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이부르크
칼스루어+슈투트가르트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에어비앤비에서 체크아웃을 했다.
미리 예약해둔 호텔에 체크인을 하고 이번에는 필요한 짐 몇가지만 꺼내두었다. 며칠 후 동생의 친구 집인 스위스에서 2박 3일을 보내기로 하기도 했고, 그 여행이 끝난 후에는 프랑크프루트으로 이동, 그곳에서 하룻밤을 머문 후 나는 서울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타야한다.
다만 기분이 묘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평소 나는 생각을 많이 하거나 깊게하는 편이 아닌데 어느 순간부터 머릿속을 맴도는 생각이 있었다. 칼스루어로 떠나기 며칠 전, 동생과 커피를 마시다가 "영어를 정말 잘해보고 싶은데, 나도 어학연수나 해볼까?" 라고 이야기했었고 영어 어학연수 경험이 있는 동생은 나에게 이런저런 정보와 노하우를 알려주었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맘을 결정하고 6개월이든 1년이든 정해서 어학연수를 한다는 것은 이루기 힘든 만큼 대단히 어려운 것은 아니다. 그게 올해가 됐든, 내년이 됐든 마음만 먹고 하면 될 일이겠지만, 마음 한 구석에서는 그 다음은? 이라는 질문이 계속해서 나를 괴롭혔다.
어학연수를 해보고 싶고, 가능한 그 지역이 유럽이면 좋겠고 그러면 장소는 영국 아니면 아일랜드. 아이랜드 더블린에는 글로벌 IT기업도 많다고 하니 기회가 된다면 잠깐이라도 글로벌 기업에서 일하는 경험도 해보고 싶다- 라는 것이 그 생각의 시작이었는데, 근데 그 다음은?
뭘하든 다시 서울로 돌아와 하던 일 하면서 살면 된다. 어차피 노심초사하면서 계획을 세워도 계획대로만 되지 않는 것이 인생이란건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할 것인가, 말 것인가. 딱 그 두가지 중 하나만 선택하면 되는 일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으면서도 물음은 끊이지 않았다.
물론 현실적인 상황도 무시할 순 없다.
이미 40대에서도 중반을 향해가는 나이. 공부를 다시 시작하기에 대단히 최적화된 나이는 아니지 않나. 게다가 한국에서 계속해서 일한다면 굳이 영어를 엄청 잘할 필요도 없다. 그보단 웹기획, 피그마에 대한 학습이나 더 해서 나만의 강의 프로그램이나 교재를 만드는게 훨씬 더 현실적인 방향일 수 있다.
(최대) 1년 정도 일을 하지 않고 영어 공부를 하든, 쉬든간에 인생에 엄청난 사건이 일어나진 않을거다. 그러니 가도 된다- 라고 생각을 마무리 지어가려들면, 어차피 뭐가 바뀌지도 않을 거 그냥 여행이나 짬짬이 다니면 되지 꼭 그렇게 해야겠냐? 라는 반대편의 생각들이 스멀스멀 고개를 들기를 반복했다.
몸은 편하고 이제 좀 여기 적응되었는데 며칠 뒤 서울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과 갑자기 생겨난 유럽살이에 대한 욕망 때문에 머리속은 내도록 시끄러웠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생각을 많이 하거나 깊은 편이 아니다. 여행이든 인생이든 계획을 철저히 세우거나 먼 미래의 언젠가를 두고 목표를 만들지도 않는다. 지금 현재가 가장 중요하고 내가 뭘 원하는지가 가장 중요하다. 때문에 갑작스럽게 몰려오는 이런 생각들이 오랜만에 너무나 무거웠다.
그 무거운 생각들이 당황스러웠던 것 중 하나는 살아오면서 한번도 어디서 살아보고 싶다-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특히나 해외는. 여러 나라로 많은 여행을 다녔고, 그러면서 와 여기는 정말 살기 좋겠네 하는 정도의 느낌을 가져본 적은 있지만 6개월 혹은 1년이 될지도 모르는 시간 동안 살아보고 싶다고 생각이 드는 나 자신이 당혹스러웠다. 어디든 일상이 되면 그냥 현실이 될 뿐이라는 건 굳이 다른 나라, 도시에서 살아보지 않았어도 충분히 알고 있는대도 이 모든 생각을 속시원하게 접지 못하고 여기저기를 계속 들춰내기만 하고 있다.
#프라이부르크 #여행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