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 대신 신뢰를 다지는 법
이전 회사에서 동료와 친구가 되었다. 나와 동갑이었고, 처음부터는 아니지만 같은 팀에서 업무를 하면서 가까운 사이가 되다보니 자연스레 '친구'라고 불렀다. 사회에서 만난 사람이니 진정한 친구까지 될 수 없다고들 하는데, 여느 친구들처럼 같이 부대끼면서 쉽지 않은 직장 생활에 헤쳐나가다보니 힘든 것보다 좋은 것들을 함께 나눌 수 있는 동료였다. 이 친구는 나보다 먼저 팀장이 되었다. 당시 누구는 괜찮냐고 내게 물었는데, 난 타이밍은 각자 다르다고 생각하기에 전혀 아무렇지 않았다.
친구가 맡은 팀에서 이상한 소문이 나오기 시작했다. 업무의 기준이 명확하지 않고 마이크로매니징이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결국 팀원들이 하나 둘 나가기 시작하더니, 전원 퇴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친구를 지지하는 상사가 있었다. 나도 그 상사를 알고 있었는데, 어느 날 연락이 왔다. 그 팀을 다시 셋팅해야 하는데 함께 해줄 수 있냐고. 나는 친구의 팀에, 구원투수로 들어가게 되었다.
친한 사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나는 마음이 꽤 복잡했다. 친구의 스타일은 내 성향과 정반대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큰 방향만 잡아주고 자유도를 선호하는데, 친구는 모든 과정을 꿰고 싶어했고 작은 실수도 눈여겨봤다. 팀 업무는 내게 생소한 영역이었기에 익숙하지 않아 처음부터 배워야 했는데, 상사로서의 관계는 존중하지만 그 존중에 쉽게 마음까지 따라가는 것이 아니었다.
겉으로 티를 낸 적은 없었다. 주어진 업무에 몰입했고 그 안에서 치열하게 의견을 나눴고, 결과로 답하고자 애썼다. 하지만 마음 한 켠은 늘 불편했다. 친구였을 때 느끼지 못했던 거리감이 쌓였다. 어떻게 일해야 하지? 이렇게 하면 괜찮을까? 라는 고민이 늘 따라다녔다.
이후 조직개편으로 헤어지게 되었고, 연락은 계속 하지만 친구가 상사가 되었을 때의 경험은 내게 지워지지 않는다. 친근함과 권한 사이에서 흔들리는 관계는 다시 겪고 싶지 않은 부분이다.
지금, 또 비슷한 상황이 찾아왔다. 새로운 회사의 상사가 예전에 직장 내 고민을 나누던 친구이다. 전 직장에서의 경험이 강하게 남아있어서, 솔직히 이번에도 같은 일이 반복되진 않을까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다시 만난 첫날, 나는 안심하게 되었다. 이 친구는 예전에 내가 알던 모습에서 더 단단해져 있었다. 말투 하나에서도 '상사'라는 느낌이 묻어났고 진중함이 태도에 녹여져 있었다. (사실 첫날 느낌은 '낯설다'였는데, 지금 와서 다시 생각해보면 안심했던 것 같다.)
마냥 감정에 기대지 않고, 관계에 흔들리지 않으며 회의 진행하는 모습에서 함부로 꺼낼 수 없는 무게감이 있다. 묵직하게 그 자리를 지키는 모습이 인상 깊다. 감정을 우선한다면 내게만이라도 편하게 대해주면 좋으련만.. 이라는 서운함이 있을 수도 있지만, 이 거리감은 전과 다르다. '역할의 변화'를 인정하는 과정의 거리감이다. 팀장이라는 자리를 경험한 지금의 나는 그걸 알 수 있었다. 관계를 지키기 위한 태도라는 걸.
맞다. 이제는 우정 대신 신뢰를 다져야 한다. 회사에서 만난 사이에는 업무적으로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것을 무시할 수 없다. 친했던 사이지만 역할은 바뀌었고, 우리는 이걸 인정해야 더 오래 갈 수 있다. 감정에 기대기보다, 서로의 위치를 존중하고 신뢰하는 게 더 건강하다.
+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지금의 상사가 마이크로매니징을 하지 않는 건, 리더십의 노하우가 쌓였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때 그 친구는 처음 팀장을 맡아 좌충우돌하던 시기였고, 나는 마침 그 과도기를 함께 겪은 것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생각하니 그 시절의 불편함마저 이제는 이해의 여지가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