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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집 Mar 25. 2019

온천욕 하는 개구리 사원

계속 있을 수도, 나갈 수도 없을 때


오늘 회사에서 동기들과 메신저를 하다, '따뜻한 물 개구리 이야기'가 화두에 올랐다.


 Q. 뚜껑이 없는 냄비에 개구리를 삶는 방법은?
 A: 찬물에 개구리를 넣고 천천히 가열하면 된다!


뜨거운 물에 개구리를 넣으면 바로 튀어나오지만, 물을 천천히 가열하면 개구리는 물이 뜨거워지는 것을 모르고 익어 죽게 된다는 이야기다. 입사한 지 3년 차, 우리는 우리 모습이 꼭 물 온도에 익숙해져 익어가는 줄도 모르고 온천욕 하는 개구리 꼴 같다며 자조적으로 웃었다.



안정과 꿈, 

경계에서 방황하다


영화 ‘다운사이징’은 부족한 자원을 수많은 사람이 경쟁해야 하는 인구과잉의 세상에서 차라리 개미만큼 작아지기를 선택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500미리 콜라 한 캔이면 평생 먹을 양이 될 테니 비용 절감 측면은 어마 무시하겠다. 이 같은 ‘전략적 다운그레이드’를 삶의 가치관으로 부를 수 있을까? 혹은 그저 무한 경쟁에서의 도피인 걸까?


물론 뱀의 머리를 선택하는 것도 삶의 가치관 중 하나일 수 있다. 그렇다면 그 삶에 만족하고 주어진 환경에 감사해야 할 텐데, 어쩐지 매번 용의 꼬리만 쳐다보고 있는 모습이 도피한 사람처럼 보인다.


이런 타입의 가장 아쉬운 점은 평생 자기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모른다는 것인데, 그럼 또 이런 반문이 슬쩍 고개를 쳐든다. ‘꼭 인생의 한계까지 가봐야 해?’ 답 없는 선문답의 연속이다.

 

생존을 위해 작아지기로 결심한 남자의 이야기, 영화 <다운 사이징>

 

요즘 나는 어쩌면 절대 퇴사하지 못할 거라는 생각을 한다. 직장 생활을 욕하면서도 ‘걸쳐있는’ 이 상태에 내심 만족하기 때문이다. '나 퇴사할 거야!'라고 말하는 것은 직장인이 뽑을 수 있는 마지막 칼자루다. 가슴 한편에 그 칼을 품고 사는 것만으로도 어쩌면 '퇴사'라는 단어는 내게 쓸모를 다했다. 용기 내지 못하고 안주하는 것을 비관하면서도, 적당하게 '걸쳐'있다는 소속감을 내심 뿌듯이 여긴다. 시도하지 않는 것에 대한 적절한 핑계, 실패에 대한 안전 장치를 쉽게 뿌리칠 수 없다. 믿는 구석이 있는 상태로 현재를 비관하는 위선적인 경계에 서있는 나는 소비를 노동으로 돌려 막는 것을 워라밸로 착각한 채 산다.


나의 좁은 세계를 깨주는 곳에서 계속 부서져 볼 것인지, 좁은 세계가 큰 곳처럼 보이도록 작게 등을 웅크리며 살 것인지. 그 사이에서 방황할 때면 자신의 좁은 세계를 벗어나고자 부단히 노력했으나 능력이 따라주지 않았던 브루클린 작은 아파트의 프란시스 하가 문득 떠오른다.


결국 이 모든 잡설은 내가 가진 가장 큰 공포로 귀결된다. “이렇게 살다 죽을까 겁나요.” 아주 작은 세계를 전부인 것으로 알고 죽는 개구리가 될까 봐. 찬물에 빠져 죽을까 봐. 저는 그게 제일 무서워요.




어른이 된다는 것은

무탈한 선택지를 고르는 일일까?


과학계의 뜨거운 화두 중 하나는 ‘크리스퍼’, aka ‘유전자 가위’ 다. 정자와 난자가 착상된 배아 단계에서도 유전자를 자르고 조합할 수 있는 기술이다. 이 기술이 있으면 유전병이나 돌연변이 유전자가 있을 때, 그 위치를 찾아내서 돌연변이 유전자를 제거하고 다른 유전자를 삽입하는 일련의 단계가 가능해진다. 하지만 크리스퍼 기술의 상용화가 아직 섣부른 이유는, 제거한 유전자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특정 열성 유전자를 바꿔 치기 했다가 자칫 생각하지 못한 유전적 결함이 발생할 수도 있다.


얼마 전 보고 웃음을 참을 수 없었던 사이버테러 기사도 있다. 미국의 한 보험그룹이 스마트홈 온도조절기를 해킹해 돈을 지급할 때까지 실내온도를 최고로 강제설정하는 랜섬웨어 시연에 성공했다고 한다. 비트코인을 내놓지 않으면 넌 더워 뒤질 것이다…. 예상치 못한 신박한 해킹 수법이 웃기기도 하지만, 앞으로 발생할 사이버 테러의 경로는 상상 그 이상이라고 생각하니 조금 두려워진다. 초연결성, 초지능성을 특징으로 하는 미래 사회에서는 사이버테러의 대상과 경로, 규모도 기하급수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은 내 개인의 삶에서는 반대로 작용하는 듯하다. 나는 내심 앞이 잘 안보이는 내 미래를 좋아했는데, 뽀얗게 안개에 쌓인 내 미래에는 내가 생각하지 못한 수많은 갈래길들이 있을 거라고 희망을 걸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개가 걷히고 나니 고작 한두 개의 갈림길만이 보인다. 예상가능한 미래는 나를 언제나 두렵게 만든다.



 이십 대 막바지의 어느 순간, 
나는 모험심이 졸아들어 버린 지 오래라는 걸 인정하게 됐다. 
자신이 성숙하다고 생각했을 때 우리는 그저 무탈했을 뿐이다.

  - 줄리언 반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점점 무탈한 선택지를 고르는 일일까? 문학 같은 인생의 결말을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흔한 삶은 언제나 내겐 가장 큰 두려움이다. 그래서 틈만나면 삶에 샛길을 내려고 한다. 우주의 운행을 바꾸진 못할 작은 날갯짓이겠지만. 





* 상단 메인 그림은 클로드 모네의 "mirrors of water"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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