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디톡스, 이번엔 성공할 수 있을까?
반년 전쯤, 디지털 디톡스에 처참하게 실패한 전력이 있다. 디톡스(detox)는 인체 유해물질을 해독하는 것을 일컫는 말로, 디지털 디톡스(digital detox)란 디지털 중독에 빠진 현대인들에 대한 처방으로써 디지털 기기의 사용을 중단하고 휴식을 취하는 요법을 의미한다. 디지털 단식이나 디지털 금식이라고도 표현하기도 한다.
당시 태국 치앙마이에서 여행 중이었던 나는, 여행을 하면서도 온갖 디지털 기기와 화면에 중독된 나의 모습에 불현듯 경각심을 느끼고 디지털 디톡스를 시도했다. 24시간 동안 핸드폰, 맥북, 이북 리더기 등 자주 사용하는 디지털 기기를 사용하지 않고 고요한 명상과 나만의 놀이의 시간을 갖자고 다짐했지만 하루도 못 가서 실패하고 말았다. 그렇다. 나는 고작 24시간의 디톡스 마저 실패했다.
그 날의 실패 이후, “나는 이렇게 생겨먹은 사람이야”라는 반쯤 포기한 상태로 디지털 디톡스를 다시 시도하지 않았다. 그러다 최근, 베스트셀러 <딥 워크>의 저자인 칼 뉴포트의 신작 <디지털 미니멀리즘>을 읽고 왜 내가 디지털 디톡스에 실패할 수밖에 없었는지, 디지털 중독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이유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단순히 갑자기 모든 디지털 기기의 알람과 전원을 끈다고 해서 몸속에 체화된 디지털 라이프가 전원 누르듯 꺼지지 않는다. 물리적인 차단보다 중요한 것은 애초에 내가 왜 디지털 라이프에 중독되었으며, 그렇게 많은 앱을 쓰는 이유가 무엇인지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내가 가장 통제력을 잃고 중독된 기술은 무엇인가?
생각할 필요도 없이 아이폰 스크린 타임 통계가 알려준다. 나는 중증의 인스타그램 중독자다.
칼 뉴포트는 책을 통해 우리가 소셜 미디어에 중독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밝힌다.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과 같은 IT 기업들은 사용자의 행동 중독을 부추기는 두 가지 힘, 간헐적 정적 강화 intermittent positive reinforcement와 사회적 인정 욕구 drive for social approval를 고려하여 프로그램을 설계한다. 별로 위안이 되진 않겠지만, 인스타그램에 중독되는 것은 나뿐만이 아니며 이는 기업이 예민하게 설계한 결과다. 인스타그램의 최근 추가된 기능을 중심으로, 기업들이 사람들을 중독시키기 위해 사용하는 두 가지 전략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소셜 미디어 재벌들은 자신들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친근한 너드인척 하지 말고 중독적인 제품을 아이들에게 파는 티셔츠 차림의 담배 장사꾼일 뿐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냉정하게 말해서 좋아요가 얼마나 되는지 확인하는 일은 새로운 흡연과 같으니까요.
- HBO <리얼타임> 진행자 빌 마허
정적 강화라는 단어가 다소 어렵게 느껴진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목표 행동을 수행하고 특정 자극(보상)을 제공함으로써 그 행동의 발생과 강도, 시간을 증가시키는 방법을 말한다. ‘간헐적 정적 강화'는 그 목표와 보상이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이클 자일러는 1970년대 비둘기를 대상으로 간헐적 정적 강화에 대한 유명한 실험을 한다. 그 결과 예측할 수 없는 방식으로 제공되는 보상이 알려진 패턴에 따라 제공되는 보상보다 비둘기들을 더 모이에 집착하고 중독하게 만들었다. 즉, 예측할 수 있는 보상보다, 예측할 수 없는 보상이 훨씬 유혹적이다.
대표적인 기능이 ‘좋아요’다. 우리는 소셜 미디어 플랫폼에 포스팅을 할 때마다 일종의 ‘도박’을 한다. 얼마나 좋아요(혹은 하트, 리트윗)을 받을지 알 수 없으며, 그 예측불가능성 때문에 우리는 계속해서 어플을 확인한다. 페이스북 초대 대표인 숀 파커는 사용자의 도파민이 분비되어 시간과 주의를 최대한 많이 소비하도록 디자인한다고 밝힌 바 있다. 주의를 끄는 붉은색 알림 표시나 손쉬운 넘김으로 페이지가 넘어가는 기능도 간헐적이고 가변적인 보상의 일환으로 중독성을 심화시킨다.
