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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사과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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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ppleLee Jun 27. 2017

경비 아저씨

지구별 생존기

쾅쾅쾅

새벽 4시 30분.

엄연한 초인종이 있음에도 문을 두들기는 패기. 아니나 다를까.

역시나 경비아저씨다.


이쯤 되면 내가 어제 자정 퇴근하며 택배 짐을 찾아간 것에 대해 복수하시는 건가 싶은 마음에

싸워야 하나 하는, 사람마다 하나씩 있다는 광기가 나도 있구나 하는 순간이었다.


몇 호예요?

왜 나한테 허락도 안 받고 그런 물건을 엘리베이터로 옮기는 거예요?!

수납공간이 부족해 사 온 가구를 옮기는 아버지에게 다짜고짜 소리를 지르던 경비 아저씨.


아침 7시.

출근하는 나를 불러 세우고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경비 아저씨.

솔직히, 시간이 지나서 인지, 아니면 그때 너무 놀라서인지.

어떤 이유로 그때 경비아저씨가 나에게 그토록 화를 내셨는지는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가난이 익숙해 월급날이면 엄청난 양의 생필품을 저장강박증이라도 있는 양 사재기하는 나.

경비실에 들러 그 짐들을 찾아가는 날이면

'000호 대단해~' 엄지척과 함께 부끄러움을 주시던 아저씨.


일주일 전.

아저씨가 그만두셨다.


평소, 다른 입주민들로부터 다양한 종류의 항의를 받고 있었다는 것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나 또한 그들과 의견이 같았지만 적극적으로 항의하는 대신 그러려니 하며 지내던 중이었다.


그런데 막상 아저씨가 그만두셨다는 엘리베이터 속 문구와 함께 익숙하지 않은 얼굴의 경비 아저씨를 뵐 때면 새로운 분에 대한 설레임보다 뭔지 모를 씁쓸함을 느꼈다.


'어떤 이유로 아저씨는 작별인사할 겨를 조차 없이 그만두셨을까?

월급에 비해 일이 힘들었던 걸까?

지난번 하셨다던 수술이 잘못되었던 걸까?'


이제는 답을 얻을 수 조차 없게 돼버린 궁금증들이 아저씨의 빈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미처 전하지 못했던 말은 훗날을 기약해야 될 것 같다.


 '아저씨 그동안 고마웠어요,

더 친절하게 웃으며 인사하지 못해 미안했어요,

그 많던 택배 짐 맡아주시고 때론 들어다 주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부디, 건강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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