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하게 맑은 날씨를 만났던 하루
에든버러에서 머문 호텔은 시내 한가운데 위치하고 있었다.
호텔을 검색할 때 주로 시내 중심가에서 얼마나 떨어졌는지를 기준으로 선택했는데, 이번 더블린, 에든버러 모두 시내 중심에서 1km 미만 거리에 위치한 곳으로 선택했다. 보통 호텔 예약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거리는 그 도시의 시청을 중심으로 거리 정보가 작성되는데 유럽 대부분의 도시들은 시청 중심으로 주요 관광지가 위치한 곳이 많다 보니 별도의 교통비를 들이지 않고 여행을 할 수 있었다.
https://maps.app.goo.gl/W4YJ3wrLru9TawRr5
더블린에서부터 쭉 비 오고 흐린 날씨가 계속되었지만 에든버러에서 딱 반나절 맑은 날씨를 만날 수 있었다. 서울은 겨울이라고 해도 맑은 날이 많기 때문에 몰랐는데 해가 뜬다는 것, 하늘이 맑다는 것이 얼마나 축복인지를 새삼 깨달았다.
비의 색 하고도 몹시 잘 어울리는 도시지만 맑은 날에는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웠다.
그야말로 고색창연한 도시 분위기를 맘껏 즐길 수 있었다. 기분 탓인지 모르겠지만 갑자기 맑아진 날씨에 한산하던 거리도 갑자기 사람들로 가득 차더라.
동생과 그냥 쭉 걸었다.
에든버러 성 앞까지 올라갔지만 성 안으로는 들어가지 않았고, 지도도 켜지 않은 채로 그저 여기저기를 걸어 다녔다. 시내 중심이 대단히 큰 규모가 아니기도 했고 어디로 발을 내딛어도 도시의 분위기가 잘 살아있는 풍경이 굉장히 흥미로웠다.
특별히 뭘 보러 가기보다는 이 도시에서 하고 싶은 일들을 해보기로 했다.
산책도 실컷 하고 예쁜 커피숍에서 커피도 마시고, 때마침 티모시 살라메가 나오는 컴플리트 언노운이 개봉했을 때라 극장에도 가보기로 했다.
에든버러에서는 그렇게 여행보다는 일상의 휴일 같은 날을 보냈다. 인생에서 한 번쯤은 이렇게 예쁘고 낯선 도시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능하면 영어 공부도 좀 해보고, 기회가 된다면 이곳의 IT 업계는 어떻게 일하나 경험도 좀 해보고. 나에게도 그런 시간과 기회가 만들어질까.
여행을 오면 가능한 늦은 밤 외출은 하지 않는다. 나이트라이프에 크게 뜻이 없기도 하고 우리나라처럼 새벽 시간까지 돌아다니는 것이 그다지 안전하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부러 위험을 자초하는 짓은 하지 않는다.
다만 이날은 동생과 함께이기도 했고, 우리가 영화를 예약한 극장까지 호텔에서 멀지 않은 거리였기 때문에 모처럼 해가 지고 나서 거리로 나섰다.
확실히 야경이 주는 느낌은 또 다르더라.
날이 추워 옷을 꽁꽁 여매고 Everyman이라는 이름의 극장으로 향했다.
외관이 도통 극장 같지 않아서 조금 헤맸는데, 일종의 프리미엄 상영관 같은 곳이었다.
들어서면 직원이 안내를 해주고 극장에서 마실 음료나 스낵 같은걸 미리 주문하고 시간에 맞춰 상영관으로 올라가면 된다. 주문한 음료나 음식은 서버가 직접 자리까지 가져다준다.
https://maps.app.goo.gl/AVbqDCuDCq5wvuyRA
극장 복도에는 트레인스포팅 영화 사진들이 잔뜩 걸려있었다.
Choose life, choose job
이 대사로 시작되는 트레인스포팅의 배경이 에든버러였다니.... 몰랐다. (하지만 대부분의 촬영은 글레스고에서 했다고 한다.) 트레인스포팅은 음... 상당히 구토를 유발하는 영화라 아무에게나 추천하긴 좀 힘들다. 비유가 아니라 진짜 구토를 유발하는 장면들이 상당수 있음으로 각오가 되신 분들만 보시길. 그래도 악랄하게 양아치끼를 발산하는 젊은 이완 맥그리거와 지금도 구하기 힘들 거 같은 플럼색 아디다스 삼바를 보는 재미도 있다.
에든버러에서 영화를 본다는 그 경험 자체가 너무나 특별했다.
한국과 사뭇 다른 관람 분위기도 그랬고, 다행히 영화도 너무 좋았고 시내 중심의 구시가만 며칠을 보다가 이런 쇼핑몰을 둘러둘러 걷는 것도 새로웠다.
앞으로도 기회가 된다면 여행은 종종 하겠지만 어디에 가서 무엇을 보더라도 하루쯤은 일상 같은 하루를 보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에든버러 #영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