인스타그램 역시 사용자의 시간과 주의를 더 어플에 쏟도록 도파민을 자극한다. 사진을 보정하고 좋아요와 댓글로 소통하던 초기 설계와는 달리, 이제 우리의 주의를 분산시키는 수많은 기능- 둘러보기, 다이렉트 메시지, 스토리 기능-이 계속해서 업데이트되고 있다. 특히 스토리 기능이 생긴 이후, 나는 확실히 인스타그램에 더 중독된 것 같다고 느낀다.
스냅챗의 기능을 본떠 만든 인스타그램의 ‘스토리’는 일반적인 포스팅과는 달리 24시간 이후 자동 삭제된다. 친구가 공유한 스토리 게시물을 클릭해 친구와 바로 1:1 대화를 할 수도 있다. 심지어 누가 내 글을 읽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소수의 사람들이 제한된 시간에만 볼 수 있다는 특징 덕분에 사용자들은 이전보다 더 자주, 솔직하게 스토리를 올린다. 24시간 동안 ‘도박’의 재미가 수직 상승하니, 종일 자기 계정을 계속 확인하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기 쉽지 않다.
최근 추가된 설문하기/질문하기/퀴즈와 같은 스토리 안의 추가 기능은 사용자의 보상 방식을 다양화해 이전보다 더 자주, 더 오래 인스타그램에 머물게 만든다. 스냅챗에서 시작한 스토리 기능은 인스타그램에 도입된 지 8개월 만에 스냅챗 이용자 수를 넘어섰고, 1년 만에 2억 5000만 명 이용자를 확보했다. 인스타그램 측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 일간 인스타그램 스토리 사용 계정만 5억 개에 달한다고 한다. 한국에서만 일일 스토리 게시물 수가 지난 12월 기준 전년 대비 50% 이상 증가했다고.
중독을 초래하는 두 번째 힘, 사회적 인정 욕구는 보다 이해하기 쉽다. IT 업계는 인정받고 싶어 하는 심리적 본능을 활용하는데 능숙하다. 특히 소셜미디어는 친구들이 당신을 얼마나 많이(혹은 적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정보를 꾸준히 제공하는 방향으로 세심하게 발전했다.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사진에 친구를 태그 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최근에는 첨단 이미지 인식 알고리듬으로 사진으로 나온 사람을 자동으로 파악하고 클릭 한 번으로 태그 할 수 있도록 거의 자동화되었다. 이 태그에 내가 들이는 수고는 거의 없지만, 태그된 사용자는 알림을 받으며 타인이 나를 생각하고 있다는 사회적 만족감을 얻는다.
최근 인스타그램에 추가된 "친한 친구" 기능 역시 사용자들의 사회적 인정 욕구를 자극하도록 설계되었다. 이제 스토리도 그냥 올리는 것이 아니라, "그냥 친구"와 "친한 친구"를 나눠서 올리는 게 가능해졌다. 타인이 나를 "친한 친구"로 등록해 보다 내밀한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을 알게 되면 뭔지 모를 뿌듯함도 들기도 한다. 나를 태그한 스토리는 내가 다시 재공유할 수도 있다. 사회적 인정 욕구가 상호작용하며 강화되는 것이다.
이처럼 사용자의 시간과 주의를 뺏는 방식으로 교묘하게 설계된 소셜 미디어를 모호한 의지 만으로 벗어나기는 쉽지 않다. 디지털 기술과 적절한 거리를 가지고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자유롭게 사용하기 위해서는, 내가 현재 무엇에 중독되어 있는지 명확한 진단을 내리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칼 뉴포트는 디지털 미니멀리즘이라는 철학을 제시한다. 이 철학의 핵심은 중요한 활동에 초점을 맞추고 다른 모든 활동은 기꺼이 놓치는 것이다.
나와 같은 디지털 중독자이자 핸드폰 바탕화면에 수많은 어플이 깔려있는 맥시멀리스트들은 칼 뉴포트의 제안에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내게 유용할 수도 있는 것을 놓치면 어떡해요?”
하지만 유용한 것을 얻을지도 모른다는 모호한 우려 때문에 수없이 소비되는 시간과 에너지의 총량을 생각해보면, "확실하게 유용한 일"을 하면서 사소한 편리를 기꺼이 놓치는 편이 더 적절한 태도가 아닐까 싶다. 칼 뉴포트는 이러한 자세를 디지털 미니멀리즘이라고 명명한다. 이 철학을 실천하는 사람들, 즉 디지털 미니멀리스트는 유용한 것을 놓칠까봐 걱정하지 않는다.
디지털 미니멀리스트가 되는 핵심은 나에게 무엇이 유용한 지 성찰하고, 필수적이지 않은 부차적 기술은 단호하게 벗어나 의미 있는 활동에만 집중하는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디지털 정돈"의 과정은 하나씩 점차적으로 진행하는 것보다 단기간이 확실하게 단행하여 결과가 오래 지속되는 편이 낫다고 말한다. 그가 제안하는 구체적인 “디지털 정돈” 3단계 과정은 다음과 같다.
