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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에서의 2박 3일

수르제

by 첼라


프라이부르크


긴장된다. 외국인의 집에서 2박 3일이라니....

영어가 그다지 자유롭지 않은데 게다가 완전히 처음보는 사람 집에서 머문다는 것이 이렇게나 긴장되는 일인지 몰랐다. 출발시간까지는 여유가 있었지만 잠이 오지 않아 일찌감치 일어나 차비를 하고 나섰다.


프라이부르크에서 스위스까지는 기차를 타고 총 2시간 정도 걸린다. 바젤까지 기차를 타고 가서 다시 스위스 기차를 갈아타고 목적지까지 가면 되는데 우리가 가는 곳은 수르제(Sursee)라는 곳이었다.




기차역까지 마중 나와준 동생의 친구 덕에 그의 집까지 편하게 이동할 수 있었다.

스위스는 독일과 국경을 맞대고 있지만 자연의 빛깔이 독일과는 또 달랐다. 스위스를 여행해본 사람 모두 정말 천국같다는 말을 많이 했었는데 그런 말이 나올법도 하다. 하늘의 색도 호수의 색도 독일의 그것과는 많이 달랐다.



친구분의 집은 숲 안쪽에 자리잡고 있었는데 강아지, 고양이, 말 등등 다양한 동물들이 함께 살고 있었다. 특히 로라라는 이름을 가진 강아지는 큰 덩치에도 불구하고 애교가 많고 살가운 아이였다. 처음보는 우리에게도 쉽게 다가와 장난치고 놀았다.



집 테라스에 앉아서 이렇게 넓은 들판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워낙 넓은 공간이 집 주변을 둘러싸고 있다보니 동물들도 제약없이 여기저기 열심히 뛰어다닌다.



얼핏 그냥 평범한(?) 시골같은 분위기인 것 같지만 어딜 찍어도 엽서 한 장이다. 차가 많이 다니지 않는 동네라 그런지 콧속이 다 시원할 정도로 공기가 맑았다.


역시나 빠질 수 없는 맥주 한 잔


이렇게 확 트인 곳에서 사는 인생은 어떤 기분일까?

며칠간 시끄럽게 머리를 지배했던 생각들이 조금 잠잠해졌다. 다만 역시나 긴장감은 여전했다. 나에게 직업 특성상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관심이 있든 없든 분위기가 나쁘지 않을만큼은 이야기할 수 있는데 이번에는 쉽지 않았다. 언어의 장벽도 한 몫을 하기도 했다. 나도 그도 영어가 그다지 익숙하지 않다보니 중간에서 동생이 독어-한국어로 통역을 하느라 매우 바빴다.



그녀는 요리중


동생은 이곳으로 오기 전 친구에게 대접할 요리재료를 몇가지 가져왔다. 쿠지라이식 라면을 하기 위한 신라면, 비비고 만두. 친구분은 음식과 어울리는 샐러드와 와인 한 병을 마련해주었다. 나는 요리엔 영 잼병이기도 하지만 동생도 친구분도 그냥 앉아서 쉬고 있으라는 말에 테라스에서 어색하게 자리를 지켰다.





긴장되긴 했지만 별 말이 없어도 충분한 풍경 때문에 오랫동안 식사를 즐겼다. 영어-독어-한국어가 오가는 조금 정신없는 대화였지만 친구분이 친절하게 이것저것 말을 걸어주었다. 사실 우리는 다음날은 우리끼리 루체른을 다녀오기로 했는데 감사하게도 친구분께서 같이 동행해주시기로 했다.



드라마에 나올 것 같은 그런 분위기
장난꾸러기 로라


친구분은 나와 동생에게 각각의 방을 내주었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방에 올라와 침대에 눕고보니 사방이 온통 고요한 들판이라는 것이 새삼 느껴졌다. 고요함이 느껴지고 나니 또 온갖 생각들이 스물스물 올라온다. 답이 없는 생각들로 머릿속이 이렇게나 어지러운건 진짜 오랜만이라 잠이 오지 않는다.


그래도 영어를 좀 공부하면 좋겠지

언어 능력을 늘려서 손해볼건 없긴 하니까

근데 내가 해외 생활을 그렇게 길게 할 수 있을까?

돌아가면 그 프로젝트는 바로 들어가게 되나


두서없는 생각들이 후두둑 치고 쏟아져나온다. 서울로 돌아가는 날이 정말 얼마남지 않아서인지 지금 내가 있는 여기가 너무 좋고 행복하기도 한데 심란하다.


그 전의 여행들을 떠올려보았다.

한번 떠나는 여정마다 최소 1개월, 길면 3개월까지도 여행을 했었다. 지금에 비하면 정신없이 바쁜 일정을 찍고 돌아다니기도 했고 매번 길에서 누군가를 만났다 헤어지기를 반복하기도 했다. 여행이 끝나갈 때쯤이나 돌아오는 길에 내가 했던 생각들은 '다음엔 어디로 여행가야지', '도착하면 제일 먼저 냉면 먹어야지' 같이 단순한 생각들이 전부였다. 그런데 이번은 왜 이렇게 생각이 많아지는지 모르겠다. 이래서 내일 여행은 잘 할 수 있으려나...







#수르제 #스위스 #여행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