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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집 Mar 11. 2019

결국 퇴사할 수밖에 없는 공채형 인간

당신은 공채형 인간인가요?


나는 2015년 7월에 현대자동차에 

공채 31기로 입사했다


지원 직무는 ‘경영지원’이었다. 보통 인사나 총무 등 세부 직무를 고르는 게 보통인데 자소서에도 그냥 ‘경영을 잘 지원’하겠다고 썼다. 붙여만 준다면 아무 데나 들어가도 상관없었다. 그렇게 입사를 하고 5주간 신입사원 연수를 받고, 두 달의 수습 기간을 거쳐 나는 드디어 회사원이 되었다.


입사하고서는 교육 업무를 담당했는데, 나름 적성에도 잘 맞는 것 같고 고민 없이 들어온 것치고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1년이 흐르고, 2년이 흐르고, 3년이 되어가자 계속 같은 물음이 맴돌기 시작했다.


 ‘나는 여기서 이 직무를 평생 할 수 있을까?’


직무에 대한 확신이 없으니 전문성이 쌓이고 있는지도 의문이었다. 가끔은 내가 하향 평준화된 제너럴리스트 (generalist) 밖에 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일, 다른 삶이 궁금했다. 뭔가 더 재미있는 일, 나와 맞는 일이 있을 것만 같았다. 직장인 사춘기였다. 진작했어야 할 고민을 입사하고서야 한 나는 결국 만 3년을 채우자마자 퇴사했다.


나 같은 사람이 많을 거라고 생각한다. 적성이 뭐가 중요한가. 중요한 건 취업이었다. 사회가 제시한 틀에 맞는, 과락 없는 사람이 되기 위해 나를 바득바득 끼워 맞추고, 그렇게 들어온 회사에 적응하지 못해 결국 떠나간다. 이 과정을 수많은 사람이 반복한다. 굉장히 많은 비용이 지불되는 비효율적인 시스템이다.


입사하고 영어 한번 써본 적이 없는데 왜 토익을 봤던 것일까? 업무와 상관없는 한국사 에세이는 왜 봤던가? 장강명은 그의 책 《당선, 합격, 계급》(민음사, 2018)에서 대규모 공개 시험을 거쳐 엘리트를 채용하는 공채 제도를 조선시대의 과거 제도에 비유했다. 한창 일할 나이의 청년들이 언제 붙을지도 모르는 시험에 붙기 위해 젊은 시절을 낭비한다. 하지만 그렇게 뽑힌 사람들이 조직에 진짜 필요한 인재 인지도 의문인, 사회적 낭비가 큰 과거 제도.



공채 덕분에 입사했지만

공채 때문에 퇴사한다


점점 '공개 채용'에서 '경력' 또는 '상시 채용'으로 채용 트렌드가 변화하고 있는 걸 보면, 나는 내가 공채여서 간신히 합격했다는 생각이 든다. 겉보기에 나쁘지 않은 학력과 경력에 근사한 말로 잘 지어낸 자기소개서를 쓰고, 꾸며낸 사교성으로 어렵지 않게 면접을 통과하지만 실상 제대로 된 전문성은 없는, 여지없이 딱 공채형 인간. 


요즘 시대에 걸맞은 융합형 인간이라거나 하이브리드형 인재라고 나를 꾸며낼 수는 있겠으나 그렇지 않다는 걸 내가 제일 잘 알고 있다. 나는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문제인 걸까, 아니면 어느 것 하나도 제대로 하지 않아서 문제인 걸까. 전문성이 도대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은 나를 계속 괴롭힌다. 이 곳을 박차고 나갈 그 '스페셜리티'라는 게 나에게 있나?


전문성이라는 것이 꼭 하나의 업무만을 잘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떤 직무든 그걸 하게 되는 나의 동기, 가치관이 제대로 있는지 고민하는 게 더 중요하다. 결국 이력서에 한 줄 추가하는 것보다 중요한 건 '어떤 사람으로 살고 싶은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일 것이다. 하지만 어쩐지 회사 안에서는 그런 고민을 할 여유를 주지 않는다.


결국 퇴사할 수밖에 없는 《공채형 인간》은 공채 덕분에 입사했지만 공채 때문에 퇴사하는 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취업이라는 관문을 통과하기 위해 사회가 제시한 틀에 맞춰 고군분투해 입사했지만 결국 퇴사하는 이 시대의 공채형 인간들이라면, 불확실한 미래를 걱정하면서도, 예측할 수 없는 가능성 많은 삶을 살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이야기에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시키는 것은 무엇이든 하겠습니다." 

이 말 뒤에 놓인 의미를 그때는 알지 못했다.

 


그리고 이제 나는, 다른 삶을 선택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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