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동남아 여행기
미얀마, 태국,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
메콩 강이 흐르는 다섯 나라를 여행하는 디지털노마드의 반년
"한 여름에 그보다 더 뜨거운 동남아로 가는 사람들이 있다"
2017년 봄, 어렵게 휴가를 내 친한 회사 동료와 라오스로 떠났다. 10일 정도 되는, 당시 회사에서 낼 수 있는 모든 연차를 긁어모은 휴가였다. 우리가 라오스를 가기로 결심했던 건, 무언가 때 타지 않고 숨겨진 보석 같은 여행지라는 환상 때문이었다. 사실 <꽃보다 청춘> 같은 TV 프로그램에 자주 노출된, 이미 한국인들이 포화상태인 곳이라는 걸 늦게야 알아차렸지만.
우리는 알차게 라오스를 정복하고 돌아오겠다는 포부로 꽉 찬 일정을 짰다. 수도 비엔티안에서는 짧은 무박 2일을 보내고, 액티비티의 도시 방비엥에서는 푸른 에메랄드 빛 호수에 다이빙도 하고, 루앙 프라방에서는 승려분들의 탁발 행렬에 보시도 하고 말이지… 심지어 여행 경비 대비 과한 부티크 호텔을 과감히 결제하기도 했다. (그곳은 지성과 이보영의 신혼여행 숙소로, 야외 월풀 욕조가 있는 프라이빗한 숙소였다..) 하지만 이 모든 아름다운 여행지를 뒤로 하고 가장 여운이 남는 곳은, 수도 비엔티안이었다.
비엔티안은 라오스의 오래된 수도지만, 여행자들에게는 방비엥이나 루앙프라방 등 유명한 도시로 이동하기 위해 잠시 머무르는 곳으로 인식된다. 하지만 나는 이 비엔티안이, 정확하게는 삶에 급한 것이라고는 단 하나도 없어 보이는 유유자적한 비엔티안의 여행자들이 좋았다. 대낮부터 아무도 없는 한적한 바를 연 주인이나, 그곳에서 두꺼운 안경을 끼고 책을 읽는 사람, 노트북으로 신중하게 타자를 치며 글을 쓰는 사람. 그들은 한 곳에 길게 머물렀지만 언제든 훌쩍 떠날 수 있는 사람 같았다. 10보 걸을 때마다 사진 찍기 바쁜 단기 여행자였던 나는 라오스 여행 이후 어떤 강한 욕구에 사로잡혔다. 그건 바로,
"아주 길고, 느긋한 여행을 하고 싶다"
그로부터 1년 후, 잘 다니던 회사를 퇴사한 것도, 미얀마에 가는 비행기에 올라 10개월에 가까운 긴 여행을 시작하게 된 것도, 그중에 5개월은 메콩강 줄기가 흐르는 동남아에만 죽치고 있었던 것도, 이 모든 사건의 원인(원흉?)에는 2017년 라오스 여행이 심은 욕망의 씨앗이 자리 잡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든다. 명치를 지나 발끝까지 가라앉은 어떤 욕망이 발가락을 간지럽히는 바람에, 한 여름에 회사를 그만두고 그보다 더 뜨거운 동남아로 떠난 것은 아닐까? 그때 나는 라오스에서 어떤 여행균에 감염되어 온 것은 아닐까?
최초의 계획은 메콩강이 흐르는 나라를 모두 가보는 것이었다. 동남아 최대의 강 메콩강은 티베트에서 발원하여 미얀마, 라오스, 태국, 캄보디아, 베트남을 지나 남중국해로 흘러나간다. 다섯 나라 모두 한 달 살기를 해보려고 했지만 한번 눌러앉은 곳이 좋아 계획 일정이 변경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노마드다운 행동이 아니겠냐며, 라오스와 캄보디아는 잠시 미뤄두기로 했다. 그러니까 이 여행기는 미얀마 한 달, 태국 석 달, 베트남 한 달, 즉 관광 비자가 허하는 모든 일정을 꽉 채워 표류한 노마드의 단편선이다.
에어비앤비 작가로 선정되어 작성한 여행기가 에어비앤비 브런치에 발행되었습니다.
좋아요와 댓글을 부탁해..요..
에어비앤비 원고를 작성하면서 느낀 것이, 아직 쓰지 못한 동남아 이야기가 많더라구요. 그래서 동남아 여행 이야기만 담은 새로운 매거진 <메콩강을 여행하는 노마드가 되는 법>을 열었습니다. 언제나 그랬듯이 비정기적이고 아주 느슨하게 연재될 예정입니다. 겨울에 캄보디아에 다녀와 캄보디아편을 추가하는 것이 작은 목표입니다.
* 프롤로그 : 메콩강을 여행하는 노마드가 되는 법
1. 예술가로 여행할 수 있다면
: 미얀마 양곤에서 현대 미술관 투어하기
2. 아마 평생 이렇게 의심하며 여행하겠지
: 미얀마 트완테(Twante)에서 보낸 힘든 하루
3. 가이드북에서 알려주지 않는 것
: 미얀마 바간, 파고다의 일몰을 보다
4. 나도 디지털 노마드가 될 수 있을까
: 태국 치앙마이, 디지털 노마드에게 완벽한 곳
5. '마이 뺀 라이'와 '사바이 사바이'만 안다면
: 태국 치앙마이에서 배운 몇 가지 교훈들
6. 동남아를 여행하는 사람이 마주치는 모순들
: 여행자가 갖춰야 할 자세에 대하여
7. 완벽한 숙소를 만드는 몇 가지 요소
: 태국 빠이, 천국같은 게스트하우스
8. 어떤 도시는 음악으로 기억된다
: 태국 빠이의 재즈, 우쿨렐레, 플레이리스트
9.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유일한 일
: 베트남 호찌민에서 보낸 마지막 한 달
10. 어쩌면 이 모든 여정의 원인, 라오스
: 라오스 비엔티안, 방비엔, 루앙프라방
*에필로그 : 무위(無爲)가 일이 되는 곳
※ 캄보디아편 추가 예정
이 곳은 무위(無爲)가 일이 되는 곳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여기서 할 유일한 일이다. 하지만 오로지 그런 조건에서만 우리는 새로운 일을 시작할 아이디어를 얻고는 한다. 삶과 사유에 느긋한 공백을 만들어주는 메콩강은 언제나 내게 더할 나위 없이 촉촉한 자극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