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영남 서촌 그 책방 Oct 30. 2022

코로나가 준 선물

1. 코로나 때문에, 코로나 덕분에

  2020년 역병이 돌자 정부에서는 감염 확산을 줄이기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를 시행하였고 원래도 단조로웠던 동선이 더욱 단순해졌다. 동서남북에 퍼져있는 친구들과는 원래도 자주 안 만나는 사이였는데 엄중한 시국에 만남은 조심스러웠다. 때 묻은 하루를 벗겨내던 요가원도 자주 문을 닫았다. 2021년에도 코로나는 사라질 기미가 없었고, 회사에서의 비인간적인 태도들과 거리두기에도 한계에 다다랐다. 회사 내 사람들과의 겉도는 대화는 견딜 수 있었으나 자리에 없는 사람에 대한 빈정거림까지는 함께 하기 힘들었다. 침묵을 허용하지 않는 쥐어짜 내는 말들은 지루했고, 나에 대한 것도 너에 대한 것도 아닌 이야기들은 공허했다. 점심시간 이후에는 조미료 가득한 음식 때문인지 공갈빵 같은 이야기들 때문인지 빵빵하게 헛배가 불러 빨리 집에 가서 옷을 벗어던지고 방귀를 터뜨려 몸속의 것들을 빼내고 싶었다. 

  마분지처럼 마음이 퍼석해져 가던 때, 촉촉하고 부드럽고 말랑해지고 싶었다. 사람과의 대화가 그리웠다. 어떤 생각들을 하면서 사는지, 어떤 고민을 하는지, 울고 웃게 하는 게 무엇인지 말하고 싶었고 듣고 싶었다. 인상적인 영화나 드라마, 책을 보고 난 후 호들갑 떨며 감상을 같이 나누고 싶었다. 감동한 부분을 이야기 나누며 그 여운을 오래 담고 싶었다. ‘누구랑 해야 할까?’ 고민해도 답이 없자 ‘어디서 가능할까?’ 고민하며 인터넷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낯가리고 스몰토크 젬병인 내가 요즘 유행하는 소셜클럽에 갈 수는 없었다. 이름, 나이, 직업이 과연 자신을 잘 설명하는 것인지 늘 의문인데 그렇다고 첫 만남부터 무슨 별다른 이야기를 할 것인가? 목적과 주제가 뚜렷한 모임이 좋겠다. 취미생활을 같이 하면 좋긴 하지만 그 역시도 스몰토크가 필요하니 패스. 재테크를 해야 한다고 생각은 하지만 공부할 마음이 없기에 골치 아픈 경제 공부 모임도 패스. 독서 모임이 좋겠다 싶었다. 학구적인 모임을 표방하며 지식을 뽐내는 자리 말고, 느슨하고 자유롭되 자기 이야기를 하는 모임. 어딘가에 있지 않을까? 

  책방을 열기 전부터 오랫동안 독서 모임을 꾸려온 사장님, 지금도 주야로 운영되는 독서모임이 여러 반인 ⌜서촌 그 책방⌟. 어떤 목적이든 집단을 오랫동안 운영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에 책방 사장님을 만나보진 않았지만 믿음이 갔다. 적어도 난장은 되지 않겠구나 하는.


2. 집을 바꾸다.

  독서 모임에 처음 참석한 날, 간단한 자기소개를 하되 숫자는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라는 안내를 받았다. ‘신선하여라!’ 그런데 나만 신입회원이었는지 내 소개가 끝나자 바로 책 이야기로 넘어갔다. 순간 민망했지만 잡담하지 않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니 그 또한 마음에 들었다.

  독서 모임이 아니었다면 눈길도 주지 않았을 주제의 책「집을 쫓는 모험」. 내 틀에서 벗어나 다양한 책을 접하고자 독서모임을 선택한 이유도 있으니 반감 반 기대 반으로 읽은 책은 막연하게 품고 있었던 내 바람 하나를 들추어냈다.

  집이라는 건 열심히 돈을 모으고, 청약을 붓고, 주택담보대출을 최대한 받아서 간신히 마련할 수 있기에 신중하게 오래 살 집을 골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자신에게 맞는 주거 형태를 찾아다니는 저자를 보면서 새로운 삶의 방식을 생각하게 되었다. 특히 고생해서 지은 집에서 평생 거주할 생각 없이 또 다른 집을 꿈꾼다니,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새로운 집에서 살아보는 게 재미있다며 2년마다 전세로 이사 다니는 지인을 보면서도 부럽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던 것은 브랜드와 평수의 차이일 뿐 아파트를 전전했기 때문이었나 보다.

  도심 한가운데 있으면서도 골목 들어서면 새소리를 들을 수 있고, 고궁과 지척인 인왕산 자락의 부암동 주택이 나의 로망이었다. 월급을 전부 저축해도 살 수 없기에 꿈으로만 남겨두었는데 주택에서의 삶이 정말 내게 맞는지 미리 확인해볼 필요가 있겠다 싶었다. 돈이 없어서 못 사는 게 아니라 라이프스타일이 맞지 않아서 안 사는 게 미련을 없애주니까.     

  엄마에게 양평이나 양수리의 주택에서 2년 정도만 전세로 살아보자고 슬쩍 말을 던졌다. 엄마는 나이 들어서 이사 다니기 힘들다며 시큰둥했고, 어르신들이 아는 사람 없는 동네로 이사 가는 것을 꺼리는 걸 알기에 나도 1절만 했다.

  얼마 후, 엄마는 집을 보러 다니기 시작했다. 나는 집 보러 1년 정도 투자할 생각이었는데 며칠 지나지 않아 회사에 있는데 엄마가 들뜬 목소리로 전화했다. 남양주에 집을 보고 왔는데 너무 마음에 든다고. 마당에서 맞은편 산이 보이는데 전망이 탁 트여서 좋다고. 잘 들어보지 못한 상기된 엄마의 목소리.

