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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학교사 체 Jun 09. 2020

문과도 재밌는 과학

정재승, <열두 발자국>

변화는, 무언가를 계획했을 때가 아니라 우연한 계기로 찾아올 때가 있다. <열두 발자국>도 예기치 않게 나를 찾아온 반가운 책이다.     



과학을 통한 자기성찰이 가능하다니  

  

핫한 뇌과학자 정재승에게서 과학에 대한 지식과 흥미를 얻으려 했던 나는 그것들을 훌쩍 뛰어넘어 ‘나’를 대면하고 성찰하게 되었는데 ‘과학을 통한 자기성찰’은 책읽기의 또다른 즐거운 경험이다.     



과학자가 글도 잘 쓴다 / photo@지인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을 때 나는 어떤 행동을 하는가를 살펴보면 내가 어떤 인간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 ‘나는 무엇에서 즐거움을 얻는 사람인가?’라는 질문은 내가 무엇을 지향하는 사람인지를 알려줍니다. ‘나는 무슨 일을 하며 살아야 할까’라는 질문에 대답하려면, 내 즐거움의 원천인 놀이 시간을 들여다봐야 합니다. -네 번째 발자국, 인간에게 놀이란 무엇인가 中    




나란 사람    


하루 중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없는 나는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시간이 되면 더 바쁘다. SNS의 각종 뉴스를 스캔하랴 이 책 읽고 덮고 저 책 읽고 설거지를 하다말고 건조기에서 빨래를 꺼냈다가 아들 방 침대를 여기저기 옮겨보고 청소기를 돌리다가 물을 끓여 커피를 내리고 설거지를 하다 장갑 낀 손으로 내려놓은 커피를 마시다가 70퍼센트 쯤 집안일이 완료되면 산책을 나간다. 산책도 쉬엄쉬엄이 아니라 열심히 한다. 산책에서 돌아왔을 때 말끔한 집이면 좋으련만 못다한 30퍼센트가 남았다. 이 정도는 내일 해도 그만이고 지금 하면 더 좋지만 대개는 내일로 넘어가거나 남편이 뒷정리를 하는 걸로 마무리가 된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시간에 내가 하는 정신없어 보이는 행동들이 나라는 사람을 보여주지 않을까. 꼼꼼하고 완벽하게 100퍼센트를 하기보다 생각하면 바로 실행하고 70퍼센트 정도면 만족하는, 30퍼센트의 여지를 남겨두는 사람. 가던 길을 가는 것보다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호기심 많아 정착하지 못하고 떠다니는 사람. 그런 사람인 나는 무얼 할 때 즐거운가?      


돈과 성공에 대한 관심이 아니라 열린 사고와 지성에 대한 관심을 가진 사람과의 만남, 대화, 맑고 화창한 날의 산책, 흐린 하늘과 바람 부는 날의 산책, 가족과의 여행. 나는 그럴 때 가장 즐겁다. 혼자서 읽고 쓰기보다 독서토론 모임을 하고 글쓰기 모임을 하는 이유도 그것 때문이리라. 나에게 즐거움을 주는 그 누군가, 열린 사고와 지성을 갖춘 그 누군가를 찾고자 하는, 나의 즐거운 놀이일 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런 사람이 많지는 않아 매번 즐거울 수는 없지만 내 주변에는 열린 사고와 지성의 소유자들이 꽤 많고 그들은 삶의 곳곳에서 나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고마운 존재들이다.  

      


저자는 곳곳에서 ‘탐험의 경이로움’으로 가득찬 인생, 안락함에 안주하지 말고 새로운 세상을 탐험하는 인생을 살라고 격려한다. 그저 따르기만 하는 사람보다 빠르게 실행하고 수정하는 리더가 되라고 한다. 리더의 덕목으로 ‘자기 객관화’를 강조한다. 자기 객관화를 인간 최고의 덕목이라고 한다. 자기 객관화. 이 말이 참 오래 남는다. 나는 얼마나 나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가? <열두 발자국>이 나에게 준 최고의 선물은 바로 이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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