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여튼 여자들은

여름의 글

by 사과집


퇴사를 했다. 나에겐 큰 결심이었는데, 3년간 ‘이놈의 회사 내가 때려치운다’라는 말을 너무 많이 하고 다닌 탓에 주위 사람들은 ‘드디어?’ 하는 심드렁한 반응이 더 많았다. 말마따나 드디어 퇴사를 하려는데 무슨 절차가 이렇게 많은지, 평소에도 직원들의 업무와 생활에 이만큼 관심이 많으면 나처럼 퇴사하는 주니어는 더 줄어들 거라고 생각하며 인사팀 면담에 들어갔다. 인사팀장은 그룹 생활에 뼈가 굵은 사람이었고 이 회사에 부임 후 처음 제 손으로 뽑은 공채가 나와 내 동기들이었기에 우리에 대해 속속들이 잘 알고 있었다. 미리 준비해둔 그럴싸한 퇴사 이유를 말하니 사실은 다른 이유 때문 아니냐며 적나라한 사업부의 민낯을 먼저 내밀었다. 그쪽에서도 수지 타산을 맞추기 위해서였겠지만 내가 조직을 떠나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을 수 있는 몇몇 해결책을 제안해 주기도 했다.


얘기가 길어지면서 인사팀장은 우리가 처음 채용됐을 무렵까지 거슬러올라가기 시작했다. 나와 A씨는 다른 사람들보다 약간 그늘이 있는 것 같다고. 그래서 처음부터 걱정이 됐다고 했다. A는 폭언을 일삼는 팀장에 대한 자구책으로 사내 잡포스팅이라는 아주 표준의 제도를 이용해 팀을 옮긴 동기였다. 그렇군. 우리 같은 사람을 그늘이 있는 사람이라고 칭하는군. 입안이 썼다. 그 후 얼버무리듯 지나간 얘기는 오래 머릿속을 맴돌았다. 사장님이 능력만 보고 채용하라 하여 이렇게 (내 기수는 여자 7명에 남자 1명으로 입사했다) 뽑았지만, 여자 직원들은 나, 그리고 A씨처럼 조직에 적응을 잘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거였다. 조직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되짚어보는 것보다 이러나저러나 참고 고개 숙여 맞출 줄 모르고 불만을 표시하는 게 고까운 모양이었다.


부글부글 끓는 분노를 식혀서 걸러보니 세 가지 감정이 남았다. 첫 번째, 의구심이었다. 그게 비단 여성들만의 나쁜 기질이면, 최초 계약 시 홀라당 나가버린 두 남성 지원자에 대한 책임도 이만큼 묻고 있는지, 조직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보다 이 조직에 맞출 사람을 뽑는 게 편해서 남자를 선호하는 게 합당하다고 생각하는 건지 궁금했다. 두 번째, 모멸감이었다. 당장 내가 회사를 떠나는 이유만 대도 다섯 개는 족히 나오는데 그걸 그냥 ‘여자여서 못 견디고…’라는 아주 무딘 날로 잘라버리는 것이 인사 담당자로서의 업무 태만이며 나에 대한 기만이라고 느껴졌다. 마지막은 부담감이었다. 퇴사는 더 이상 이 환경에 나를 방치하지 않기 위해 뽑아든 마지막 무기였다. 그런데 내 비장의 무기가 저들의 여성을 일반화에 기여하는 사례가 될까 봐 걱정됐다. 앞으로 들어올 나의 많은 후배들이 ‘이래서 여자들은…’ 하는 것에 가담하게 될까 봐 모종의 부채의식까지 느꼈다.


회사는 때때로 여자 사우들을 미혼/기혼, 예쁘다/그 외, 와 같은 두어 개의 기준으로 사분면을 만들어 놓고 모든 캐릭터를 유형화해야 속이 시원한 사람들이 모여있는 집단 같았다. 차장 이상 여자들은 전부 ‘센 언니’라고 부르는 그들의 옹졸함에 대해, 25살에 입사한 내가 27살이 되자 기다렸단 듯이 너도 이제 꺾였다고 달려드는 반(反) 여든 이상의 그들의 유치함에 대해, 나는 자주 가슴이 답답했고 매일 분개했다.


어쩌면 정말 더 많은 여자선배들이 조직 부적응을 이유로 회사를 떠나왔을지도 모른다. 수치가 증명하는 거라고 그들이 퇴사율을 들이밀 수도 있다. 그건 아마 마주 선 우리가 딛고 있는 땅의 경사를 배제한 통계일 것이다. 지극히 남성 중심적으로 가꿔 놓은 조직에 장식처럼 몇 여성들을 채용하고, 몸에 맞지 않는 옷을 벗으려 드는 숱한 여성들을 나약하다 책망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견뎌내는 여성 인력에 대한 ‘(지) 독하다’는 평가 또한 농담처럼 흩날렸을 것이다.





여름

브런치



브런치북 <분노의 글쓰기 클럽>은 동명의 글쓰기 워크숍에서 멤버들이 쓴 글을 묶은 매거진입니다.

그림 : 박자현 - 일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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