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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나꽃 Apr 20. 2024

문제는? 욕심의 무게

조금 쌀쌀한 3월 말이었을 것이다. 

어느 모임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 버스를 타려다가 정류장 옆 샛강으로 내려갔다. 느닷없이 걷고 싶었다. 걷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서였는지, 그곳에서 집까지의 거리가 반으로 접힌 듯 가깝게 느껴졌다. N구의 샛강을 따라 내려가다가 D구의 샛강과 만나는 지점에서 방향을 꺾어 쭉 걷기만 하면 되는, 지도상으로는 단순한 길이었다.     


D구의 샛강으로 접어들어 컨디션이 하강 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목이 말랐고, 허기가 졌고, 모직 재킷이 물에 푹 젖은 듯 무거웠고, 종이류가 많이 든 가방은 묵직했고, 발밑에 쇠로 된 밑창을 댄 듯 발걸음을 떼기도 힘들었다. 그날은 무슨 날이었나. 모임이 있었고, 나는 두 시간 가까이 사람들에게 집중한 상태로 떠들어야 했다. 상쾌하게 걷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 전에, 에너지를 많이 썼다는 걸 기억했어야 했다. 매사 치밀하지 못해 곤란한 상황에 부딪히곤 하는 건 언제나 끝이 날까.     


반으로 접혔던 길이 다시 펴져 갈 길이 멀고멀었다. 차로 막힘없이 이동할 때 20분가량 걸리는 거리, 걸으면 몇 킬로미터나 될까. 그만 걷고 싶었지만 발걸음은 샛강을 따라가길 멈추지 않았다. 여기서 그만두면 실패의 쓴맛을 보기라도 할 것처럼 마음이 단단해졌다. 그만두다니, 걸어야 해. 진땀이 나 재킷을 벗어 허리에 매고 가방을 추스른 다음 다시 걸었다.     


반쯤은 왔을까. 샛강을 따라 길은 아득히 멀어 보였다. 핑, 현기증이 일었다. 빨리 걷는 것도 아닌데 숨이 가빴다. 

이렇게 무리해 걸어서 무엇을 얻으려고? 

미련함을 탓하는 내면의 소리가 들렸다. 찬바람 한 자락이 땀이 배어난 목덜미를 스치고 지나갔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처음에 나는 걷고 싶었을지 모르나, 어느 지점부터는 걷기를 중단하기 싫었을 뿐이다.      

나를 힘겹게 한 것은 옷과 가방과 신발의 무게가 아니라 욕심의 무게였다. 그 어떤 호기심도 없이, 걷는 시간을 은근하게 즐기지도 자연과 순수히 접촉하지도 못한 채 ‘끝까지 걸어야 한다’는 의무감에 감각이 굳어진 보행. 그 어떤 즐거움도 느끼지 못하면서 오기부리며 밀어붙이는 걷기는 얼마나 바보 같은지.      


샛강에서 찻길로 올라가는 길이 보이자마자 방향을 틀었다. 버스 타고 빨리 집으로 가서 물마시고, 옷 벗어던지고, 밥 먹고, 좀 쉬고, 괜찮을 것 같으면 가볍게 동네 산책이나 하자. 욕심을 버리니 마음이 가벼웠고 발걸음도 가벼워졌다.     


욕심의 무게를 달고 걷는 것은 아무런 가치도 없다. 걷기는 채우는 것이 아니라 비우는 것! 

배운 게 있으니 실패는 아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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