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독서모임에서 처음 이 책을 소개받고 정말 깜짝 놀랐다. 이렇게 훌륭한 책을 왜 나는 몰랐을까. 그간 책 좀 읽는다고 뻐기고 다닌 내가 무색할 정도였으니. 나만 모르는가? 다들 읽고도 모르는 척한 것일까? 좀 과장하자면, ‘이 중요한 사실을 알려줄 친구 하나 없는 내 삶이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할 정도였으니. 이건 단순히 좋거나 재미있는 것을 넘어서 ‘훌륭한 책’인데. 이후로 누가 추천도서를 요구하면 우선순위로 이 책을 권한다. 사실은 그냥 추천도서만으로는 미진하다. 전 국민의 ‘필필필독서입니다’라고 덧붙이고 싶지만, 과유불급이 될까 싶어 속마음을 감추는 편이다.
우리 책이 천대받는 일에 흥분할 때마다 단골로 등장하기도 한다. 신문의 책 소개 난에는 왜 외국서적들이 거의 모든 지면을 차지하는지. 다른 나라에서는 자국 도서를 집중적으로 소개하고 외서는 하단에 몇 권 곁들이는 정도이다. 이런 현상에 왜 아무도 항의하지 않는지. 우리가 홀대하면 우리 책은 어디서 제대로 대접을 받을 것인지. 얼마간 슬픔과 분노를 느꼈다. 그러면서 <안네의 일기>는 전 국민의 애독서이면서, <역사 앞에서>는 아는 사람도 드물어 개탄스럽다고. 그러면 초판이 나올 무렵에 읽었노라는 사람을 종종 만나기도 한다. 그런데 왜 슬그머니 잊히고 말았을까. 대학 신입생 필독서에는 온갖 외국 서적만 오르는 것일까. 그나마 빈약한 기록 문화의 나라에서 사료적 가치만으로도 훌륭한데. 의식 있는 몇몇 교사들이 필독서로 추천하기도 한다는 건 나중에야 알았다.
역사학자의 세련된 통찰력과 경험에서 우러나온 진정성으로 격랑의 시대를 명징하게 드러내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한국 전쟁기 한국 측 자료, 미군 측 자료, 미군이 북한에서 노획한 문서철, 소련 해체 이후 공개된 러시아 문서 등을 종횡으로 짜깁기해서야 다가설 수 있었던 시대상과 진실을 저자는 자기 경험과 통찰력을 통해 단숨에 드러내 보여주었던 것이다. 시대정신을 느낀다는 것, 시대의 냄새를 맡는다는 것은 문자와 글에 갇혀 있던 과거를 해방시키고, 그 시대와 역사를 평면에서 구조와 입체로 형상화해내는 것이기도 하다.
-개정판 서문에 실린 역사학자 정병문의 글이다. 전문가의 분석이니 더 얹을 것이 없다. 사실 이 책은 두 편의 서문만 읽어보아도 내가 왜 거품을 무는지 알 수 있다. 보통은 저자가 여는 글로 쓰는 문장이지만, 정작 본인은 책이 출간된 줄도 모르니. 단순히 한국전쟁을 기록한 일기가 아니라 이런 통찰력이 녹아있는 역사학자의 기록이어서 그만큼 가치 있다.
그 어느 하나도 허술하게 기록된 것이 없어 마치 눈앞에서 보는 것처럼 생생하다. 이 일기는 우리의 머릿속에 잘못 입력된 6.25 전후사는 말할 것도 없고, 우리가 관념적으로만 알고 있는 해방공간의 사회사를 바로 아는 데 더없이 좋은 길잡이가 되어 줄 것이다.
-신경림이 쓴 초판 서문이다. 정말 공감한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내게 6.25는 실재하는 전쟁이 아니었다. 책에 나오는 사건 정도. 엄마에게 들은 단편적인 얘기들, 인민군이 진주의 집으로 쳐들어와 밥을 해 주었다든지, 아버지가 거제 포로수용소에서 감자를 많이 먹어 질렸다는 사건으로만 인식하고 있었다. 그리고 서울의 상황은 박완서의 소설을 통해서 알게 된 정도였으니. 누구도 그리 사실적으로 알려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책을 읽고 처음으로 엄마에게 구체적으로 꼬치꼬치 물어보았다. 그러니 가족 간 대화의 물꼬를 트는 책이다.
