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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일상으로

프랑크푸르트 아침 산책

by 첼라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한 시간은 그날 밤 자정이 가까운 시각이었다.

호텔은 대부분의 독일도시의 중앙역에 위치한 인터시티 호텔을 예약했다. 위치는 플릭스 버스가 서는 정류장 바로 앞이라 길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오후 2시에는 공항으로 출발해야 했기 때문에 남은 시간이 많지는 않았다.

호텔에서 쉬다 나갈까 고민을 하기도 했지만 49유로 티켓을 아직 사용할 수 있기도 했고 무언가 아쉬운 마음에 아침일찍 일어나 체크아웃을 하고 호텔에 짐을 맡기고 밖으로 향했다.



처음 입국해서 프랑크푸르트에서 일주일 머물던 그 때가 생각났다.

서울에서 짊어지고 온 피로감과 그 어떤 기대감도 없이, 여행정보 하나도 찾지 않고 와서 시종일관 멍하게 보냈던 첫 일주일. 그저 출근 안하고 누군가와 업무적 연락을 하지 않고 지낼 수 있는 것만해도 좋지 않았나.


이 긴 여행을 하는 것이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지, 무엇을 얻을 수 있을지 물음표로 가득했었는데 감사하게도 하고 싶은 일을 찾지 않았나. 동생과 늘 주고 받는 말처럼 인생은 정말 알 수 없다. 어떤 일이 생길지 어떤 생각이 찾아올지.



독일에서의 마지막 커피


뢰머 광장 근처에 아침 일찍 문을 연 카페가 있어 플랫화이트 한 잔을 시켰다. 기분 탓인지 모르겠지만 이 집 커피는 독일에서 마신 커피 중 베스트 3에 들어갈 정도로 맛있었다. 어제 프라이부르크에서 출발하는 버스의 출발시간이 딜레이 된데다가 오는 길에도 차가 막혀서 저녁도 먹지 않고 잠들었다. 배가 살짝 고프긴 했지만 동생이 사준 빵이 있어 이따 길을 걸으면서 먹을 생각이라 베이커리는 따로 주문하지 않았다.




아직 관광객이 몰려들지 않은 프랑크푸르트는 고요하고 조용했다. 덕분에 처음엔 몰랐던 뢰머 광장 구석구석을 조용히 돌아볼 수 있었다.



게다가 날씨가 얼마나 좋았는지 눈으로 보는 풍경도, 사진으로 남은 풍경도 약간 아련한 필터를 깐 듯이 아름답게만 보였다. 커피를 마신 후에는 뢰머광장을 돌아 강을 건너까지 걸을 수 있는 곳까지는 걸어보기로 했다.



동생과는 내년 겨울, 더블린에서 다시 만나기로 했다.

나는 영어 어학연수를 원하지만 미주 지역보다는 유럽 생활을 해보고 싶기 때문에 막연하지만 우선 목적지는 아일랜드로 정했다. 영국이라는 선택지도 있지만 아일랜드가 조금 더 흥미로웠다. 글로벌 IT의 유럽지사가 더블린에 많다는 소리를 듣기도 했고, 그냥 뭔가 도시 이름이 멋있지 않은가. 더블린.


어쨌든 본격적인 어학연수 전에 그 목적지를 한번 여행해보고 싶었다. 이왕이면 봄, 여름같은 좋은 날씨가 아닌 비수기의 나쁜(?) 날씨에 말이다. 날이 좋으면 사실 어딜가도 좋을것이기 때문에 궂은 날씨를 겪어보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잠정적으로 내년 2월, 더블린에서 다시 만난다.



지금 해도 필요없는 고민을 거둬내고, 오랜만에 하고 싶은 일이 생긴 스스로를 인정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한번의 갈등으로 영원히 못보게 되나 걱정했던 동생과의 사이도 외려 전보다 더 두터워졌다. 이것만으로도 이번 여행은 충만하다.



뢰머광장쪽에서 뮤지엄스트리트 쪽으로 다리를 건너다 오랫동안 서서 강을 바라보았다. 이제 돌아가면 다시 일상을 열심히 살면 된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 조금씩 시작하면 된다.


걸으면서 빵먹기


프라이부르크에서 동생이 사준 빵을 먹으면서 한참을 걸었다. 처음엔 여기 사람들이 음료도 아니고 빵이나 햄버거같은 음식을 먹으며 걷는 모습이 굉장히 낯설었는데 막상 해보니 뭔가 현지인이 된 느낌도 나고, 그래도 한 달간 제법 익숙해졌나 싶어서 웃음도 난다.




그렇게 걷다 맘에 드는 곳에서는 잠시 앉아서 쉬기도 하다가 트램을 타고 호텔로 돌아왔다. 이제 기차를 타고 공항으로 가야한다. 49유로 티켓은 마지막까지 알차게 잘 사용했다.


프랑크푸르트 중앙역
프랑크푸르트 공항


체크인까지는 아직 한참 남았지만 아시아나 카운터에는 벌써부터 줄을 서 있었다. 좌석은 이미 예약할때부터 지정해뒀기 때문에 사실 줄까지 설 필요는 없었는데 빨리 수속을 마치고 들어가고 싶은 마음에 나도 일찌감치 줄을 섰다. 생각보다 출국수속은 빨랐고 들어와 편한 의자를 찾아 비행기를 타기 전까지 쉬기로 했다.




동생에게 인사를 남기고, 그동안 찍었던 사진들을 보기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꽤 오랜시간 동안 체류했다고 생각했는데 지나고 보니 그저 한순간처럼 짧게만 느껴진다. 처음 여행을 떠나면서 뭐라도 만들어보려고 노트북을 가져왔지만 사실 이때 쓰고 있던 웹기획 책은 완성하지 못한 상태였다. 유튜브 강의 영상도 반쯤 만들다 말았다. 그냥 쉬기만 해서는 안돼. 뭐라도 해야돼. 라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물론 그런 시간 속에서 얻은 것도 있기 때문에 후회하진 않는다.


그보다 더 큰 것들을 얻었다.

동생과 정신적 거리감이 확 줄어들었고, 다시 또 뭔가 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독일의 모든 시간은 나에게 소중하게 남아있다. 언젠가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게 되는 날이 있다면 다시 또 무엇인가를 얻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상상만해도 설렌다.



굿바이 독일






#독일 #여행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