런 경우가 일년에 한번 있을까 말까 할 정도로 보기 어렵다, 한 사람은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밖에 있으니 말이다, 모자간이 아니라 오누이간으로 보이기 십상이다. 물론 황만근이 오빠로 보인다. 19p
웃기지 않으면 성석제가 아니지
황만근이 오빠로 보인다, 흐흐, 역시 성석제의 문체다. 바보라 놀림받는 건 안됐지만 웃기긴하다. 웃기지 않으면 성석제가 아니지. 전문이래야 40쪽. 느긋이 읽기 시작해 금세 이야기에 빠져들어 킥킥대다 코끝이 찡하고 마음이 아려온다.
“아부지야, 인마, 퍼뜩 일나라.”
변성기에 들어선 소년의 목소리였다.
“쪼매만 더 앉아 있자. 내 니 엄마를 꿈에서 보다 말았다 안카나.”
그것은 마흔을 넘긴 사내의 어리광 같았다.
“너는 우째 맨날 술을 처먹고 내 속을 썩이나. 너 때문에 내가 학교 공부도 못하겠고 인생도 싫고 고마 밥맛이 없다.”
“아이고, 우리 아들, 아들님, 내 잘못했다. 한분만 봐조라.”
“니가 자꾸 이렇게 비겁하게 나오기 때문에 동네 아들도 너를 무시하는 거 아이가. 제발 체면 좀 지키라. 시염(수염)만 어른이가. 내가 챙피해 죽겠다.”
“체면이 뭐가 문제라. 사람이 지 손으로 일하고 지 손으로 농사지어서 지 입에 밥 들어가마 그마이지. 남 쳐다볼 기 뭐 있노. 하이고, 그란데 와 자꾸 눈이 깜기까.” 31p
집 앞에 보이는 산이 만근산이어서 이름이 만근인 황만근,
삼칠일도 안 돼 떠난 ‘처녀’의 아이를 젖동냥하며 업어 키운, 동네 바보.
비오는 날 100릿길을 고장난 경운기를 끌고 농민궐기대회장으로 간 그는 일주일째 돌아오지 않는다.
일주일 뒤에 황만근은 돌아왔다. 그의 아들이 그를 안고 돌아왔다. 한 항아리밖에 안되는 그의 뼈를 담고 돌아왔다. 경운기도 돌아왔다. 수레는 떼어내고 머리 부분만 트럭에 실려 돌아왔다. 황만근 아니면 그 누구도 작동시킬 수 없는 그 머리가, 바보처럼 주인을 태우지 않고 돌아왔다. 38p
소설에서 황만근은 죽고 말지만 황만근이 책 속 글자들 사이에서 살아나오는 느낌, 글자로 그려진 평면적 황만근이 쓰윽 일어나 걸어나오는 느낌. <토지>의 용이, 월선이, 서희가 그랬던 생생한 그 느낌을 이 짧은 소설 황만근에게서 받을 줄이야. 그래, 아이들도 황만근을 살아있는 인물처럼 느끼면 좋겠다! 수업디자인이고 뭐고 지금 나처럼 황만근을 살아 있는 사람으로 느끼게 하는 것, 그게 수업목표다!
수업 후 아이들의 반응은 꽤 좋았다. 황만근에게 있어서 농사란 무엇일까? 황만근의 낡은 경운기가 작품에서 의미하는 것은? 황만근은 죽기 전에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장과 마을 사람들은 황만근이 죽은 데 책임이 있는가? 황만근이 죽은 후 아들과 어머니는 어떻게 생활했을까? 제목을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로 지은 이유는? 황만근은 바보인가 아닌가? 황만근의 가치를 알아보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나는 어느 쪽일까? 어느 누구도 알아주지 않지만, 올바른 삶을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덕목으로 어떤 것들이 있을까?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그럼 너는?이라고 나에게 묻는 것 같았다
던진 질문들 중 많은 아이들이 자기가 고른 질문에 대한 생각을 적어냈다. 돼지고기 반 근만 하다고 반근이라 불리던 동네 바보 황만근이 아이들에게 얼마나 가닿을까 지레 걱정했던 것과 달리 아이들은 황만근에 측은지심을 느끼며 감정이입해갔다. 제목의 의미를 묻는 질문에 한 아이가 답했다.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그럼 너는? 이라고 나에게 묻는 것 같았다. '빚 안 지고 짓고 싶은 농사 실컷 지으면서 안 망하고 백 년을 살 거라'고 했던 황만근의 말을 곱씹으며 나는 어떤 말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하게 됐다.”
그래, 나는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어느 누구도 알아주지 아니하고 감탄하지 않는 삶이었지만 깊고 그윽한 경지를 이룬’ 황만근의 말을 천천히, 곱씹으며 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