그들이 설혹 잘못된 길로 나아간다고 하더라도 역시 조선의 중견 청년임에는 틀림없다. 그들을 잘 이끌고 나가서 훌륭한 앞날의 주인공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책무가 아닐까.
-이때 김성칠의 나이가 겨우 30대 초반. 그런데도 아랫사람을 태도가 정말 어른스럽다. 일기를 공개해야겠다 생각하고 이리 쓰지는 않았을 테니, 그의 진심일 것이다. 글도 글이지만 글 속의 인물 또한 훌륭하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후기에 부인이 ‘사람 같은 사람을 만났고, 한국인의 대표 같은 남자를 만나 그의 아내가 되어 조국이 겪는 수난의 시대를 함께 살았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고 쓴 것이 빈말이 아닌 듯.
이때까지 일본 일색의 가두 데모만 보아오던 나에게는 눈물겹도록 기쁜 현상이지만 한편으로 인민공화국 측과 한국 민주당 측이 서로를 민족반역자라 욕하고 죽일 놈 살릴 놈 하는 격렬한 전단을 돌리는 것이 마음 아픈 노릇이다. 이 우매한 정치광들과 탐권배들이 선량한 동포들을 항쟁의 구렁텅이로 몰아넣고 조국의 광복에 일말의 암운까지 끼치게 한다면 어찌할 것인가.
-우매한 정치광과 탐권배들의 나라, 우리는 아직 그 언저리를 맴돌고 있다. 서글픈 가정법이지만, 그때 제대로 현실 인식을 했더라면? 하는 생각을 종종한다. 눈앞의 사실 외면하기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으니. 책 한 권 읽는다고 사람들의 인식이 변하리라 생각할 만큼 순진하지는 않지만, 작은 촛불이 모이면 세상이 조금씩 밝아지지 않을까.
진고개에서 작약과 달리아, 글라디올러스를 샀으나 쇠고기 사기를 깜박 잊어버렸다
-노상 민족의 장래만 걱정하는 게 아니다. 이런 다정다감한 면을 엿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요즘 남자 중에서 작약과 달리아, 글라디올러스를 몇이나 알까?
조회는 학장의 시국에 대한 훈화로 시작되었으나 그 훈화라는 것이 학자다운 깊이도 없고 애국자다운 열정도 없고, 국제 정세에 대한 평범한 약간의 전망이 있은 후 결론으로 조국의 이 비상한 사태에 직면하여 젊은 학도로서의 마음의 준비가 있어야 되겠다는 것이었으나 그 마음의 준비가 어떠한 내용의 것인지 아무런 시사도 없었다.
-1950년 6월 26일 서울대 학장의 훈화를 비판한 내용이다. 훈화라는 것 자체에 큰 기대는 없지만. 얼마나 알맹이가 없으면 이런 비판을 했을까. 전쟁이 길어질수록 소위 지식인들의 지리멸렬은 눈 뜨고 볼 수가 없다. 요즘도 크게 달라지지 않은 듯하다. 내용 없는 공약을 내걸고 대통령이 되기도 하고, 영혼 없는 말만 되풀이하는 사람도 있으니.
일찍 월남해온 동포 입에서 평양에 스탈린가가 있고 신의주에 몰로또프 광장이 생겼단 말을 듣고 설마 그럴 리야 하고 기연가미연가했더니, 이즈음 소련과 스탈린을 떠메고 나서는 걸 보면 그도 있을 법한 일이다. 언제나 이 민족이 사대 안 하고도 살 수 있을까.