 지하철역에서 마을버스 타고 들어가야 해서 내키지 않았던 나는 이제 집을 보러 다니기 시작했으니 몇 군데 더 둘러보면 어떻겠냐고 부정의 의사를 내비쳤다. 순간 엄마 목소리에 힘이 빠지며 “난 여기가 마음에 드는데...” 너무도 확연한 목소리 차이에 계약하라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렇게 5월에 독서 모임을 시작했고, 7월에 집 계약을 했고, 10월에 이사했다. 1시간 간격으로 다니는 마을버스를 놓치면 역에서 집까지 택시 타고 들어와야 했는데, 불금이나 토요일에는 택시 잡기도 쉽지 않아 결국 장롱에 있던 면허를 꺼내야 했다. 그렇게 또 계획에 없던 차를 사고, 운전을 하게 됐다. 

  아파트 살 때 차지했던 방 한 칸의 살림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빈 곳을 채우기 위해 쇼핑을 하면서 나라는 인간은 해놓은 인테리어 평가질이나 하지 내가 꾸미는 건 고역임을 깨달았다. 쇼핑도 인테리어도 힘겨워 미니멀리스트를 표방하며 살려했으나 말할 때마다 동굴처럼 울리는 소리가 마음을 불안정하게 해 결국 가구를 들여놓았다. 

  집순이인 줄 알았던 내가 집에서 지하철역까지 30분을 기본으로 깔고 가야 하다 보니 어디 가고 싶어도 왕복 이동시간 계산하다 안 가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갑갑증을 느꼈다. 생각해보니 코로나 이전에는 내가 오라는 데는 없어도 갈 데가 많았던 사람이었음을 또 깨닫는다. 

  그리고 난 텃밭 가꾸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텃밭에서 가꾼 채소를 먹는 것만 좋아한다.

  이렇게 사는 곳이 바뀌면서 숨겨진 내 면면들이 드러난다.     

3. 사람이 바뀌다.

  서촌 그 책방 독서 모임과 동시에 시작했던 책방의 글쓰기 수업에서 만난 친구들은 내가 종이 인형이 아니라 사람임을 상기시켜주었다.      

  첫 번째 독서 모임을 마치고 약간의 흥분과 고민을 안은 채 인근을 맴돌다가 다시 책방에 방문했다. “저... 자서전 쓰기 수업 신청하려고요.” 

  이미 책방 인스타그램에서 홍보 글을 보았지만 ‘자서전’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에 엄두도 못 냈는데, 처음 글 쓰는 사람들도 있고, 가벼운 에세이 쓰기로 생각하면 된다는 사장님 이야기에 솔깃해졌던 것이다. 결국 같은 것인데 ‘자서전’은 내 까짓게 언감생심이고, ‘에세이’는 나도 한 번 도전? 하는 마음이 들게 하는 거다. 내 인생에 소설가가 가르치는 수업을 들을 기회가 또 올 것 같지도 않았고.     

  A4 한쪽도 채우기가 만만치가 않았는데, 오직 집-회사만을 다니는 내가, 남편과 아이가 없는 내가, 책도 사는 게 취미이지 읽는 건 가끔인 내가 쓸 이야기가 없어도 너무 없었다. 단조롭고 무사안일하게 살아온 내 삶이 한심하게만 느껴졌다. 글 제출 마감일이 다가올수록 후회되는 마음만 커질 뿐 도무지 어떤 이야기를 써야 할지 막막했고, 취소할까 고민하다 결국 글쓰기 수업 신청을 후회한다는 하소연으로 시작하는 글을 써서 제출했다. 

  합평 날, 내 글이 너무 보잘것없게 느껴져 부끄러움에 얼굴이 따끔거렸다. 예상치 못한 선생님의 칭찬. 그로부터 5주간은 오직 금요일 저녁 글쓰기 수업을 위한 날들이었다. 숨 막히던 회사생활은 그저 배경일뿐이었고, 하나 마나 한 이야기들을 주고받아도 개의치 않았다. 진짜 이야기를 나눌 사람들이 있었기에.

  수위 조절을 고려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써갔다. 기술이 부족해 정제하지 못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겠다. 과연 내 글을 이해할까 걱정하는 마음으로 가지만 구구절절 설명이 없어도 사람들은 공감을 표했고, 신기하게도 꼭 한 명씩은 주제가 통했다. 

  일주일에 하루 두 시간, 오직 각자가 쓴 글로써만 소통하는 시간. 호구조사 없이, 사회생활에서 쓰던 가면 없이 그저 마음으로 만났던 순간들. 서로의 다름과 비슷함에 눈물짓고, 눈물 나게 웃던 시간들. 각자가 가진 외로움, 치열함, 취약함, 따뜻함을 기꺼이 내보이고 기꺼이 알아봐 준 우리들.     

  6주간의 공식적인 수업이 종료된 후 우리끼리 화상으로 글쓰기 모임을 이어 나갔다. 그 과정에 나의 이사 스토리를 간간이 적어냈고, 올봄 워크숍 겸 집들이 겸 집으로 초대했다. 서울에서 한참 떨어진 곳이라 오라고 하기도 미안했는데 기꺼이 와준 친구들. 

  배고픔과 피곤함에 찌들어있다가도 모임을 마치고 나면 온몸에 수분 가득 탱글탱글해지는 느낌. 언제나 내게 생기를 불어넣어 주는 글쓰기 모임, 나는 그들을 ‘서촌 박카스’라고 부른다.

이전 10화 매듭 없는 기억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