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의 피해의식

by Nemo

상처받지 않고 사는 사람도 있을까? 상대방에게 상처 한 번 주지 않은사람 또한 있을까? 어떤 이유에서 든지 모두가 상처를 주고받으면서 살고 있다. 그게 그저 인생의 순리라고 한다면… 삶을 그토록 고단한 것으로만치부해 버린다면, 매 순간 우리는 자기연민에 빠져 살 수밖에 없지 않을까 싶다.


내가 소속된 이 세대만 그런 것인지 아니면 모든 세대가 습관적으로 그렇게 이야기 하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나도 모르게 내 입에 붙어버린 거슬리는 단어가 있다. 나도 모르게자연스레 사용하면서도 스스로에게 언제나 의문을 던지는 단어. 바로 '어른' 이다.


나는 85년생 소띠이다. 이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 나는 한국나이 서른 둘이고, 결혼 2년차에접어들고 있으며, 철저하게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하여 남편과 가정을 꾸리고 살고 있다. 자식처럼 키우고 있는 두 마리의 고양이와 약 두 달 후 뱃속에서 탈출 예정인 29주 된 태아가 있다. 사설이 길었지만… 즉, 나는 어른이다.


그런데 참 이상한 현상이 있다. 나는 내가 어른임에도 우리 부모님세대를 '어른'이라고 부른다. 남편과의 대화할 때에도 부모님 세대를 '어른' 이라고 구분하여 이야기 하고 남편도 이를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 웃어른을칭할 때 '어르신' 이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우리가 사용하는 '어른'이라는용어는 그와 다르다. 마치… 화자를 '아이'로 만들어버리는 신기한 단어이다. 세대를 구분 짓고 경계를 긋는 날카로운 단어이기도 하다.


어른들… 우리 부모님들은 하소연한다.위로는 부모님을 봉양하기 위해(혹은 가계를 책임지기 위해)학업과 꿈을 포기하고 생업전선에 뛰어 들었으며, 아래로는 자신들이 이루지 못한 꿈과 학업의열정을 복 돋아 주기 위해 입을 것 먹을 것 아껴가며 벌어왔다고.


진심으로 감사하다. 나 역시 그 세대의 눈물과 땀이 있었기에 우리가지금을 누리고 있는 것이라 믿고 있다. 하지만 부작용으로… 우리는그들의 아바타가 되어 나의 꿈이 아닌 그들의 꿈을 좇아 왔으며, 주체성과 독립성을 상실하여 아기 캥거루처럼부모의 주머니 속에 숨어 현실도피를 하게 되었다.


음식을 남긴 우리에게 부모세대는 이야기 한다. "내가 어렸을때에는 이런 게 있었으면 형제들끼리 서로 먹겠다고 싸웠을 걸." 여러 학원을 전전하고 시험결과에초조해 하는 우리를 보며 말한다. "우리 학교 다닐 때 이런 학원이 있고 시설이 있었으면 나는전교 1등 했을 걸." 그들의 핸디캡도 이해가 가지만그 때에는 모두에게 그런 혜택이 주어지지 않을 때였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현실을 그들은 모른다. 학원이 보급화 되고 첨단 기기들이 즐비하면서 우리는 어느 때보다 빠르게 치고 들어오는 데이터와 데이터를 정보로정제시키는 속도가 경쟁력의 바탕이 되어버렸다. 그들도 우리와 같은 시간을 공유해 왔을 텐데… 왜 그 변화에는 둔감한 것인가?


겪어 온 과정이나 배경이 다르긴 하지만, 그들의 삶 속에 우리가 있는것이다. 즉, 부모님의 시간 안에 우리의 시간이 있는 것이다. 같은 시간을 달리고 있는데 왜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들은 과거에만 얽매여서 아파하고 스스로를 골방에 가둬가고있는 것인지. 마치 세상의 모든 고통과 아픔은 자신들이 다 받은 것 마냥 말이다.


소수라면 소수이겠지만, 가난 속에서도 자신의 꿈을 향해 노력했던 사람들이있다. 그저 환경 탓만 한다면 우리 부모세대가 우리 세대로 다시 태어난다고 하더라도 결과는 똑같을 것이다. 그래도 그 때에는 취직이 보장되었고, 노력한 만큼 보상을 받을 수있었고, 집을 사면 집값이 올라 부를 축적할 수 있는 시대였으니 말이다. (이렇게 단정 지어 그 시대가 한편으로 '지금보다 나은 것'이라고 이야기하면 이를 겪어온 부모세대는 심히 반발하고 나설 것이 뻔하다. 하지만우리가 지금 그 시대를 쉽게 이야기 하는 것과 부모세대가 우리 세대를 보며 모든 혜택을 누리고 산다고 심플하게 정리하여 이야기 하는 것이 무엇이다르랴.)


