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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에게 일기장을 들킨 기분입니다

by 사과집

“언니 책 이름 알려줘. 언니가 쓴거.”


동생의 카톡을 받고 멘붕이 왔다. 나는 내가 출간한 책에 대해 가족에게 비밀로 하고 있었다. 필명도, 책 출판도, 그리고 앞으로의 작업도 쭉 얘기할 생각이 없다. 딸의 이미지는 딸의 이미지대로 남겨두길, 글을 쓰는 나를 가족이 모르길 바랬다. 특히 책에는 가족과 친척들의 이야기도 나오기 때문에 더 숨기고 싶었다.


그래서 동생의 카톡에 정신이 혼미해졌다. ‘엄마가 먼저 내 책을 말했다고? 어떻게 안거지, 집에서 내가 책낸다는 소리를 한적이 없는데. 교회에서 내 동창한테 들었다고? 동창은 어떻게 안거야? 난 걔 알지도 못하는데 … 엄마는 설마 이미 읽은 건가? 혹시 나한테 화가 났을까 …’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로 신경쓰여 하루 종일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동생한테는 “내 책 아니니까 괜히 말하고 다니지 마라”라는 다분히 본인 책 같은 답장을 했다.


퇴사 후 글을 쓰는 자아와 현실의 자아의 뒤섞이기 시작했다. 그런 경계의 무너짐이 오히려 반가웠다. 다른 사람이 내 내밀한 글에 대해 이야기해도 그저 나의 많은 모습 중 하나일 뿐이기에 부끄럽지 않았고, 회사 사람들이 내 책을 봐도 괜찮았다. 하지만 아직 가족에 대해선 철저히 분리주의자 입장을 고수하고 있었나 보다. 막연히 가족도 알게 될거라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다. 가족이 그저, 장녀이자, 때로는 철없지만, 별로 불만도 없고, 알아서 자기 할일 하는- 29년간 구축해온 내 이미지만을 알고 있기 바랬다. 가장 친하지만, 가장 친하지 않은 존재가 가족이었다.




멘붕 상태에 빠진 나는 주변인들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다급히 물었다.


S는 말했다. “어머니는 이미 진작 알았으나 딸이 알기를 원하지 않아 모른척 하신건 아닐까요.” 너무 솔직하게 말할 필요 없이, 엄마가 원하는 모습으로 보이는 것도 중요하다고 조언해 주었다. 어쩌면 내가 엄마에게 여러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하는 만큼, 엄마도 엄마가 생각하는 딸 이상의 모습을 보고싶어 하지 않을수도 있다. 구체적이고 솔직하게 나를 드러내는 것이 언제나 정답은 아니니까. 맞다. 나는 엄마가 이해 가능한 수준으로, 너무 많은 것을 밝히지 않는 변명을 준비했다. 필요할 때 수습하기 위해서였다.


K는 자신의 경험을 들려주었다. 마찬가지로 책에 가족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를 담은 K는 가족 지인이 가족에게 자신의 책 이야기를 꺼냈을 때 당황스럽다고 했다. 나도 책을 준비하면서 이런 상황을 예상하지는 못했다. 내가 숨겨도, 주변에서 먼저 가족에게 책 이야기를 꺼내는 상황이 올 수 있구나. 도대체 글을 쓰는 사람들은 어떻게 자신의 이야기의 수위를 조절하는 것일까?


나는 계속 내가 책에 쓴 문장 하나가 신경쓰였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나는 엄마를 정말 사랑하지만, 엄마처럼 되지는 않으리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건 엄마의 꿈이기도 했다.” 엄마가 이 글을 보고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얼마나 상처를 받을지 걱정되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나는 과연 누군가에게 상처주지 않으면서 솔직한 글을 쓸 수 있을까. 글을 쓰는데 있어서 나는 아직 겁쟁이였다.


P는 현명하게 나를 진정시켰다.


“알게 되셔도 자랑스러워 하셨음 하셨지 실망하는 일은 없을거야. 그냥 뒤에 알게 됐으니 섭섭할 수 있겠지만 그런 감정은 잠깐이고, 내 딸이 걱정할 게 없었다는 걸 알면 더 기뻐하실 것 같은데.

내가 너희 가족이 아니라서 받아들이는 입장 차이는 있겠지만 타인의 시선으로 봤을 땐 이제는 다 큰 딸이 엄마를 이해하는 시선을 가지게 된 걸로 보여. 안심하라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어머니도 보고 안좋게 맏아들이진 않을거야"


다 큰 딸이 엄마를 이해하는 시선을 가지게 된 걸로 보여. 이 말이 위로가 됐다. 나야말로 엄마를 물가에 내놓은 애로 생각했던 건 아닐까. 쉰이 넘은 어른인데. 나보다 훨씬 인생을 오래 산 사람인데. 내가 모르는 나의 모습까지 알고 있는 사람인데.




책 얘기를 엄마에게 먼저 꺼내지는 않기로 결심했다. 물론 엄마가 먼저 나의 책 이야기를 꺼낼 경우에 대답할 변명은 준비되어 있었다. 그렇게 동생에게 카톡이 온지 하루가 지나고,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는 다른 소리는 없이, 내가 카톡으로 보낸 리스본에서 산 라면 사진에 대해서 물어봤다. 책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었고, 언제나 다를바 없는 평범한 대화였지만 나는 어쩐지 눈치가 보였다. 그러다 엄마가 말했다.


“니가 싫어할만한 이야기 해도 돼?”


왔구나. 엄마가 드디어 책 이야기를 꺼내려나 보구나. 역시 엄마는 알고 있었어… 이미 정신승리의 시간을 거친 나는 둘러댈 변명을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엄마가 꺼낸 말은, 코스트코에서 니가 산 티비와 헤드폰이 각각 4만원씩 할인한다는 얘기였다.


어쩌면 엄마는 이미 다 알지도 모른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숨겨온 각자의 서사를 이해하는 시간이다. 비겁하지만 나는 시간이 이 문제를 해결해주기를 바랬고, 내가 멀리 여행하는 상태라는 점에 안도했다. 두 달 전 나는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적정 시간이 지나면 누가 읽어도 상관 없어질 때가 온다. 나도 내 서사의 객관적인 구독자가 되는 순간이" 어쩌면 비겁한 나는 객관적인 구독자가 되기 위해 평생 여행을 해야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