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나꽃의 봄여름가을겨울 걷기 4>
걷다 보니 둘레길이었던 적은 있지만, 작정하고 둘레길을 걸어본 것은 처음이었다. 걷는 것은 좋아하지만 '둘레길 종주' 같은 목표를 세우고 걷는 것보다 그때그때 마음 내키는 대로, 조건이 되는 대로 자유롭게 걸어다니는 게 나의 걷기 방식이랄까. 북한산 둘레길 19코스. 어쩌다 가보고 반했던 무수골에서 시작해 정의공주묘까지, 1.3킬로미터의 짧은 코스였다. 북한산 가장자리를 완만히 둘러싼 길일 거라는 생각은 초입부터 오산, 처음부터 끝까지 등산을 해야 하는 산길이 이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 정도 뜻밖의 상황은 모험심을 조금 부추길 뿐이다.
마을버스 종점 바로 옆에서 둘레길로 들어서자마자 축축한 숲 냄새가 훅 끼쳐왔다. 코에서 온몸으로 번지는 초록의 싸한 향, 모공이 몽땅 열려 피부가 숨을 쉬는 듯했다. 아, 좋다. 집에서 뒹구는 게으른 주말이었다면 이런 게 어딨어. 나서길 잘 했다. 부지런해야 뭐라도 얻는 법이다. 오래 전 건강관리를 해야 했던 엄마와 종종 산을 올랐던 이후로 처음 와보는 서울의 아름다운 명산 북한산. 아파트 복도에서 멀리 보이는 이 산을 우리 집 병풍 취급했는데, 수려한 산수화 속으로 들어온 것이다.
둘레길을 처음 만든 사람은 누구였을까. 사방으로 열린 길에 눈을 반짝이며, 길에 대한 인문학적 고찰과 즐거운 상상을 많이 했던 이가 아니었을까. 길을 이렇게 다정하고 친절하게 이어놓을 수도 있구나. 혼자 걷지만 배려가 가득한 누군가와 함께 걷고 있는 기분이었다.
'여기서 오른쪽으로 가면 정의공주묘입니다.'
'이곳은 해발 87미터입니다.'
'길이 가팔라 계단을 마련해놓았습니다.'
'쉼터에서 잠깐 쉬어가세요.'
'끊어진 길을 잇기 위해 다리를 놓았습니다.'
인생도 이렇다면 참 살기 편하겠다. 나에게 몇 가지 길이 있는지 가능한 방향들을 보여주고, 선택을 해야 할 때마다 답을 내려주고, 위험할 땐 피하게 해주고,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자리도 마련해놓고, 길이 없으면 만들어주는…….
하지만 친절한 길에도 반드시 오르막이 있고 내리막이 있다. 오르막이 반드시 나이스한 결과를 보장해주는 것도 아니고, 내리막이 곧바로 그저 그런 끝장을 향해 가는 것도 아니다. 발바닥에 탄력을 실어 올라간 쌍둥이 전망대의 뷰는 절반이 아파트 장벽으로 훼손된 것이었고(반대편으로는 짙푸른 숲도 보였지만), 19코스 종착지엔 숲과 도시를 이어주는 브리지처럼 주말농장이 산 밑에 아담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산길이다 보니 곧게 뻗은 길보다 굽은 길이 많았다. 굽이굽이 돌고 돌았던 지금까지의 내 인생과 비슷하게. 재미나게 책을 만들며 일하다 편집권을 지나치게 침해하는 사장님을 참지 못해 그만두었고, 후원하던 시민단체에 들어가 NGO로 숨 가쁘게 활동했고, 연극 마니아로 대학로를 휘젓고 다니다 소극장에서 일하게 되었고, 친구 따라 강남 가는 식으로 두 번째 대학 시험을 쳐 덜컥 붙었고, 그 다음은…… 인생에 가장 쉽지 않은 난코스를 걷고 있는 것 같다. 히힛.
내리막길, 평평한 돌에 앉아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오늘 같이 걷고 싶었으나 일이 있어 못 온 나의 아름다운 친구 쑤기. ‘쑤기’는 그녀를 내 글에 등장시킬 때 종종 사용하는 애칭이다. 쑤기는 그 사실을 아직 모른다. 언젠가 선물처럼 말해주고 싶다. 19살에 보석 같은 이 친구를 알아봤다는 생각을 하면 내가 기특해진다. 숲에서는 나무, 바람, 리드미컬한 길, 새 소리 벌레 소리, 식물의 향기만 느껴도 좋겠지만, 자연을 닮은 쑤기를 잠깐 끼워 넣어도 잘 어울리더라는…….
미디어 매체에서 연이어 들려오는 배드 뉴스들과 개인적인 일로 며칠 쿡쿡 머리가 아팠는데, 짧은 트레킹으로 껑충 회복된 것 같다. 힘이 난다. 걷는 건 정말 좋은 일이다. 배드 뉴스들에 등장하는, 야만의 세력에 의해 고통받는 이들에게 숲의 향기, 청량한 바람 같은 새 힘이 생겨나길 기도하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