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의 글쓰기 클럽

사과집의 글

by 사과집

“서류 전형에 불합격하셨습니다.”


언론사 입사 준비를 1년 정도 했을 무렵이었다. 연이은 채용 고배에 좌절하던 차에 가장 가고 싶었던 회사에서 서류부터 떨어졌다. 책상 한편엔 논술과 작문이 빼곡히 적힌 굵은 스프링 노트가 여덟 권이나 쌓여 있었다. 모니터 속 선명한 불합격 소식은 이만큼 공부해도 문턱조차 넘을 수 없다고 말하고 있었다. 1년의 준비가 헛되게 느껴진 순간, 나는 ‘쓸모 있다’는 감각이 절실하게 필요했다. 나의 존재 의미를 어떤 식으로든 증명하고 싶었다. 미뤄온 버킷리스트를 이제는 실행할 때가 됐다고 생각했다. 글쓰기 워크숍을 여는 것이다.


그렇게 ‘분노의 글쓰기 클럽’을 열었다. 분노를 자원으로 글을 쓰고, 변화의 물꼬를 트는 시민이 되도록 돕는 일을 하고 싶었다. 사실 기존에 커리큘럼까지 다 짜놓은 수업이었다. 다만 직업을 얻고 안정된 후에, 오프라인에서 진행하는 것을 계획했다. 코로나는 취업과 오프라임 모임, 이 모두를 어렵게 만들었다. 나는 내가 왜 언론인이 되고 싶은지를 다시 떠올렸다. ‘나의 이야기를 쓰는 데서 나아가 타인의 이야기를 듣는 것, 그들의 이야기가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도록 힘을 싣는 것.’ 그것은 꼭 어떤 회사에 들어가야지만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탈락 공고를 보자마자 인스타그램에 글을 올렸다.

“제가 온라인 글쓰기 워크숍을 열면 관심 있을 분이 계시려나요?”




그렇게 열두 명의 사람들이 모여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어느 날의 주제는 ‘여자이기 때문에’였다. C는 터키 이스탄불에서 택시를 탔다가 납치된 경험을 썼다. 그는 GPS를통해 자신이 호텔로 가는 게 아니라 바다를 건너고 있음을 확인했다.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정중히 부탁했지만, 납치범은 C를 무시하고 웃기만 했다. C는 가진 돈을 창문 밖으로 꺼냈다. “나를 내려주지 않으면 이 돈을 창밖으로 뿌릴 거야. 내려만 주면 얌전히 다 줄게.” 골 때린다는 태도로 호탕하게 웃은 납치범은 C를 버리고 떠났다. C는 생각했다. ‘강간당하지 않고 살해당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혼자 여행하는 여성이었기 때문에 그의 최소한의 인권은 다행의 조건이 되었다. 당시 건장한 백인 남성 애인이 있었던 C는 누군가 말을 걸 때마다 핸드폰 배경을 내밀며 곧 내 애인이 온다고 말해야 했다. 그가 낭독한 “남성이 무서워 남성을 방패 삼았다”와 “내가 이 세상에서 처음 진 죄는 여자로 태어난 것 같다”는 문장에 우리는 같이 울고 분노했다.


어느 날의 주제는 ‘내 인생의 슬픈 날’이었다. J는 어린 시절 엄마를 여의고 삶의 기술을 일찍 배웠다. 스스로 옷을 빨아 다림질을 하고, 장을 보고 직접 밥을 지어 먹었다. J에겐 언제나 “엄마 없는 아이니까”라는 말이 꼬리표처럼 따라붙었다. 초등학교 시절 어느 날, 같은 반 아이는 J에게 말했다. “엄마도 없는 게.” J는 드라마 속 연약한 캔디와 달랐다. 대신 그 아이의 뺨을 갈겼다. 그리고 선생님이 등장하자마자 눈물을 흘렸다. 흠잡을 곳 없는, ‘엄마 없는 아이’의 완승이었다. J는 낭독했다. “열 살짜리 엄마 없는 아이가 유일하게 가진 무기는 적재적소에서 불쌍하게 눈치 보기”였다고. 그러나 J가 이 사건을 기억하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J를 바라보는 반장의 눈빛 때문이었다. J는 엄마가 없는 것보다, 거짓말로 잘못을 가린 치졸한 자신을 부끄럽게 한 반장의 눈빛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고 했다. 자신의 과거를 직시한 J의 고백은 우리의 삶도 되돌아보게 만들었다.


분노하고, 반성하고, 연대하며 우리의 용기는 서로에게 전염됐다. Y는 대전에서 ‘여담(女談)’을 만든 이야기를 들려줬다. 학과 30주년 행사에서 Y는 발견했다. 여초 학과 행사임에도 마이크를 든 수많은 연사 중에 여자는 없다는 것을. 그래서 Y와 여성 학우들은 직접 여성의 이야기를 찾아 마이크를 쥐여주기 위해 여담을 시작했다. 지금껏 보이지 않았던 여성들, 특히 지역에 사는 여성들에 집중해 감춰진 이야기를 듣는 프로젝트였다. 여성들의 이야기가 더 이상 여담(餘談)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우리는 Y의 이야기를 들으며 짜릿함을 느꼈다. 분노를 동력으로 세상을 바꾸기 위해 실천하는 여성의 모습에 서로 힘을 받았다. 우리는 글을 쓰고 나누며 원하는 삶에 조금씩 가까워졌다.


누군가 말했다. “우리는 같은 방향으로 분노하고 있다.” 또 누군가는 말했다. “분노를 제때 할 수 있다.”

같은 시간, 같은 자리에서 우리는 분노하고 울고 또 웃었다. 비대면 온라인 수업이라는 게 무색하게, 매번 화상 화면과 채팅방은 웃음으로 가득 찼다. 나는 이게 내 삶에 필요한 순간이라는 걸 알았다. ‘동시대의 이야기를 발굴하고 전달하는 사람’이 나의 꿈이라면, 나는 이미 열두 명의 사람들과 나의 꿈을 실현하고 있었다.


나는 분노의 글쓰기 클럽을 진행하며 매주 같은 말을 중얼거려야 했다. ‘이 클럽, 안 하면 어쩔 뻔했지?’ 그런데 그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내가 실패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열두 명의 분노러(우리는 서로를 분노러라고 부른다)들은 매주 각자의 실패담을 전한다. 이건 어쩌면 실패에 대한 커뮤니티다. 하지만 우리의 실패는 실패에서, 분노는 분노에서 끝나지 않는다. 앞으로 또 수없이 많은 실패를 경험할 나에게 미리 예언한다.


“넌 언제나 좌절하는 순간에 새로운 의미를 발견할 거야.”


이건 분노러들에게도 전하고 싶은 말이다.




브런치북 <분노의 글쓰기 클럽>은 동명의 글쓰기 워크숍에서 멤버들이 쓴 글을 묶은 매거진입니다.

그림 : Mountains and Sea, 1952 by Helen Frankentha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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