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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미수 김 Jun 11. 2023

며느리의  그 어떤 사연들

시월드(媤world)가 무엇일까?

시월드는 "시댁" 혹은 "시집살이"를 나타내는 대한민국의 인터넷 신조어이다.

-위키백과


팟캐스트를 통해 함께한 짧은 시간은 며느리이자 엄마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며느리이자 엄마들의 행복하고 즐거운 삶의 이야기•사연을 나누는 것도 좋습니다.

그러나 이 순간에도 엄마이고  며느리가 처음이라서 겪는 어려움은 당신 혼자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앞으로의 희망을 위해 그들이 나누고자 하는 이야기를 사연을 응원하며 적습니다.


1. 안부 전화는 며느리의 의무인가?!

-뉴저지 1년 6개월 차 며느리


오늘도 울립니다. 핸드폰에 저장된 이름 시어머니가 보입니다. 시어머니가 전화를 하십니다.

"너는 어쩌면은 먼저 시댁에 안부 전화를 걸지 도 않니?"

"내가 꼭 먼저 걸어야 하니?"

“아직도 오빠라고 부르니? 내 아들 너보다 8살 많은 너의 남편한테!”

거진 일주일에 3-4번 치러야 하는 일과인 것입니다.

결혼한 지 며느리가 된 지 1년 하고 6개월이 되어갑니다.

한 번 하고 반의 사계절이 바뀌었습니다. 이제 이것이 나의 한도인 것 같습니다. 더 이상 이 상황을 못 받아들일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뭣도 몰라서 그래 잘해보자! 오빠가 “그냥 신경 쓰지 마! 잠깐 통화만 하면 돼!”


며느리가 처음이라서 시부모님이 어른이라서 그래 존대하자 그러면서 자신을 다독이면서 지내왔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아닙니다. 더 이상은 아닙니다.


나는 그동안 시어머니가 전화로 “전화 때문에”하신 말씀을 기억나는 대로 전부 적어나갔습니다.

"너는 어쩌면은 먼저 시댁에 안부 전화를 걸지 도 않니?"

"내가 꼭 먼저 걸어야 하니?"

"너와 전화 통화 하는 게 하늘의 별을 따는 것보다 더 힘이 드는구나!"

"옛날같이 번호를 돌리는 것도 아니고 세월이 좋아져서 누르기만 하면 되는데?"

"전화번호 누를 시간도 없니?"

"다른 며느리들은 알아서 척척 안부 전화도 잘한다고 하던데!"

"친정 엄마 한테는 네가 알아서 잘 전화하지!"

"우리가 바라는 게 뭐가 있겠니? 안부 전화받는 게 즐거움이지!"

"그 간단한 전화 통화 하는 것도 하는 게 그렇게 안되니? 힘드니!"

"너는 도대체 하루 종일 뭣을 하냐고 전화 한 통 못하니!"

"집에 종종 들르지 못하더라도 전화 한 통이라도 하면 얼마나 좋니!"

"전화 통화가 안되면 안부 문자라도 너희 시부모 한태 보내는 게 그렇게 안되니!"

"시아버지한테 라도 안부 문자 좀 보내 드려라!"

"직장 다니는 너희 동서도 안부 전화는 꼭 하더라!"

"너는 집에서 살림만 하고 있는데도 시부모는 안중에도 없나 보구나!"

"전화 한 통 문자 하나 너 한태 받아보자고 구걸을 해야 하니! “

며느리는 적고 있지만 적으면서 더 열이 나는 것 같습니다.

전화라는 단어만 들어도 눈물이 한 방울 흘릴 것 같습니다.


오빠 어쨌든 남편이 집에 왔습니다. 저녁 식사를 끝낸후에 식탁에 앉아서 말을 먼저 꺼냈습니다.

시부모님 특히 시어머니의 전화 통화에 대해서 그리고 적은 것을 보여 주었습니다. 말을 건넸습니다.

“왜 나만 전화를 시부모님께 드려야 해요?”

“오빠가 아들이니깐 오빠가 안부전화를 드려야 하는 게 아닌가요!”

“오빠도 전화를 안 하는데, 왜 내가 전화를 해야 돼요!”

나는 별로 할 말도 없어요…

“지금 결혼한 지 1년 반밖에 안 됐는데 그전에는 누가 어떻게 전화했어요?”

시부모님께 전화는 며느리인 내가 알아서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강요당하는 게 아니고요!

전화를 먼저 드려도 좋은 말도 안 하시면서!?

이 전화통화 때문에 오빠 어머님이 너무 중요시해서 그동안 잘해보려고  서운하고 지나친 말씀을 하셔도 오빠 말대로 그냥 전화받고 드렸어요… 이제는 안 하고 싶어요! 이것은 정상적인 것이 아닌 것 같고 마음만 아파요.

