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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플민트 May 28. 2023

여자는 나이가 죄

딩크에서 난임부부로

01. 딩크에서 난임 부부로


더 이상 딩크족의 삶을 살지 않기로 결심하자 다음 수순은 난임이었다.


6개월가량에 자연임신 시도에도 아이는 생기지 않았다. 다니던 산부인과 의사는 난임병원을 추천했다. 덜컥 아이가 생길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마음 한편에는 '노력하면 생기겠지'라는 막연한 기대감도 있었는데….


그런 행운은 내게 오지 않았다. 취업도, 결혼도 늘 다른 이들보다 늦었고 그만큼 더 공을 들여야만 하는 게 내 인생이었다.


하지만 난임병원은 내가 가겠다고 맘먹는다고 쉽게 갈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예약부터 난관이었다. 한 달 전에 예약하지 않으면 의사를 만날 수 없었다. 예약 시간에 맞춰가도 진료가 길어지면서 1~2시간은 너끈히 기다렸다.


난임병원이 이렇게 붐빌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병원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인파에 압도됐다. 대기실 의자에 앉기는커녕, 서 있을 공간도 부족해 한적한 구석을 찾아 헤매야 했다. 그곳에서 내 순서가 다 돼 가는지를 수시로 가서 확인해야 했다. 의사를 보는 시간은 10분 남짓에 불과했지만 오전 시간이 다 날아갔다.


너무 안이하게 살았구나.


병원을 꽉 채운 대기자들은 소리 내 크게 웃거나 미소 짓는 사람은 없었다. 얼굴에는 웃음기 대신 긴장감을 장착돼 있었다. 저마다의 슬픈 사연을 담은 듯한 굳은 얼굴들은 보는 것만으로 숨이 막힐 듯했다.


딩크족으로 살아왔던 내가 지금껏 보지 못한 세상이 펼쳐졌다.



02. 만 40살은 응급환자


나이는 죄가 아니라고 믿어왔다. 나이 들수록 심적으로, 물질적으로 조금씩 안정돼 가는 게 좋았다. 하지만 난임병원에서는 나이가 죄였다. 만 40살은 가장 치명적인 병이었다. 의사는 한시도 지체할 수 없는 응급환자를 본 것처럼 진단했다.


시간이 없으니 인공수정 하지 말고
바로 시험관 시술을 합시다.
 


나이가 들었다는 걸 느끼는 건 얼굴에 주름이 하나씩 더해질 때, 볼살이 슬그머니 쳐져 있을 때였다. 노화를 방지하기 위해 비싸다는 화장품을 사서 바르고 가끔 피부과에 가 관리도 받으며 살아왔다. 그렇게 노화를 늦추기 위해 노력하며 살아왔었는데 노화의 대상이라고 여기지 못했던 내 안의 자궁과 난자가 늙었단다.


겉모습에 연연해 얼굴 노화를 늦추려 할 동안 자궁과 난자가 세월을 정통으로 맞고 있었다니.


생리 주기가 좀 짧기는 했지만 나름대로 규칙적이었는데. 억울했다. 신체의 노화를 막을 수야 있겠느냐 만은, 규칙적으로 운동하고 건강보조제도 열심히 챙겨 먹으면서 젊음을 유지하고자 노력해 왔다. 하지만 내 자궁은 내 나이만큼 늙어있단다.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자궁 노화는 듣고도 참 믿기 힘들었다.  


난자 채취 과정에 돌입했다. 시간 맞춰 배에 배란 촉진 주사와 배란 억제제를 매일 배꼽 양쪽에 번갈아 가며 놓았다. 멍투성이가 된 배를 보고 남편은 기겁을 했고 안쓰러워했다. 하지만 정작 나는 무딘 탓인지 그 과정이 그리 힘들지 않았다. 태생이 성실한지라 매일 시간 맞춰 주사를 놓는 건 자신 있었다.



믿기지 않던 자궁의 노화를 이때부터 절감하게 됐다.


과배란주사 5일 차, 중간 점검을 위해 병원을 가자 왼쪽에 2개, 오른쪽에 3~4개의 난자가 자라는 게 보였다. 보통 10~12개가 채취돼야 성공확률이 높다는데 절반도 되지 않는 개수다. 그중에 상태가 좋은 1~2개라고 했다.


시작부터 실패를 연상케 하는 숫자들이었다. 의사는 어차피 실한 난자 하나가 중요한 거라고 위로했지만, 확률상 성공하기가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내 마음속 불안을 달래고 싶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술에 성공했다는 신화가 필요했다. 네이버 대표 난임 카페에 가입했다. 채취가능한 난자의 수가 적었지만 임신했다, 나이 40살에 시험관을 시작했지만 임신에 성공했다 등의 게시물과 댓글을 찾아가며 꼼꼼히 읽어보기 시작했다.



03. 난임 카페에서 위로받다


시험관은 원래 성공률이 높지 않은 시술이다. 정부가 공식 발표한 '2016년도 난임부부 지원사업 결과 분석 및 여가'에 따르면 시험관 아기의 임신 성공률은 29.6%이다. 시험관 시술은 3~4번 이후부터는 회당 성공률이 감소하지만 계속 시도할 수는 있다.


난임 카페는 시험관 시술의 성공률이 낮다는 것을 알지만, 누군가는 성공해 홀연히 카페를 떠나는 게 보이는 세상이다. 성공과 실패의 결과가 바로바로 나오고 그에 따라 극명하게 미래가 갈린다. 누군가는 난임의 굴레에서 벗어나 행복해지고 나머지는 그 굴레에서 계속 쳇바퀴 돌 듯 반복하고 있는 상황이다.


굴레에서 벗어난 이들처럼 언젠가는 성공할 거라는 믿음을 갖고 싶었다. 카페 글들을 읽으면서 입증되지 않은 규칙성을 찾아내고 지키며 과도하게 낙관해 갔다. 낙관은 위험을 과소평가하게 했고 나만은 꼭 임신할 거라고  과신했다.


 '누가 누가 빨리 임신에 성공하나' 경쟁하듯 타인과 나를 끊임없이 비교하며 '좋아요' '확률이 높아요' '잘 될 거예요' 같은 글들에 매몰돼 갔다. 무엇이라도 부여잡고 의지하고 위로받고 싶었던 것 같다.


늘 가까이하던 친구들과는 거리를 두게 됐다. 여자로서 난임은 치부처럼 여겨졌고 친구에게 거리낌 없이 속내를 보여줄 용기가 나지 않았다.



04. 첫 실패… 그리고 휴직


인공지능, AI가 기사도 쓰고 책도 쓰고 수술도 하는 시대. 임신은 여전히 사람의 몸에서 이뤄지는 원초적인 과정이었다. 자궁을 가졌다는 이유로 시험관 시술 대부분의 과정은 내 몫이었다.


매일 일정한 시간에 배에 주사를 놓고 병원을 가기 위해 수시로 반차를 내고 먼 거리를 왔다 갔다 하는 건 쉽지 않았다. 중요한 회의가 잡혀 끝난 후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가 배아를 이식해야 했다. '시험관 시술을 하는 게 자랑도 아닌데…'라는 생각에 주눅이 들었고, 남들이 "유난스럽다"라고 한 마디 할까 봐 하루 쉬겠다는 말이 안 나왔다.


그렇게 정신없 눈치 보며 불편하게 한 첫 시험관 시술은 실패로 돌아갔다.


결국 나도 휴직을 하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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