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아느냐 네게 물으면,
플라타너스,
너의 머리는 어느덧 파아란 하늘에 젖어 있다 –플라타너스 中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가을의 기도 中
김현승의 시가 내 마음을 잡아끌었던 적은 없었다. <눈물>도 마찬가지였다.
더러는
옥토에 떨어지는 작은 생명이고저……
흠도 티도
금 가지 않은
나의 전체는 오직 이뿐
더욱 값진 것으로
드리라 하올 제
나의 가장 나아중 지니인 것도 오직 이것뿐
아름다운 나무의 꽃이 시듦을 보시고
열매를 맺게 하신 당신은
나의 웃음을 만드신 후에
새로이 나의 눈물을 지어 주시다. -눈물
진심을 다해 좋아하는 작품은 가르칠 때 설레고 신이 난다. 아이들은 그 분위기에 휩쓸려 자기도 그 작품을 좋아하는 양 착각하고는 진심으로 받아들인다. <눈물>은 여러번 읽어도 마음에 울리는 게 없다. 온라인수업을 마감하고 매일 등교를 하면서 이제야 교실에서 제대로 공부하는 작품인데 내가 먼저 좋아하지 않고서는 좋은 수업을 하기 힘들다. 부랴부랴 김현승의 시집을 사서 읽었다. 30년 가까운 시간을 건넌다. 학창시절, 하이라이트 자습서에서 ‘공부’했던 시와는 확실히 느낌이 달랐다.
먼 길에 올 제,
홀로 되어 외로울 제,
플라타너스,
너는 그 길을 나와 같이 걸었다.
길에 흔한 플라타너스들이 바람에 잎을 살랑이며 말을 걸어주는 것 같다. 머리를 들어 파아란 하늘을 올려다보며 꿈꾸는 플라타너스. 한창 꿈 많던 10대 때는 보지 못했던 것들이 보이는 나이, 詩가 가깝게 다가온다.
喪明之痛. 눈이 머는 아픔. 옛날 중국의 자하(子夏)는 아들을 잃고 슬피 운 나머지 눈이 멀었다고 한다. 김현승 시인은 <눈물>이 ‘내가 그렇게도 아끼던 나의 어린 아들을 잃고 나서 애통하던 중 어느 날 문득 얻어진 시다. 나는 내 가슴의 상처를 믿음으로 달래려고, 그러한 심정으로 썼다.’고 했다. 시인이 먼저 떠나보낸 아이는 네 살이었다. 제목 <눈물> 앞에 ‘어린 아들을 잃고 흘리는’이라 써넣으라고 했다. 아이들은 그제서야 시가 조금 이해된다고 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바쁜 사람들도
굳센 사람들도
바람과 같던 사람들도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
어린 것들을 위하여
난로에 불을 피우고
그네에 작은 못을 박는 아버지가 된다.
저녁바람에 문을 닫고
낙엽을 줍는 아버지가 된다.
바깥은 요란해도
아버지는 어린것들에게는 울타리가 된다.
양심을 지키라고 낮은 음성으로 가르친다.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으나,
아버지가 마시는 술에는 항상 눈물이 절반이다.
아버지는 가장 외로운 사람이다.
가장 화려한 사람들은
그 화려함으로 외로움을 배우게 된다. -아버지의 마음
아들을 사랑했던, ‘견고한 고독’을 노래했던, 가을을 기도했던 시인. 그곳에서는 조금 덜 고독하기를. 아들을 다시 만나 아픈 상처가 아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