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내 마음대로 되지 않은 어떤 날

프라이부르크 - 음악 페스티벌 그리고

by 첼라

큰 공원이 있는 어떤 곳에서 음악페스티벌이 열린다고 했다.

입장 티켓을 사지 않더라도 충분이 즐길거리가 많다고 해서 동생과 함께 그곳으로 가기로 했다.


해질녁의 페스티벌


젊은사람들을 비롯해 가족단위로도 많은 오는 곳 같았다. 트램을 타고 내려 큰 공원을 가로질러 도착했는데 락페스티벌같은 분위기가 물씬 나는 곳이었다. 외국에 와서 페스티벌에 가는 것만큼 특별한 행사가 어디있을까. 하지만 이때 나는 여행 중 가장 큰 절망을 맛보았다.


동생이 결제해준 것이 있어 내가 그 금액을 송금해주기로 했는데 도무지가 이유를 알 수 없이 계속해서 실패했다. 계좌에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내가 뭔가를 잘못 한것도 아니고, 외국에서의 거래도 할 수 있도록 모두 처리하고 왔는데 실패만 뜰 뿐이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내 계좌의 문제로 실패한 것이었는데 어쨌든 아직 한달 이상 독일에서 체류해야하는데 가장 중요한 돈이 문제가 생기면 안되지 않는가. 페스티벌이고 뭐고 계좌 문제 때문에 반쯤은 정신이 나가있었던 것 같다.


동생의 친한 친구들 무리도 함께했는데 그들과 간단한 인사만 나누고 계속해서 휴대폰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동생에게 가장 미안했던 순간 중 하나다.





다행히 며칠 후 계좌와 돈 문제는 해결했지만 그것보다도 스스로 움츠러들었던 그때의 내 자신이 더 별로였던 것 같다. 어차피 해결은 시간이 필요했던 일이고, 시차도 있는 외국에서 당장 어쩔 수도 없는데 왜그랬는지....동생에게도 미안하지만 그 먼 곳에서 흔치 않게 즐길 수 있는 페스티벌을 즐기지 못한 나 자신에게도 미안할 뿐이다.



그래도 먹을건 다 먹었네요 ㅋㅋㅋㅋ


결국엔 마음가짐이라는 생각이 든다. 초조하고 불안하게 다리를 떨고 있어봤자 어쩔 수 없다. 시간이 필요한 일은 반드시 그 시간이 흘러야만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시간이 흘러서 해결할 수 있는 일이라면 다행인 일이다. 해결할 수 없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 받아들이던가 아니면 다음 장으로 넘어가는 수 밖에.





멀리서 들리는 밴드의 신나는 연주와 노을이 지는 하늘이 꽤나 멋있었다.

그런 와중에도 나는 해결이 안되면 어쩌나 싶은 마음뿐이었다. 스스로는 티 안내고 웃고 떠들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아니었을 것이다. 마음을 내려놓는건 생각보다 힘들다.





프라이부르크의 트램은 새벽 시간까지 운행했지만 자정이 가까워오자 배차 간격이 꽤나 벌어졌다. 내 숙소로 가는 트램은 기다린지 5분인가만에 도착했는데 어이없게도 눈앞에서 놓쳐버리고 말았다. 아슬아슬했던 것도 아니고 멍하게 쳐다보고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미 트램은 사라졌다. 다음 차까지 기다려야하는 시간은 30분. 그냥 있는 것보다는 주변이 밝은 중앙역 정거장에서 기다리는게 낫겠다 싶어 한 정거장을 걸어갔다.





하지만 잠깐 강아지 구경하면서 딴짓을 하다가 두번째 트램도 놓쳐버렸다. 그와중에 휴대폰에 남은 배터리는 1% 설상가상이 이런건가. 다행히 휴대폰이 완전히 꺼지기 전에 역에서 숙소까지 가는 길을 대충 눈으로 익혀두었다. 프라이부르크는 밤이라고 특별히 위험한 분위기는 아니지만 아무리 그래도 불안한 마음은 멈출 수 없었다.




자정이 넘어 숙소에 도착했다.

온 몸의 힘이란 힘은 다 빠져나간 것 같았다. 계좌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것인지, 오늘 종일을 망쳐버린 동생은 내일 또 어떤 얼굴로 봐야하는지... 테라스에 앉아있는데 저 멀리서 큰 소리가 울린다.



불꽃놀이가 시작되고 있었다. 우리가 다녀온 페스티벌에서 하는 것일까.

그 밤, 결국 나는 잠들지 못했다. 독일에서는 새벽시간, 서울은 영업시간일때까지 기다려 겨우 문제를 해결한 후에야 얕은 잠에 들었다.





다음날은 동생이 쉬는 날이라 같이 카페를 가기로 했다. 연남동처럼 꽤나 분위기 좋은 카페들이 꽤 있었다.

이 날 갔던 카페는 야외 좌석이 꽤 넓은 카페였는데 공부하는 사람이나 친구들끼리 모여 맥주 한 잔을 하는 편안한 분위기였다.


고양이는 어디서 만나도 힐링


프라이브루크 사람들은 꽤나 자유로운 분위기인 것 같다. 특히 시내 인근에는 학생들이 많아서인가 유독 젊고 활기찬 분위기가 느껴진다. 이 날 갔던 카페도 다르지 않았다.



고가 위의 사람들


대표적으로 그걸 보여주는게 중앙역 근처에 있는 이 고가 다리 아닌가 싶다. 전체적으로 높은 다리는 아니지만 저렇게 사람들은 위에 올라가 맥주를 마시거나 일광욕을 즐기고 있었다. 동생이 한번쯤 저걸 해보자고 했는데 나는 무리. 자유로운 느낌과 저 위에서 보는 풍경은 너무나 궁금했지만 약간의 고소공포가 있는 나에겐 절대 무리다.



이 날의 카페 헤르만의 스테이크 최고였음


이 날의 저녁메뉴도 역시나 스테이크

고기와 야채를 굽는 메뉴다보니 맛없기기 힘든 메뉴긴하지만 이날은 유독 맛있게 느껴졌다. 이 날 이후에도 몇 번 이곳에서 스테이크를 먹었지만 이 날이 가장 맛있었다.



이건 물같은 것


이 날은 맥주를 잔뜩 마셨다. 쨍하게 맑은 하늘에 느긋하게 저물어가는 노을을 보는 것도 좋았고, 특히나 어제 나를 괴롭혔던 계좌 문제도 해결했기 때문에 모처럼 마음이 편했다. 미리 걱정하지 않고 바로 지금을 즐겨봐야지. 이때쯤에서 그런 생각을 겨우 했던 것 같다.



프라이부르크의 노을


이 여행의 끝에 나는 무엇을 느끼게될까.

아니 여행이고 뭐고 나는 나인데 왜이렇게 나한테 맘을 여는게 어려울까. 이 시간이 끝나면 나는 마음을 열 수 있을까. 열린 마음으로 사는 인생은 지금까지와 무엇이 달라질까.


지는 노을을 바라보며 숙소로 돌아오면서 많은 생각이 오갔다.

낯선 외국에서의 인생을 가꾸고 있는 동생은 외롭지 않을까. 말이 통하고 태어난 나라에서 살고 있는 나는 그럼 외롭지 않은걸까. 수없이 많은 생각이 교차하는 밤이었다.




프라이부르크 중앙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