이런 게 시집살이인가요? 오빠 어머니와 전화통화 하라고 결혼했어요?! 내가 오빠 수행비서예요?!


그래서 나는 오빠한테 부탁하고 싶어요…

오빠 어머님이 바라시는 전화 통화 안부 전화 이제부터 똑같이 나의 친정 부모님한테 똑같이 해줘요…

오빠가 나 자신을 위해 나 자신을 아내로서 존중한다면 같이 똑같이 서로의 부모님께 전화 연락 드리는 것을  해주기를 부탁했습니다.  처음으로 하는 싸움일 수도 있고 말다툼 일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 일이 있은 뒤로 아니면 오빠가 시어머니한테 말을 했는지 한 동안 시어머니의 전화번호를 나의 핸드폰에서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 후로부터 오빠와 저는 주말에 서로의 부모님께 안부 전화를 같이 드리기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뉴저지 1년 6개월 차 며느리는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했습니다. 앞으로의 나은 결혼생활을 위해서 자신과 비슷한 상황을 맞이하게 되는 초자 며느리에게 그  화근의 전화 통화•안부 문자는 며느리만의 의무가 아니라는 것을…




2. 당신에게는 당신 아들만 아는 시어머니

-버지니아 연이 엄마 14년 차 며느리


외동이 아닌 아들 셋 그리고 막내딸 하나 있는 시가족들입니다.  그러나 시어머니에게는 큰 아들만이 아들이었습니다. 그 무엇을 하던 그 무엇을 먹던 큰 아들뿐이었습니다. 그렇기에 그랬을까? 너무 지나친 그 어머니의 행동을 알고 헤어지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애원하고 쫓아다니고 찾아다니고 그렇게 1년을 표현했습니다.


결혼을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친정아버지한테서 연락이 왔습니다.  미래 시어머니가 될 사람이 친정아버지 뒷조사를 하고 알아봤다는 것입니다. 너무나 황당하고 실망하고 그러나 그의 어머니를 알기에 그가 간절히 미안하다고 하기에 그럴 수 있겠지 하고 결혼준비는 계속 진행이 되었습니다.


야외 결혼식이었습니다.  그런데 결혼식 주례사의 늦은 도착으로 상황이 잠시 동안 지연이 되고 불안했지만 1부 2부까지 잘 마쳤습니다.  그날 저녁 11시쯤에 호텔에서 쉬면서 내일 아침 떠날 신혼여행을 준비하고 있는데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술을 드셔서 취하신 건지 시어머니가 오늘 결혼식을 끝내고 내일 신혼여행을 준비하는 며느리에게 큰소리를 치기 시작했습니다.  “결혼식을 그딴 식으로 준비했냐고 시아버지 친구들한테 창피하고 주절주절”…

그냥 눈물만 흘리며 아무 말도 못 하고 있는데, 남편이 전화를 건네받고 시어머니한테 화를 내고 끓었습니다.  그녀는 바로 호텔 방을 나왔습니다.  호텔 안에서 눈물을 흘리며 어디로 가야 할지 우왕좌왕하다가 끝구속에 있는 의자를 발견하고 한 동안 앉아 있었습니다.  남편이 쫓아와서 그녀 뒤에 앉아서 있었습니다.  밖이 밝아오는 것이 느껴지는 순간에 시어머니가 찾아왔던 것입니다. 사과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신혼여행지로 떠나기 위해 가까스로 비행기 시간에 맞춰서 공황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신혼여행 기간 동안 눈물과 슬픔의 시간과 날들이었습니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와 결혼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그 둘은 편하게 시작했습니다.  결혼 전부터 며느리의 행동 하나하나가 마음에 안 들고 시어머니 눈에는 안 차는 며느리… 일주일에 주기적으로 시어머니가 며느리한테 전화를 합니다.  

간섭 잔소리 그러나 술을 마시고 전화를 할 때는 더 괴롭고 슬펐습니다.

“왜 내 아들에게 라면을 먹이냐!”

“친정에서 음식 하는 것을 배우지도 않았냐!”

“하루 종일 하는 일이 뭐냐?”

임신이 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기쁘고 행복했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시어머니가 전화연락이 왔습니다.

며느리에게 축하보다는 “네가 키가 작아서 걱정이다.”

“너는 왜 일을 안 하냐!” (임신 중이었을 때 이런 상황을 알기에 친정 부모님이 두 분 다 매달 생활비에 보태게 돈을 보내주시고 있었던 것을 시어머니가 아시면서...)

“왜 일 끝나고 집에 들어오는 내 아들한테 집에 오는 길에 우유를 사다 달라고 어떻게 시키냐!” 한 시간 정도 잔소리를 들은 적도 있습니다.

