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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집 May 20. 2019

질투는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

내 맘대로 조절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나보다 훨씬 나은 버전의 사람들


얼마 전 엄청 부러운 사람이 있었다. 그런 사람은 인터넷에서 본 사람이기도 하고 잠깐 데이트를 하던 사람이기도 하고 나를 아는 사람이기도 하고 나를 모르는 사람이기도 하다. 이들은 내가 제일 잘났어 하고 별일 없이 자신감에 넘쳐 살 때쯤 내 인생에 쳐들어와서 어마어마한 자괴감을 선사한다. 갓 스물을 넘었을 때는 이런 열등감에 빠지는 것이 너무 힘들었는데, 요즘엔 이런 사람이 별로 나타나지 않는 게 더 무섭다. 고만고만한 사람들 사이에서 살다 보니까….


그런 사람들은 내가 경험하지 못한 감정을 말하는 사람이다. 심사숙고하고 내뱉은 말도 아닌데 어른스러움과 역사가 느껴지는 사람이다. 가난과 정의가 힘들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선택한 사람이다. 깊고 진한 유년기와 치열한 청년기를 산 사람이다. 나와 다른 인생을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나에게 많은 공감을 주는 사람이다. 결국 나의 가장 좋은 버전이라고 느끼는 사람들이다. 나 같은데, 비슷한 것 같은데, 이 사람에게 많은 공감을 느끼지만 나보다 훨씬 나은 버전인 거지. 내가 다운그레이드 버전이라고 느끼게 하는 사람들.


이 부러움이 자괴감이 될 때는, 내가 이 부러움의 사슬에서도 한참 아래에 있다고 느낄 때다. 그는 나의 모차르트인데, 그는 그만의 모차르트가 있을 때. 나는 이 열등감 사슬에서도 최하위의 살리에리가 되고 이중의 박탈감을 느낀다. 이 사람도 이러는데, 내가 뭐라고? 나라고 잘할 수 있을까? 그럴 땐 갑자기 나의 모든 낙관이 어그러지고 미래에 대한 계획이 후져 보이기 시작한다. 발끝에서부터 올라온 쪽팔림 때문에 이전 흔적을 모두 지우고 싶어 지고 내가 개미만도 못하게 작아져 버리는 순간.




질투는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


그러나 이런 감정의 변동은 나를 이전과는 다른 방향으로 나가도록 각도를 틀어준다. 내가 너무 낙관할 때는 어느 정도의 비관을 주입해주고, 다른 대안을 모색하도록 이끈다. 열등감은 직진하는 사고에 제동을 걸며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균형을 맞춰준다. 잦은 질투와 잦은 현타는 진화론적으로 긍정적이다.


"부러워하지 마. 남들과 비교하지 마"라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생기는 의문이 있다. 내가 마음먹는다고 남을 부러워하는 감정을 막을 수 있을까? 부러움은 나와 다른 타인과 있을 때 생기는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그 감정을 외면할 때, 타인을 깎아내리거나 자신을 지나치게 낮추게 된다. 그러니 부러울 땐 그냥 부러워하자. 내가 느끼는 감정을 직시하고, 다양한 타인의 모습을 받아들이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면서 조금씩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 이런 접근이 더 건강하고 현실적이다.


결국 사람은 사회적인 존재이고, 내 세계는 내가 서있는 작은 공동체에서부터 시작한다. 사람은 언제나 양옆의 존재와 비교하며 나의 위치를 확인한다. 이때 부러움은 현재 좌표에 안주하지 않는 원동력이 된다. 그러니 엄청 차이가 나서 자괴감이 들 정도는 아니면서,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는 지속적인 자극의 선순환을 이룰 수 있는 커뮤니티에 나를 노출시킬 필요를 느낀다. 나보다 약간 나은 사람들 사이에 있는 것은 나를 부지런하게 만드니까.


질투할 사람이 없는 것보다, 질투할 사람이 많은 곳에 있는 게 낫다. 비록 그 당시엔 치열하게 쪽팔리고 자괴감에 빠지겠지만.


그러니,

Envy up, Scorn Down-

질투는 높이고 비웃음은 낮춰라.






사족) 영화 〈아마데우스〉를 보면 살리에리의 감정이 잘 묘사된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존심 상하지만 이 굴욕을 드러낼 수 없기에 오히려 모차르트를 칭찬하고 치켜세우고, 그를 싫어하지만 그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그 무엇보다 궁금하고, 그를 죽음으로 이끌지만 그에게는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고자 하는 복잡 미묘한 감정.


 《쌤통의 심리학》을 쓴 리처드.H.스미스에 따르면 사람들이 질투 대상에게 반응할 때, 뇌에서는 많은 영역이 동시다발적으로 작동한다고 한다. 나와 다른 누군가를 즉각적으로 평가하는데 필요한 ‘편도체’, 나와 그 사람의 격차를 인지하는 ‘전대상 피질’, 그리고 다른 사람의 생각과 감정을 이해하려고 애쓸 때 활성화되는 ‘내측전전두엽’. 요컨대 나에겐 없는 무언가를 가진 사람에겐 그들의 생각을 읽기 위해 섬세한 주의를 기울이도록 뇌가 작동하는 것이다. 질투의 감정은 어느 정도 사랑과 비슷하다.



※본 글의 제목은 일본 드라마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逃げるは恥だが役に立つ)에서 따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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