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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나꽃 Mar 13. 2024

채소는 물만 먹고 크는 게 아니야

분양 완료 문자메시지를 받고 바로 텃밭을 보러 갔다. 먼저 와서 좋은 자리를 ‘찜’ 할 수 있다는 농장주 말씀에 “넵!” 하고 날아갔다. 은행 선택을 잘못해 온라인 송금이 안 되면서 전화 문의를 한 게 이득이 된 셈. 


나보다 빠른 사람은 늘 있다. ‘1빠’로 제일 좋은 자리를 차지한 농부가 있어 나는 그 옆 자리를 차지했다. 동선이 좋은 가장자리인데다 물탱크, 피크닉 테이블이 있는 휴식 공간과도 가깝고 코앞에 산, 그 위엔 하늘이 시원하게 펼쳐져 농사 시작도 전에 이게 무슨 행운이냐 싶다.    

 

밭을 갈려면 농기구부터 구입해야 하나? 머릿속에 호미와 갈퀴 같은 것들이 왔다 갔다 하는데 농장주께서 실망스런 희소식을 전했다. 4월 5일경부터 농사를 지을 수 있다, 그때까지 농장주님이 비료를 섞어 채소가 좋아할 토양을 만들어놓을 것이다, 그 이후에 와서 농사를 지으면 된다……. 농사의 ‘가나다’에서 ‘가’를 내 손으로 할 수 없다는 아쉬움(진짜야?), 그리고 농사를 편히 시작하게 해주신다니 고마워라 싶은 당연한(?) 마음이 동시에 고개를 내밀었다. 김장철 배추나 무를 기르기 전, 8월쯤 비료를 또 한 번 줘야 한다니 그때 밭을 갈아보자!     



밭갈기부터 직접 해보고 싶었던 이유가 있다. 호감 가는 녀석들이 생겨서다. 채소가 잘 자라려면 다양한 양분을 잘 흡수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흙 속에 틈새를 많이 만들어 서식 조건을 최상으로 만들어줘야 한단다. 그래야 저장 공간도 많아지고 공기와 물도 잘 통하게 된다고. 호감 가는 녀석들은 바로 다양한 양분을 만들어줄 곰팡이와 세균 같은 미생물이다.     


지금까지는 없애버려야 할 민폐들인 줄만 알았는데, 흙 속 유기물을 먹고 식물 성장의 필수 양분인 무기물을 배설해주는 기특한 녀석들이라니! 세상의 모든 생물들은 빠짐없이 존재의 가치가 있구나. 인간이 나쁘게 만드는 것일 뿐. 흙에서 나는 향기도 어쩌면 그 기특한 녀석들 때문이 아닐까.     


물만 잘 주고 햇빛만 잘 쐬게 해주면 탈 없이 자라는 줄 알았던 식물이 사람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영양소를 먹고 자란다는 사실. 관심이 없어서 몰랐던 사실에 마음이 낮아진다. 땅속에서 일어나는 일까지 생각해 하나하나 챙겨가며 농사를 짓는 농부님들 생각해 음식 고맙게 먹고 남기거나 버리지 말자.     


여튼, 이제 13제곱미터의 땅에서 새로운 세계가 펼쳐질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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