-지하에 있는 김성칠에게는 비밀로 하고 싶지만, 이 민족은 사대를 안 하고 정말 살 수 없는가 보다. 아니 점점 심해지고 있다. 영어를 공용어로 하자고 주장하지 않나, 겨우 확보한 전시작전통제권도 돌려받지 않겠다고 난리니. 안 되면 되게 하는 게 군대라고 탕탕 큰소리치던 남자들은 어디로 숨은 것인지. 자주국가라고 할 수 있을까. 이런 나라에 사는 것 자체가 정말 자존심이 상한다.
첫째는 동족상잔함이 슬프고, 둘째는 미군과 조선 사람이 겨루어 방금 피를 흘리고 있는데, 우리는 오히려 미군에 마음을 붙이고 있는 사람이 많게끔 되었으니 이 사실이 더욱 슬프다.
-이렇게 시작된 슬픔이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으니. 이제 슬퍼하는 사람도 그리 많지 않지만. 이 책의 단점(?)도 여기 있다. 너무 비관적이 되거나, 흥분해서 자주 울분을 토하게 된다는.
인민공화국의 일 중에서 제일 마음에 드는 것은 한글전용이다. 그러나 이상스러운 건 한글을 전용하면서도 한문에서 나온 문자는 조금도 줄어들지 않고 도리어 새 문자를 만들어서까지 쓴다.
-일제에서 막 해방되어서인지 김성칠의 우리말 사랑은 여러 군데 언급되어 있다. 과학서는 횡서로 하고 인문서는 종서가 좋다는 등. 이북이 한글 전용을 하니 이남은 한자로 적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에 비판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하고. 그런 그가 지금 우리의 언어생활을 엿들으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과도한 영어 사용과 무슨 말인지 유추도 어려운 축약어, 일반화된 비속어 사용까지.
이렇게 말하면 듣는 이는 나를 회색분자. 기회주의자라고 욕할지 모르나 내 기회주의는 한 번도 어느 편이 승세인가 기웃거리지 않았고, 어느 편이 올바른가 하고 마음속으로 따져보기는 하였으나, 그 어느 편에 좇아서도 보다 더 출세해보려는 생각은 털끝만큼도 품어본 일이 없으므로 내 양심에 물어보아서 부끄럽지 아니하였다.
-이런 가치관이 일기 전체를 관통하고 있다. 그래서 때로 답답하기도 하고, 때로 고지식하다는 생각도 든다. 그 혼란스러운 시대에 이런 태도를 견지하기는 또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측은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더없이 생생한 기록들이다. 날씨며 지진 같은 자연현상에서, 국내외 정세, 직원의 동향, 학계 지식인의 행태, 전쟁의 참상, 가족에 대한 사랑, 자신의 학문적 기록, 당시의 생활사까지. 너무도 많은 자료가 들어있어 직접 읽어보아야만 가치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 일반적인 글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주제에 맞게 쓴다. 그러나 일기는 의도보다는 자신의 잡다한 일상사를 기록한 글이다.
어찌 보면 숨기고 싶은 개인사가 노출될 수도 있으니, 공개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저자는 1951년 이미 사망하였으니, 결국 가족의 결단이 없었다면 묻힐 뻔한 책이다. ‘의식의 성숙을 이룩하려면 고통을 철저히 극복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고통의 철저한 극복은 은폐하거나 회피해서는 되지 않는다고 본다.’ 40년이나 보관하고 있다가 출간하기로 결심한 아내 이남덕의 말이다.
기록문이 많지 않은 우리나라에 좋은 본보기이다. 전쟁을 겪은 부모님이 살아계신다면 그들과 얘기를 나눠보는 건 어떨까. 요란한 사진만 찍지 말고 글이나 그림으로라도 남겨보는 건? 그 아버지에 그 아들, 김기협이 쓴 <아흔 개의 봄>도 추천한다. 이남덕의 노년을 일기 형식으로 기록한 책이다. <밖에서 본 한국사>의 시각도 흥미롭다. 늘 우리 입장에서 주변국을 바라보았는데, 동아시아 국가가 바라 본 한국은 어떤 나라인지. 고정관념을 깨트린 새로운 시도가 신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