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이부르크를 떠나 프랑크프루트로
하루를 꼬박 호텔에서 쉬었다.
딱히 배가 고프지 않아 뭘 먹지도 않았다. 다만 아침에 커피 한 잔은 너무나 마시고 싶었는데 아침식사를 따로 신청하지 않았지만 커피 한 잔은 그냥 마셔도 좋다고 해줘서 카푸치노 한 잔을 마시고 올라온게 전부였다.
땡볕에 다니느라 더위를 먹은 것도 있었지만 동생하고 크게 싸우고 난 후 모든 기력을 소진해 버렸던 것 같다. 게다가 평소 하지 않던 생각까지 잔뜩 짊어진 채로 며칠을 보냈으니 정신적인 피로감까지 상당히 겹쳐서인지 호텔에서 하루 쉰 그날은 몸에서 열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하루를 꼬박 앓고 나서야 조금 살만해졌다. 감기를 앓고 난 것처럼 약간 기운이 없었지만 꽤 몸이 가벼워졌다. 동생에게도 연락이 와있었다. 이 날 나는 호텔을 체크아웃하고 오후 늦게 프랑크프루트로 가는 버스를 타야했다. 동생은 여름 휴가가 끝나고 직장에 복귀했는데 퇴근 후에 만나기로 했다. 맘이 완전히 풀린 상태에서 만나자고 한 것이 아니란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만나서 무슨 이야기를 해야할지 걱정됐다.
호텔을 체크아웃하고 짐을 맡겨두고 나서 시내로 나갈까 하다가 그냥 시내로 나가 중앙역의 코인락커에 짐을 맡기기로 했다. 내가 프랑크푸르트행 버스를 타는 곳이 중앙역이기도 했고 왔다갔다 하면서 시간을 쓰느니 짐 보관료를 쓰는게 더 나을 것 같았다.
프라이부르크 중앙역에 도착해서 코인락커를 찾느라 좀 해맸다. 당연히 역사 안에 있을거라고 생각했는데 플랫폼에 위치하고 있었다. 가장 큰 사이즈의 코인락커에 캐리어를 넣어두고 시내로 향했다.
매일같이 시내를 왔다갔다 했다고 생각했는데 마지막 날이라는 기분 때문일까?
골목을 돌때마다 웬지 오늘 처음보는 곳 같기도 하고, 왔던 곳이지만 오늘따라 더 예뻐보이기도 했다.
게다가 날씨는 또 왜 이렇게 좋은건지.
여기저기를 그냥 걸어다니면서 커피 한 잔을 마시고, 맥주 한 잔을 마셨다. 프랑크푸르트에서는 1박을 하지만 오후 2시쯤 공항으로 가야하다보니 사실상 체류 시간의 길지 않다. 오늘이 사실상 이 여행의 마지막 날이다.
동생을 만나는 것도 걱정이었다. 만나서 무슨 말부터 어떻게 꺼내야하는지, 그녀가 마지못해 인사를 하러 나온거라면 아 이게 마지막이구나 하고 돌아서야하는지 걱정되는 것은 많았지만 무엇보다 진심으로 미안하다는 말은 꼭 하자라고 생각했다. 특히나 친구분에게도 죄송하다는 말은 꼭 전해달라고 해야겠다 생각했다.
그리고 지난 한달 간의 시간을 곱씹어 생각해보았다.
그녀는 이곳에 사는 사람이니까- 나보다 언어가 자유로우니까- 라는 생각으로 너무 많은 것을 그녀에게만 의지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쩌다 생긴 유럽 생활에 대한 꿈, 어학연수에 대한 희망 그리고 그 다음은? 이라고 자문하던 내 모습도 떠올랐다. 나는 가장 중요한 부분을 놓치고 있었다. 그 다음은 중요하지 않다. 오랜만에 하고 싶은 것 - 그게 무엇이든 - 이 생긴 그 자체가 놀라운 일이라는 것을 말이다.
어느 순간부터 그렇게 생각하고 살지 않았나.
이렇게 그냥 일하고 혼자 살다가, 가끔 여행하거나 그러다가 ... 그러다가 그냥 죽겠지. 어렵게 떠나온 이 독일여행도 독일이 너무 가보고 싶다거나, 여행이 하고 싶어서 온 것이 아니다보니 많은 날들을 하고 싶은 것도 먹고 싶은 것도 없이 그냥 멍하게 보낸 날이 더 많았지 않은가.
그런 나한테 하고 싶은 것이 생겼다는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다.
그 다음은 그걸 하고 난 뒤에 생각해도 충분하다.
정작 중요한 것은 완전히 뒤로하고 먼 걱정을 하느라 골머리를 앓느라 예민해지고, 고생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오랜만에 하고 싶은 무엇이 생긴 내 자신이 낯설어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한 숨 놓아도 된다.
시내를 돌아다니다가 동생에게 줄 몇가지 선물을 사고, 만나면 어떤 말을 해야할지를 고민했다. 적어도 그녀와 나 사이에 솔직하지 않을 이유는 없으니 그냥 맘에 있는 말들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우리가 자주 갔던 식당에서 동생을 만났다.
다시 얼굴을 마주했을때의 어색함은 어쩔 수 없었지만 그래도 마음을 터놓고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렇게 식사를 하고 코인락커에서 짐을 찾아 중앙역으로 갔다. 버스는 약간의 딜레이가 생겨 우리는 버스 정류장 의자에 앉아 멀리 해지는 모습을 함께 바라보았다.
그렇게 싸우고 나서 우리는 조금 더 친해졌다. 뭐랄까. 그 전에는 안친했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지만 갈등을 한번 겪고 풀고나니 마음의 거리감이랄까 그런 것이 없어진 것 같은 그런 느낌이라고 한다면 이해가 될까.
길고 긴 프라이브루크에서의 여름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프라이부르크 #여행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