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의 작은 도시 치앙마이의 매력 중 하나는 나름의 특징을 가진 마켓이 꽤 많다는 것이다. 오늘은 그중 엄지를 치켜들고 싶은 마켓을 다녀왔다. 반 수안 파이롬 시장, 나나정글, 뱀부 새터데이 마켓. 하나의 마켓에 이름이 세 가지다. 나는 주저없이 ‘나나정글’이라 부른다. 호기심과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이름 나나 정글! 나나정글은 ‘나나 베이커리’와 ‘정글’을 합해 만든 말이다. 이 소중한 마켓이 나나 베이커리의 주말 숲속 빵집에서 시작되었다니 마켓 이름에 ‘나나’를 넣어도 부당할 이유는 없다.
아침 7시, 바이크 택시를 타고 달려온 마켓 입구. 나나 베이커리의 빵을 구입할 사람들에게 빨간색 티켓을 나눠주고 있다. 일단 번호표부터 받아놔야 빵을 살 수 있다. A-8번. 여덟 번째면 꽤 부지런을 떨고 온 셈이다. 내가 아침 5시 50분에 알람 소리를 듣자마자 일어나 분주히 외출 채비를 하는 일은 일 년에 한두 번 있을까 말까. 치앙마이에서 한 달 살이를 한다면, 재미난 마켓에 가기 위해 주 1회는 날이 밝기 전에 일어나야 한다. 얼마든지, 기꺼이 그럴 수 있다. 좀 늦어도 상관없지만 아침 7시의 숲과 10시의 숲은 다르다.
아직 준비 중인 숲속 마켓, 간이 상점을 세우고 매대를 펼친 상인들은 집에서 손수 만들어온 물건들을 느긋한 손길로 진열하고 있다. 이들은 서두르는 법이 없다. 사바이 사바이. 천천히 천천히.
가장자리에서 바라보면 한눈에 다 들어오는 숲속 작은 마켓, 모든 가게가 준비를 마치기 전에 숲 안쪽으로 난 길을 걷는다. 자유방임으로 무성히 뻗어 올라간 나무들이 내뿜는 초록빛 생기에 모공이 일제히 열리는 것 같다. 수분을 머금은 신선한 숲의 내음을 크게 크게 들이마신다. 낙엽이 푹신푹신 쌓인 길을 따라 드문드문 보이는 집들에 전등불이 켜지고, 빗자루로 마당을 쓸던 청년이 “사와디캅!” 순진한 웃음으로 인사한다. 집들은 소박하면서 누추해 보이지 않고, 자연친화적인 삶을 누리는 여유가 전해진다. 번지수를 적어 키 큰 나무에 매달아놓은 작은 나무판자가 마냥 정겹다. 머리꼭대기, 싱그러운 잎사귀들 사이로 투명한 햇살이 내려오기 시작했다.
길이 나 있는 대로 발걸음을 옮기다 ‘더 가면 길을 잃지 않을까’ 싶을 때, 마켓에서 흘러다니던 음악소리가 들려온다. 숲길은 동그랗게 이어져 있다.
이제 본격적으로 나나정글을 둘러볼 시간. 각종 유기농 주스와 유기농 잼, 유기농 우유, 배 모양의 바나나 잎에 담긴 풀빵, 죽(한글로도 써 있다), 커피, 인도 짜이, 대나무 주전자와 컵, 액세서리, 의류, 오믈렛 팟타이, 유기농 채소……. 작은 마켓이지만 하나하나 알뜰하게 공이 들어간 아이템들이 마음을 빼앗는다.
드디어 나나 베이커리에서 번호를 부르기 시작했다. “A-8!” 또렷이 들린 내 번호 소리에 베이커리로 입장. 베이커리 직원은 번호표대로 몇 명씩 끊어 손님을 들여보내고, 빵을 다 고른 손님은 반대편에서 계산을 하게 되어 있다. 계산을 하면 바로 앞 유기농 채소 가게와 겸한 오픈 카페에서 공짜 커피를 준다! 운반 도중 다 식어 크루아상은 맛이 떨어졌지만 이 깜찍한 센스에 오븐에서 갓 꺼낸 빵인 듯 맛있게 먹어준다. 나나 베이커리는 태국인-프랑스인 부부가 운영하고 있다는데, 본점이 싼티탐 나의 숙소 가까운 곳에 있다. 양팔을 펼치면 오른쪽 왼쪽 매대가 손끝에 닿을 것 같은 작은 베이커리에서 창안해낸 숲속 베이커리, 멋지고 또 멋지다.
쇼핑에 큰 관심이 없는 나지만 몇 번 더 지갑을 꺼냈다. 정성에 정성을 다해 만들어주는 인도 짜이, 완전 큐트한 대나무 주전자, 푸짐한 채소(상추 한 다발과 이름 모를 채소 한 다발이 합해 800원이라고?), 그리고 김치!! 김치 귀신이 한 달 반 동안 김치는 구경도 못 하고 태국의 김치 쏨땀으로 대신했는데 나나정글에서 김치를 만나다니. 김치뿐 아니라 닭강정+밥, 김밥까지, 매대 덮개에 쓰인 ‘KOREAN FOOD’라는 문구가 무색하지 않다.
한국의 구미에 있었다는 사장님은 김치를 구입한 나에게 김밥 하나를 슬쩍 건네준다. “Free!” Free라는 말을 진정 좋아하지만 공짜로서의 Free는 언제나 감사히 환영! 한국에서 먹었던 음식을 나나정글의 특별한 아이템으로 가져와 차별화된 장사를 하고 있는 사장님 행복하세요. 밥 한 공기 양의 김치가 4천 원이면 매우 합리적인 가격. 김치 냄새를 맡으니 입 안 가득 침이 고인다.
어느 집 앞마당만 한 공터엔 버스킹이 시작되고, 장을 보러 온 사람들은 돗자리를 펼치고 앉아 장에서 산 먹거리를 입에 넣으며 앳된 청년의 노래를 즐긴다. 너무나 멋진 삶 아닌가! 바르셀로나 몬주익 언덕 스페인광장에서 장엄한 분수쇼와 함께 울려퍼지는 음악을 들으며 ‘나만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 거야?’ 눈물이 핑 돌았던 오래전 그날처럼, 나는 함께 왔다면 너무나 행복해했을 엄마와 동생, 천국에 계신 아버지를 떠올리며 눈물이 핑 돌았다.
어쨌든, 오늘은 치앙마이의 마켓들 중에서 나나정글이 최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