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난쏘공을 가르친다는 것
조세희,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사람들은 아버지를 난장이라고 불렀다. 사람들은 옳게 보았다. 아버지는 난쟁이였다. 불행하게도 사람들은 아버지를 보는 것 하나만 옳았다. 그 밖의 것들은 하나도 옳지 않았다. 80p
여전히, 가르쳐야 할까
밤 10시까지 학교에서 야자를 하던 시절, 난쏘공이 입시에 나왔는지, 국어시간에 선생님이 열변을 토하며 가르쳤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1978년 출간 당시 분위기가 어땠는지 알 수도 없고(너무 어렸으므로) 언제부터 입시 단골 작품이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1990년대 대학에서 난쏘공은 필독서였다. 책장에 20년 동안 꽂혀 있던 책을 끄집어 든다. 리얼리즘 말고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대학시절의 필독서를, 소설 속 ‘개천 건너 주택가’에 사는 이 부유한 아이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책이 나온 지 40년이 지났는데 이해는 할 수 있을까? 여전히 이 작품을 가르쳐야 할까?
<기생충>에서 박 사장의 집은 <난쏘공>에서 개천 건너 '고기 굽는 냄새' 나는 주택가로 묘사된다.
난장이 가족을 떠올리게 하는, 반지하에 사는 <기생충>의 기택네 가족
<난쏘공>과 <기생충>, 살인이라는 공통점
이리저리 수업 구상을 하다 영화 기생충을 보면서 난쏘공을 떠올렸다는 한겨레신문 ‘편집장 편지’를 보게 되었다.
천국에 사는 사람들은 지옥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우리 다섯 식구는 지옥에 살면서 천국을 생각했다. 단 하루라도 천국을 생각해보지 않은 날이 없었다. 하루하루의 생활이 지겨웠기 때문이다. 우리의 생활은 전쟁과 같았다. 우리는 그 전쟁에서 날마다 지기만 했다. 80p
그렇지. 개천을 사이에 두고 아파트 입주권을 사지 못하고 거리로 내몰리는 철거민과 고기를 굽는 주택가 사람들이 있었다면 기생충에는 지하에 살면서 지상으로 올라오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지. 난쏘공이 40년 넘게 읽히는 동안 금수저는 더 번쩍거리는 금수저로, 흙수저는 그저 흙수저로 굳어져 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난쏘공을 다시 읽는다. 그때 보지 못했던 것이 보이기도 하고 새롭기도 한데, 동화 같고 서정적이기까지 한데, 마음이 아프고 힘들다. 예전에도 이렇게 마음이 아팠나. 기억나지 않는 걸 보면 그땐 리얼리즘만 알았지 현실을 알지는 못했던 모양이다.
“울지 마, 영희야.”
“자꾸 울음이 나와.”
“그럼, 소리를 내지 말고 울어.”
“응.”
그러나, 풀밭에서 영희는 소리를 내어 울었다. 나는 손으로 영희의 입을 막았다. 영희의 몸에서는 풀냄새가 났다. 개천 건너 주택가 골목에서는 고기 굽는 냄새가 났다. 84-85p
난장이 자녀들은 엄마 몰래 고기 굽는 냄새를 맡으러 개천 건너 주택가로 가고, 엄마는 넣어줄 것이 없어 자식들 옷에 주머니를 달아주지 않는다. 난장이 부부는 아버지의 아버지의 할아버지부터 가난했다. 117센티미터 32킬로그램의 난장이 아버지는 벽돌 공장 굴뚝 위에 서 있었다. 까만 쇠공이 머리 위 하늘을 일직선으로 가르며 날아갔다. 다행히 가난의 대물림을 본인 세대에서 끊어주었지만 정작 본인들의 어린 시절은 전쟁과 가난으로 점철되어 있었을 내 부모님의 어린 시절을 보는 것 같아 마음 아팠다.
2005년, 200쇄 출간 기념 인터뷰에서 작가 조세희는 ‘200쇄 출간은 부끄러운 기록’이라고 했다.(한 작가의 소설집이 200쇄까지 출간된 것은 한국문학사에서 유례가 없는 기록이다. 현재는 300쇄를 넘었다.) 억압의 시대를 기록한 이 소설이 아직도 이 땅에서 읽혀지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30여 년 전의 불행이 끝나지 않았음을 증명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슬픈 현실이다.
슬프니까 좀 덜 슬프게
슬프니까 좀 덜 슬프게 가르쳐야겠다. 소설 수업을 듣는 아이들이 슬픔을 느끼되 그저 소설로 받아들이면 내 마음이 좀 덜 무겁겠다. 그저 시대성을 잘 반영한 뛰어난 문학작품의 하나로 받아들이면 좋겠다. 감수성이 풍부한 아이라면 아주 조금만 마음 한구석이 아픈 정도면 좋겠다. 만에 하나 이 소설을 읽고 진심으로 마음 아픈 아이, 자기 일처럼 여겨지는 아이가 없기를 바란다. 무겁지만, 그래서 무겁지 않게 가르쳐야겠다. 열여덟이라는 나이는 세상 때문에 마음 아파도 좋지만 아직은, 그래도, 좀더 행복하기만 하면 좋을 나이니까. 그래도 자기 일처럼 여겨져 마음 아픈 아이가 있다면 …….
p.s. 새내기 편집자 시절, 국문과 출신의 출판사 사장님은 조세희 선생님을 매우 존경하여 책이 나올 때마다 선생님께 편지를 써서 부쳐드렸다. 그때마다 선생님한테서 잘 받았다는 엽서가 와서 좋아하셨던 생각이 난다. 얼마 전, 18년 만에 출판사 사장님을 만났다. 내 후임으로 들어온 여직원이 아주 예쁘고 참했는데 조세희 선생님의 며느리가 되었다고 했다. 내가 존경하고 좋아한 사장님이 출판사는 망했지만 중매는 잘 섰다고 좋아하신다. 같이 기뻐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