시아버지 생신이라서 스웨터를 남편과 같이 골라서 포장도 정성껏 하고 드렸는데 “캐시미어 밖엔 안 입으신다. 이런 거사지 마라!”

어느 날 시어머니 친구분들과 식사를 하시면서 술을 드셨는지 며느리에게 전화를 해서 "내 아들 고생시키는 못된 것!"이라고 호통을 치십니다.  

그래서 며느리가 “못된 것?!“ 똑같이 따라서 말을 했습니다.

전화 속으로 들립니다.

시어머니의 친구분들의 한 마디씩 하시는 말소리가…

다른 주에 사시는 친정엄마가 집으로 임신한 그녀를 보러 온다고 시어머니에게 전하자 오지 말라고 합니다.

“내 아들 힘들게 일하고 집에서 쉬어야 한다고!”

그 밖에도 너무나 많게 힘들게 들어야 하는 잔소리와 간섭들 불평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안부 전화 한 통 안 한다고 불평을 종종 하십니다.

좋은 소리도 듣지 못할 텐데… 하고 싶지가 않았습니다.

연이 엄마는 남편에게 그동안 참고 있던 모든 일들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시어머니는 “나는 그렇게 심하게 말한 적 없다. 그냥 너희만 잘살면 된다. 그뿐이다.”라고 간단하게 답을 하셨다고 합니다.

그 후로도 계속되는 시어머니의 언행과 전화 연락으로 남편과 싸움이 늘어나고 불화의 연속이 계속되었습니다.

그런 소리를 들으면서도 그런 일들을 겪으면서도 연이 엄마는 결혼 생활을 유지했습니다.  자신의 딸 연이를 자신과 같은 입장을 이혼한 부모 밑에서 살아야 하는 상황을 만들어주고 싶지 않은 마음이 간절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연이 엄마도 나이 40 중반이 되었습니다.


어느 날 소식을 전해 듣게 됩니다.  시어머니가 치매기가 있다고 시가족들로부터… 어떻게 이런 일이 그 시어머니가 유난하게 연이 엄마를 먼저 찾는다고 합니다.  이 말을 전해 들었을 때 연이 엄마는 시어머니의 첫 만남부터 시작된 그동안 지금까지 있었던 모든 순간들이 겼은 일들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지금 연이 엄마에게 남은 건 마음의 상처 전혀 아물지도 않은 흔적들만 남아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한 동안 연이 엄마는 눈물만을 흘렸습니다.


연이 엄마는 남편에게 부탁을 합니다.  친정엄마가 계신 주로 이사를 가서 살고 싶다고… 이혼을 하더라도 옮기고 싶다고… 남편은 연이 엄마의 부탁을 들어주었습니다.  남편은 자신이 지켜주지 못한 미안함을 연이 엄마의 부탁을 들어주는 것으로 표현해 주었습니다.  남편은 시댁가족들에게 알리고 옮겼습니다.  그 후로부터 그 시어머니는 집에서 간병인이 보조하기에도 힘들어져서 정식 요양원으로 모시기로 시댁 가족들이 결정을 했다고 합니다. 이후로 연이 엄마 세 가족은 시어머니가 항상 말한 데로 “그냥 너희만 잘살면 된다. 그뿐이다.” 그렇게 세 가족이 잘 살고 있다고 합니다.


연이 엄마는 자신의 이야기를 알리고 싶어 했습니다. 14년의 긴 세월이었지만 자신의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 자신과 같은 이혼한 부모 밑에서 본인의 딸이 같은 삶을 살기를 바라지 않았기에 그것이 제일 큰 이유였기에 참아내고 이겨냈던 것이었습니다.   엄마이기에 강하다는 견뎌냈던 마음 또한 전하고자 합니다.




3. 참기름을 싫어하는 시아버지

-시카고 제이 엄마 15년 차 며느리


시아버지는

참기름을 너무나 싫어합니다.  집안에서 그 한 방울의 냄새라도 난다면 그날은 온 집안이 뒤집어집니다.

시아버지는 점잖게 행동 언행을 하려고 하십니다. 대우받는 것에 행복을 느끼고 받기를 좋아하십니다.  특별히 골프장 그리고 식당에서 대우받는 것에 가장 행복해하십니다.  시아버지는 시어머니와 서로 다툼으로 시어머니가 친구분들과 기분 전환차 밖으로 나가셔도 당신 자식의 며느리들한테는 남편의 순정적 내조를 해야 한다는 사명을 내세운다고 합니다.


무뚝뚝한 며느리보다 뱀의 혀 같은 며느리를 우선으로 대합니다.  그렇기에 뱀의 혀 같은 며느리인 동서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그대로 듣고 무뚝뚝한 며느리를 혼낸적도 있다고 합니다.

