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당시 만나던 남자친구와 내 친구 커플까지 넷이 캠핑을 갔을 때였다. 아침을 먹고 난 후 친구의 여자친구가 커피 드립백을 나눠주었다. 건네받은 드립백을 뜯어 날개를 컵에 고정시키고 커피 가루에 뜨거운 물을 붓는데, 그만 한쪽 날개가 꺾여 드립백이 컵 안에 잠겼다. "어맛!"하고 놀란 내 소리에 남자친구가 재빠르게 드립백 날개를 빼며 손에서 컵을 채 갔다. 내가 괜찮다고 할 새도 없이 그는 자기 커피를 내게 주고는 가루가 쏟아진 머그를 단단히 손에 쥐었다.
그 후 몇 달이 지나 그와는 헤어지고 회사 탕비실에서 드립백 커피를 마시려던 때였다. 머그컵에 날개를 고정하고 커피포트로 뜨거운 물을 붓는데 그때처럼 한쪽 날개가 꺾였다. 순간 다리에 힘이 풀리며 재채기처럼 슬픔과 그리움이 몰려왔다. 얼굴도 안 보고 손바닥 만한 메시지 창에서 이별한 탓이었을까. 바닥에 주저앉아 가슴에 손을 얹고 심호흡을 하면서 삼십 대에도 이별의 후폭풍이 이렇게 강할 수 있구나 하고 놀랐다. 그런데 마음 한켠에 오랜만이라며 그 감정을 반가워하는 마음이 있었다. 은근히, 좋아하는 것도 같았다.
이십 대에는 연애를 딱 두 번 했다. 이 년 사귀고 삼 년 그리워하는 연애를 두 번 하고 나니 서른이 되어 있었다. 설마 육 년 내내 전 남자친구에게 매달렸냐고 묻는다면, 단 한 번도 연락하지 않았다. 그저 혼자 과거를 회상하고 X의 SNS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며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행위를 즐겼다. 비련의 여주인공이라도 된 양 잔뜩 이입해서 <이터널 선샤인>,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같은 로맨스 영화도 많이 봤다. 현실 속 나는 비련보다는 미련의 주인공이었는데도.
사실 그리움을 지속시킨 건 영화보단 발라드의 역할이 컸다. X의 싸이월드 BGM, 노래방에서 불러주던 곡, 헤어지러 갈 때 듣던 노래 등등 내 이야기 같은 가사와 한순간에 이별 직후의 기분으로 가게 만드는 멜로디를 나는 쉽게 놓지 못 했다. 다음 연애로 금방 금방 넘어가는 친구들을 보면 나 혼자 과거에 머물러 있는 것 같았지만, 친구들과 다르게 진짜 사랑을 하고 있다고 합리화했다. 전 남자친구가 연애를 새로 시작하거나 괜찮은 남자가 다가와도 감정에 잠식된 채 정신을 차리지 못 했다.
그때 하루는 나를 보다 못한 친구가 “언제까지 걔 얘기만 할 거야. 잊으려고 노력해보긴 했어? 감정도 습관이야.”라고 말했다. 감정이 노력으로 바뀔 수 있다니. 누군가를 노력해서 잊는다는 것은 그때까지 내 인생에 없던 개념이었다. 친구의 말에 충격을 받고 우선 센티멘탈한 음악부터 끊기로 했다. 하루종일 귀에서 흘러드는 감성 발라드가 영향이 없을 리 없었으므로. 러닝머신 위에서도 늘 발라드를 들었는데, 어느 날 그냥 이어폰을 빼 보았다. 마침 헬스장에서는 EDM 플레이리스트를 틀어줬고 달리면서 들어서인지 귀는 금방 새로운 장르에 적응했다. Avicii, Alesso, Kygo, Martin Garrix를 들으며 기본 기분은 점점 밝아졌고 전 남자친구를 떠올리는 횟수도 훨씬 줄었다. 그렇게 깨달았다. 사귀었던 사람을 아예 잊을 수는 없지만, 잊혀져 가는 인연을 억지로 붙잡을 필요는 없다는 것을.
결국 내가 놓지 못했던 건 전 남자친구가 아니라 나의 분위기였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우수에 젖은 나를 매우 좋아했으므로. 물론 EDM도 오래 들으면 정신이 사나워져 센티멘탈한 곡도 들어주어야 하지만, 중요한 것은 내가 감정을 컨트롤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어떤 감정은 가만히 내버려두면 안된다는 것도. 최근 지인은 자신이 전생에 공주였던 것 같다면서 경복궁만 가면 이유 없이 눈물이 난다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했다. 그에게 사극 OST를 그만 좀 들으라고 했더니 자기가 그런 곡을 좋아하는 걸 어떻게 알았냐면서 놀랐다. 나도 <시간을 거슬러>를 좋아하지만 이건 정말 아니잖아? 감수성이 극단으로 가면 저렇게 되는가 싶어 가슴을 쓸어내렸다.
듣고 마지막으로 울었던 곡은 나이트오프의 <리뷰>다. 글을 쓰면서 들어보니 여전히 좋지만 예전처럼 가슴을 후벼파지는 않는다. 하긴 이제는 결혼도 했고, 계속 그런 감정에 휩쓸려 있다면 조금 위험하지 않을까. 드립백 커피를 내릴 땐 한손으로 머그컵을 감싼 뒤 드립백의 양쪽 날개를 엄지와 중지로 누르고 물을 붓는다. 드립백의 날개가 꺾이는 일은 이제 없고 커피를 내리는 사람은 커피도, 마음도 다시 내릴 수 있다는 사실을 안다. 그에게 몇 년 전에 가루가 쏟아진 커피를 마셔준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