싼티탐 아침 산책

by 나나꽃

치앙마이에 와서 가장 먹고 싶었던 게 있다. 태국 북부 국수의 대표주자 카오소이도 아니고 먹으면서도 침이 나오는 커리 깽항레도 아니었다. 연유를 끼얹어 먹는 찹쌀밥과 망고, 카오니아오 마무앙.


카오니아오 마무앙을 맛보지 않은 사람은 뭐 그리 요상한 만남이 있나, 할 거다. 처음엔 나도 그랬다. 망고가 흔하다 보니 아무거나 막 갖다 조합을 하네.

하지만 그 아이들을 한 입에 넣고 우물거리면서 오묘한 맛에 빠져드는 건 순식간이었다. 고소함과 달콤함과 상큼함과 쫀득함이 어우러지는 행복한 맛, 하하 호호 후후 흐뭇한 웃음을 짓게 만드는 맛.

싼티탐 5거리 아침 노점에서 찹쌀밥 한 덩이를 200원에 샀던 기억이 났다. 망고는 시장이나 거리에서 사다가 내 손으로 아주 쉽게 카오니아오 마무앙을 만들어 먹곤 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싼티탐 5거리에 나가 보았다. 찹쌀밥 노점은 없었다. 하긴, 7, 8년이나 지났으니. 아쉽지만 포기하고 왔던 길의 뒷골목으로 향했다. 옷 입고 신발 신고 나온 게 아까우니 잠깐 산책이라도 하자! 메인 도로는 쉴 새 없이 달려가는 자동차들과 오토바이들로 정신이 쑥 빠지지만 한 블록 뒤 골목은 공기가 느릿느릿 한가했다. 치앙마이의 알싸한 내음과 새소리에 찹쌀밥은 바로 잊었다.


나의 집 뷰도이로 가면서 싼티탐을 이루는 작은 것들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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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앙마이를 걷다 보면 흔히 만나게 되는 게 개들과 냥이들이다. 목줄을 채우지 않은 개들은 좀 겁나지만 다들 짖지도 않고 순하다. 냥이들은 도도한 자태든 비글미가 넘치든 언제나 사진에 찍히는 대로 기본 퀄리티를 보장해준다. 어서 찍어보라고 토분 옆에 가만히 엎드려주는 냥이, ‘나도 나름 포토제닉인데’ 자세 잡고 서 있는 멍멍이, 만나서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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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전깃줄의 군단. 치앙마이에선 자연스런 풍경일 뿐 지저분해 보이지 않는다. 내 나라에 있을 땐 까칠했던 눈길이 이방인이 되면 유해진다. 잘 지내기 위해 발동하는 약아빠진 감성인가?


내가 좋아하는 식물 꽃기린을 어느 게스트하우스 화단에서 무더기로 만났다. 이건 뭐, 꽃기린 담장이야? 낯선 곳에서 익숙하고 편한 이를 만난 것 같다. 우리 집 꽃기린은 치앙마이에 오기 전 이웃에 입양 보내고 왔는데... 꽤 오래 같이 살았던 아이라 마음이 짠했다. 방치하거나 내키는 대로 돌보지 않는 한 잘 크는 애니 별일 없이 지내고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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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앙마이에서 정말 보기 좋은 풍경은 멋대로 가지를 축축 늘어뜨린 나무들이다. 집 밖으로 뻗어 나가건 말건 자라지는 대로, 마음대로 제 모습을 만들어가는 치앙마이의 나무들은 자유롭고 행복해 보인다.


태국어를 볼 때마다 글자가 아니라 그림 같거나 이상한 나라의 음표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전 태국 여행 후, 문자 자체가 귀엽게 노래를 하는 듯 예뻐 EBS 교육방송의 태국어 초급 강의를 들은 적도 있다. 꽤 열심히 했는데 완벽하게 까먹었다. 싼티탐의 YMCA에서 태국어 강좌를 신청해 들어볼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이제 공부하는 건 싫어~ 라고 하기 전에 머리에 잘 들어오지도 않는다.





11월에서 1월까지는 태국에서 날씨가 가장 좋을 때다. 낮엔 햇빛이 따갑지만 아침저녁으론 선선하고 하늘이 말할 수 없이 파랗고 깨끗하다. 그 하늘에, 치앙마이를 떠나 어느 나라인가로 향하는 비행기가 가로선을 그으며 날아간다. 치앙마이에서는 어느 지역이든 떠나고 도착하는 비행기를 수도 없이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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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한 바퀴 산책 끝에 까오니여우 마무앙 도시락을 만났다! 미니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찹쌀밥과 망고, 진짜 조그만 연유 봉지와 플라스틱 미니 숟가락. 양이 너무 작다 싶으나 보물찾기에 성공한 것처럼 안면 근육이 활짝 펴진다. 하나에 800원. 비닐봉지에 넣어준 까오니여우 마무앙을 들고 숙소로 향한다.

플라스틱 용기와 비닐봉지는 내가 기피하는 것들 중 하나지만 치앙마이에선 별 수 없다(한국도 마찬가지지 참). 주방이 없는 집이 많을 정도로 외식 문화가 발달한 태국은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음식물을 담은 플라스틱 백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 천지다.


어쨌든 좋은 산책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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