손자가 태어나고 첫돌이 되었을 때 큰 의미로 만불을 주셨습니다. 남편이 바빠서 부탁으로 그 무뚝뚝한 며느리가 바로 아이의 이름으로 저금통장을 만들고 미성년자이어서 보호자로서 이름을 넣었습니다. 그러나 당신 아들 이름이 아닌 그 무뚝뚝한 며느리가 보호자로 이름이 기재된 것에 “어디다 손을 돼!” 다시만불을 가져가셨다고 합니다.


또한 시아버지는 아들이 필요할 때는 어떤 식으로든 설득을 해서 시아버지 사업에 일을 하게 만듭니다. 시킵니다.  심지어는 일을 도와주면 집을 살 수 있게 보증금을 내줄 테니 알아보라고 했습니다. 그 말을 믿은 남편은 열심히 일을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하고 그 하루 쉬는 일요일에 남편과 그 무뚝뚝한 며느리는인 제이 엄마와 열심히 부동산 에이전트를 만나서 집들을 알아보았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상황에 맞는 집을 찾아서 전하자 시아버지는 “시세 융자 이자가 너무 높다” 면서딱 잘라 거절해 버리셨습니다. 마음이 상하고 속상했지만 그 부동산 에이전트한테 이 결과를 알려야 하는 현실이 너무나 힘들었다고 합니다.


당신의 아들을 필요할 때는 어떤 식으로도 설득을 해서 당신의 일을 하게 만드는 것에 학을 뛰고 화가 난 둘째 아들은 시부모 집으로 찾아가 식탁의자를 던지며 화를 내기도 했습니다.  그러자 시아버지가 경찰을 부를 테니 당장 나가라고 했습니다.  그로부터 둘째 아들과 사이가 틀어지고 연락이 두절되자 시아버지는 그 무뚝뚝한 며느리에게 “네가 맏며느리이니 사과를 대신 전하라”라고 시키는 황당한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 후로도 기본도 안된 일들이 생기고 그럼에도 그 무뚝뚝한 며느리인 제이 엄마는 친정아버지의 말을 따라서 며느리로서 할 도리를 했습니다.  그녀의 남편도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녀의 방패막이 돼주지를 못했다고 합니다.  아무도 그녀의 옆이 돼주지를 안 했습니다. 제이 엄마에게는 기댈 곳이 없는곳이었습니다.


세월이 흐르고 제이 엄마의 친정아버지가 돌아가시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결심을 했습니다. 친정아버지와의 약속을 지켜서 마음이 뿌듯했습니다.  더 이상은 이들과 엮기고 싶지 않았습니다. 이런 대우를 더 이상 받고도 받을 필요가 없다고생각했습니다.


제이 엄마는 조용히 실력이 좋은 유태인 변호사를 찾아서 꾸준히 시댁식구들이 감히 한마디도 못할 만큼에 모든 자료들을 준비하고 유태인 변호사의 자문에 따라서 어느 날 갑자기 이혼 청구 소송을 했습니다. 유태인 변호사 역시 제이엄마의 그동안의 결혼생활에 이야기를 듣고  더 강력하게 준비했다고 합니다. 그 결과 양육권도 많은 퍼센트를 가지게 되고 생활비 양육비도 지원받고 원하는 좋은 결과를 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혼 소송이 깨끗이 합의로 잘 끝난후 제이 엄마는 아이와 함께 미쉐린 가이드에서 스타2을 받은 한국 식당으로 예약을 하고 갔습니다.  그 무뚝뚝한 며느리 제이 엄마는 시그니쳐 요리와 소고기 돌솥밥을 시키고 마음껏 참기를 붓고 비벼서 맛있게 제이와 식사를 하고 행복한 삶을 살게 되었다고 합니다.


제이 엄마는 자신의 이야기를 남기고 싶어 했습니다. 혹시 자신과 비슷한 상황을 겪는 며느리에게 응원을 전하며…

아무리 집에서 살림만 한 며느리라도 하고자해내고자 하는마음이 있다면 간절하다면 해낼수 있다는 것을…


메모: 제가 즐겨읽는 “노자 도덕경” 에서 부분 입니다.

가끔씩 며느리인 엄마들이 저에게 속상함을 하소연을 전할때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심정에서 소개하는 몇 글귀들 입니다.


“우울한 사람은 과거(過去)에 살고, 불안한 사람은 미래(未來)에 살고, 평안한 사람은 현재(現在)에 산다.”


“가지 않으면 이르지 못하고, 하지 않으면 이루지 못한다.”


“누군가 너에게 해악을 끼치거든 앙갚음하려 들지 말고 강가에 고요히 앉아 강물을 바라보아라.

그럼 머지않아 그의 시체가 떠내려 올 것이다.”


“그릇은 비어 있어야만 무엇을 담을 수가 있다.”


“적게 가지는 것은 소유다 많이 가지는 것은 혼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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