2남 2녀의 장녀로 태어난우리 엄마. 대학 진학을 고민하던 당시 아버지의 정년퇴직 시기와 맞물려 동생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양보하고본인은 건설현장 서무로 취직한다. 여자화장실 하나 없는 현장에서 말이다. 일을 시작한지 얼마 안 되어 21살에 아빠를 만나 결혼을 했고 나를이듬해 낳으셨다. 어려서 결혼해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의 고부갈등을 겪으며 불합리한 일도 참 많이겪으셨다. 처음엔 아빠의 월급통장을 할머니께서 가지고 계셨단다. 분가하여따로 가정을 꾸리고 있었으며 아빠는 6형제 중 다섯째로 부모에게 그다지 주목받는 아들도 아니었다. 이후 큰 소리를 내고 통장을 겨우 받아왔고, 아빠는 엄마가 어려서돈 관리를 못 할까봐 대부분을 적금으로 부었다. 매달 쓸 생활비도 없었는데 시부모님께 꼬박꼬박 용돈을드렸단다. 그 때에는 다들 그렇게 사나보다 하며 오기로 강단으로 그렇게 살아 오셨단다.


이제 엄마 나이 쉰 넷. 아직 젊은 나이임에도… 마음이 참 많이 늙었다는 걸 느낀다. 조금만 감정이 격해지면 그시절 힘들었고 불합리했던 것들에 대한 분노를 못 이기고 우리가 흔히 이야기 하는 '하소연 레퍼토리'가 시작된다. 평생 과거에 얽매여 사는 사람이 되어 버린 것이다.


부모 세대는 그렇게 다정다감한 세대는 아니다. 형제자매도 많았고 그들의부모는 더 척박하게 살아왔으니 자식들에게 다정다감한 부모의 모습을 보여줄 수 없었을 것이다. 보고 자란다는게 참 중요한가보다 .그런 나는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화 난 엄마에게 "넌 싹수가 노랗다" 라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엄마의 화가 누그러졌을 무렵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싹수가 무슨 뜻이야?"


싹수는 식물의 싹을 말한다고 했다. 싹이 노랗다는 건 미래가 없다가망이 없다 란 뜻 이란다. 너무 충격적이라 20여 년이지난 지금도 가끔 생각나고 화가 난다. 아무리 화가 나도 해야 할 말이 있고 참아야 할 말이 있는 법이다.


그냥 감정이 격해져서 내뱉은 말을 왜 가슴에 담아두고 사느냐고 물으면 나도 할 말은 없다. 나 역시 과거에 얽매여 있는 것 이니깐. 하지만 '싹수가 노랗다' 라는 말이 내게 준 충격이 어쩌면 내가 과거에 얽매이려할 때마다 그러면 안 된다고 경각심을 일깨워 주는 것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누구나 상처받고 나도모르게 상처를 주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으니까.


순리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어느 정도는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것이다. 마치 자신이 피해자인양, 세상의 모든 짐과 고뇌를 본인이 지고 사는듯한 피해의식은 버려야 마땅하다. 왜냐하면 우리는 생각보다 주체적인 선택을 많이 하고 살기 때문이다.


우리 엄마의 이야기를 다시 되짚어 보자면, 대학진학을 포기한 것도엄마의 선택이고(본인이 정말 공부에 뜻이 있었다면 장학금을 받아서라도 어떻게든 방법을 강구해서 다녔을것이다. 당시 부모가 깨어 있어 자신에게 간호사나 교사가 되라고 권했다면 지금 자신의 삶이 달라졌을것이라고… 거듭 하소연을 하신다… 왜 본인은 그런 노력을하지 않았을까.) 아빠를 만나 결혼한 것도 선택이고 평생 전업주부로 살아 온 것도 엄마의 선택이다. 독서와 글쓰기를 좋아하는 엄마에게 노트북을 사드릴 테니 글을 써 보시라고 권했지만… 글은 쓰고 싶을 때 쓰겠다며 머리 아픈 일을 피하고 노력하지 않는 것도 어쩌면 엄마의 선택인 것이다.


자기가 선택한 것에는 책임을 져야한다. 본인은 주체적인인간이고, 그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다. 과도한피해망상의 결과는 자신의 참 모습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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