1단계 : 생활하는데 필수적이지 않은 부차적 기술에서 벗어나는 30일의 기간을 설정한다.
일상적으로 중지해도 직업적/개인적 삶에 해가 되거나 지장이 없다면 부차적 기술로 보는 것이다.
2단계 : 이 기간에 만족스럽고 의미 있는 활동과 행동을 탐구하고 재발견한다.
이 기간에 당신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항상 연결되어 있는 반짝이는 디지털 세계 밖의 현실 세계에서 어떤 일들을 즐기는지 재발견해야 한다. 여가 시간에 실행할 양질의 활동을 적극적으로 찾아야 한다
3단계 : 어떤 기술을 재도입할지 결정한다.
이 기간이 끝날 때 백지상태에서 출발하여 부차적 기술들을 하나씩 다시 쓰기 시작한다. 각 기술이 삶에 어떤 가치를 제공하는지, 그 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해 어떤 방식으로 활용할지 파악한다.
디지털 디톡스가 단지 하루나 주말 정도 모든 디지털 기기를 끄고 잠시 도피하는 것이라면, 디지털 정돈은 디지털 미니멀리즘을 실행하기 위한 방식이며, 기존의 디지털 라이프를 전반적으로 개선하고 최적화하는 체질개선 프로젝트다.
<디지털 미니멀리즘>의 후반부인 Part2는 한 달간의 디지털 정돈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다양한 실천 전략들이 풍부하게 포함되어 있다. 물론 “좋아요를 누르지 마라”, “여가의 질을 높여라”와 같은 당연해서 어려운 전략도 있다. 그럼에도 디지털 정돈을 시행하는 사람이 발견할 수 있는 좋은 사례와 팁들이 곳곳에 숨겨져 있으니,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찾아 적용하는 것은 개인의 몫이다.
나 역시 나의 방식대로 디지털 미니멀리즘을 실행하는 중이다. 그러나 내 디지털 정돈의 문제(?)는 "부차적 기술"을 가려내는 첫 번째 단계에서 많은 기술들이 생존했다는 점이다. 이는 원고 작업을 하고, 다양한 콘텐츠를 접하는 것 자체가 업무의 일환인 프리랜서로서 정체성과 현실이 반영된 것이다. 넷플릭스를 보고 글을 쓰고 소셜미디어에서 글감의 초석을 자주 발견하는 나에게는 해당 매체들의 사용이 부차적이지만은 않다. 이런 경우에는 칼 뉴포트가 제안하듯 자신만의 '기술 활용 규칙'을 만드는 것이 좋다. 예컨대, "인스타그램과 트위터는 핸드폰으로 하지 않고 노트북으로만 한다"처럼 주도성을 잃지 않기 위한 장치나 철칙을 세울 수 있다.
내가 세운 원칙은 (1) 40분 업무+ 20분 휴식의 작업 루틴을 지킨다 (2) 해당 루틴을 하루 최소 8번 반복한다. (3) 작업 시간에는 핸드폰을 사용하지 않는다 -세 가지다. 인스타그램을 삭제했다가 금단 현상에 다시 설치하기를 반복하는 것보단, 작업 중간중간 쉬는 시간에만 확인할 수 있도록 시간 규칙을 만드는 방식이 나에게는 더 적절하다. 이 원칙을 습관으로 고착시키기 위해 생산성 프로그램인 "포레스트" 어플을 활용하기로 했다. (이 방법 역시 트위터의 김명남 번역가를 통해 알게 되었으니, 소셜미디어 못 잃어...)
포레스트 앱은 시간 측정과 사용 제한을 "나무 심기"라는 방식을 활용해 시각화한다. 하루 8그루 심는 것이 목표지만 아직 8그루를 다 심는 날은 많지 않고, 가끔은 20분 이상의 휴식을 취한다. 그래도 어플을 사용하기 전보다는 훨씬 작업 집중도가 상승했다. 무엇보다 그날 눈에 띄는 성과물이 보이지 않더라도 내가 집중한 시간을 가시적으로 본다는 것은 프리랜서에게 꽤나 큰 뿌듯함을 준다. 나에게 중요한 것은 작은 성과를 꾸준하게 쌓아가는 것이니까.
주도적인 디지털 라이프를 위해 충분한 시간을 들여 최적화된 기술 사용 계획을 수립하는 "디지털 정돈"은 핸드폰에 중독된 현대인이라면 한 번쯤 시도해볼 만하다. 디지털 정돈 기간을 거친 후에도, 나는 인스타그램을 계속 사용할 듯 하다. 다만, 나에게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본 글은 책 <디지털 미니멀리즘>을 읽고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