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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를 파괴하는 산책자

그런 여행자가 되고 싶다

by 사과집

거리를 파괴하는 산책자



무엇이든 서론과 결론이 제일 싫다. 곧 출간될 책도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미루다 제일 마지막에 썼다. 제 때 해야하는 종류의 중요한 글들에 대한 부담이 심한건지 이런것들을 도통 안한다. 아예 생략하거나, 매우 일찍하거나, 늦게하거나 타이밍을 못맞춘다. 나는 18년 결산도 11월에 했고, 2019년의 다짐은 아직 안적었다. 남들 다할때 하기싫은 치기어린 마음, 똑같은 말 번복하며 바이트 낭비나 할바엔 그냥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자라는 마음, 당연한 말밖에 할말이 없는 언어의 한계, 아 아무 생각도 하기 싫다-는 게으른 사유.. 등등의 이유로.


이를테면 리스본 1일차 후기 같은 글이다. 유럽도 처음이고, 한달만에 다시 떠나는 여행이니까, 이만보 걷고 1일차 여행을 한 이후 소고를 정리해야 마땅할텐데 그저 사진이나 정리하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간다. 그러니 인스타그램에도 치앙마이 복귀 다음에 알바로 시자의 전철역 후기가 나오는 식이다.


하지만 적어야겠다. 1일차의 감상이라는 건 휘발되기 쉬우니까. 이때의 감정은 한달 후에 적는다고 쓰여지는게 아니니까. 근데 쓰려고 해도 딱히 할말이 없다. 그냥… 유럽이라는 느낌. 모든 장소에 대해 기대없이 떠나는 편이긴 한데... 장소보다는 여행을 하고 있다는 ‘상태’가 내겐 더 중요하다. 실제로 이번에는 그 상태에 대한 갈망이 컸다. 19살 이후 10년만에 집에서 가족들과 보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독립하지 않으면 망하겠다라는 스트레스가 꽤나 쌓였더라.


리베카 솔닛의 <멀고도 가까운>을 읽다가 운좋게 단어를 주웠다. 거리를 파괴하는 산책자. 너무 좋아서 맥락과 상관없이 인용한다. 나는 그냥 거리를 파괴하는 산책자가 되고 싶다. 거리가 어디인지는 크게 상관없다… . 여러 상황이 변했지만, 여행을 하는 이유, 첫날의 인상은 미얀마에 처음 도착하던 그 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 낯선 도시는 어디든 나의 방이 될 수 있다. 낯설다는 느낌만이 중요하다.


그래서 리스본 첫인상이 어떻다구요? 충분히 낯서네요….



리스본 대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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