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마음 닫히기 전, 엄마가 챙겨야 할 것
"아 몰라, 내가 알아서 할께."
워낙 딸보다 말머리가 없는 아들이 더더 변하고 있다.
벽에 돌을 던지는 것도 아니고, 묵묵부답인 경우는 더 많고 아주 냉기가 잔뜩 돈다. 가끔은 말을 걸지 않았는데도 '건들즈므르. 내버려드르.' 가 온몸에서 뿜어져 나온다. 사춘기가 되어가고 있으니 이 모든 것이 지극히 정상적인 과정이겠지만 말이 없어지고, 혼자 있으려고만 하고, 감정 표현이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다. 치고 박고 싸우는 사춘기를 흔히 상상했었는데, 이와는 반대인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 아무것도 하지 않고 곁에서 묵묵히 있어주면 되려나.
자칫 잘못 건드려 큰일이 벌어지기 전에,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이 있을지 생각해본다.
그게 단순히 '하지 않기' 말고, '잘 기다리기', '잘 반응하기', '잘 보여주기'라는 걸 요즘 조금씩 노력해보고 있다.
1. 잘 기다리기
말이 없으면 더 다그쳤다. 아들은 눈맞춤이 중요하다해서 얼굴을 부여잡고 강제 눈을 맞추며 말을 했더랬다.
그랬더니 눈 피하기 도사가 되어버렸네. 다가가면 도망가기 일쑤고. 그렇다고 이대로 피할 내가 아니다.
나는 나대로 마음 먹은 것이 있으니, 그건 바로 정적이 흐르는 그 시간을 말이 되기 위한 준비 시간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잠시 기다려주기로. 끝내 답이 되돌아오지 않더라도 재촉하지 않는 태도 말이다.
대화란 결국 타이밍인 게, 깨어있는 시간동안 좀처럼 열리지 않는 아들 입이 밤 11시쯤, 잠자기 전에 툭 열린다. 하필이면 눈이 반쯤 감긴 타이밍에 듣게 되는 경우가 허다해서 문제지만!
"응, 무슨 일이 있었어? 아들 얘기 들어봐야지."
2. 감정을 잘 받아주기
사춘기가 되어가는 또 하나의 특징은 '짜증'인 것 같다. 별일도 아닌데 갑자기 짜증내는 일이 잦다.
감정은 전이가 가장 잘된다고 하지 않던가. 나도 모르게 짜증으로 맞불을 지피게 된다.
"왜 또 짜증이야?" "엄마가 그렇게 말하지 말랬지?!" 이건 아들의 감정을 갈기갈기 찢어버리는 일이었다.
엄마니까 부모니까 바깥에서 있었던 힘든 마음을 표현한 것일텐데, 아이가 그런 감정을 느낄 수밖에 없었을 상황을 먼저 헤아려보려고 한다.
"그럴 수 있지.", "속상했겠다" 아이의 감정에 공감하며 정리해줄 것.
가뜩이나 불안한 아이 마음에 불을 지피지 말고, 감정에 이름을 붙여주고 느끼는 혼란을 잠재워줄 것.
이건 아이가 스스로 감정을 컨트롤할 수 있게 돕는 방법이라고 본다. 다들 사춘기엔 이유 없는 감정이 많다고들 하는데, 이유가 없다는 건 어른들이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은 아닐까.
3. 나도 감정을 말하는 연습하기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 어른이 되어가면서, 늘 괜찮은 척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게 습관이 되어버렸다.
그렇다보니 아이에게 감정을 알려주기 이전, 나도 내 마음을 감정을 모르는 게 문제다. 말하지 않으면 모른다고 하지 않나. 나도 말하지 않는데, 어떻게 아이에게 말하라고 할 수 있을까. 감정을 숨기는 게 아이를 위한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이렇게라도 말해본다.
"엄마도 오늘 많이 피곤했어. 내일은 회사에 가고싶지 않네."
"힘들 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지. 조금 쉬어야 일도 하고 얘기도 하며 웃을 수 있을 것 같아."
아이에게 바라는 감정 말고, 나도 내 마음을 툭툭 꺼내어 말할 수 있을 것.
엄마가 자신의 감정을 어떻게 표현하고 받아들이는지 보여줘서 아이도 자신의 감정을 꺼내볼 수 있도록 해보는 것이다.
3가지를 완벽하게 실천하지는 못한다. 매일 다짐하면서도 놓치기도 하고 처음으로 돌아가기도 한다.
아이는 계속 커나가고 있다. 가슴팍을 넘어서 눈높이로 내 키까지 넘보고 있기까지 이렇게 해도 괜찮을까 싶은 순간들이 지나가고 있다. 이런 순간들에서 '엄마는 늘 곁에 있어줬다'는 기억 하나는 아이 마음에 남았으면 좋겠는데. 아이가 혼자이고 싶은 그 시간은 아이가 스스로를 알아가고 있는, 아주 소중한 시간이라고 믿고 싶다. 그리고 언젠가, 만약 아이의 마음이 닫히는 순간이 온다면 그 열쇠만큼은 엄마인 내가 가지고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