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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던 여직원들은 어디로 갔는가

프롤로그 / 직장 내 성차별에 대한 우리의 이야기

by 사과집
<그 많던 여직원들은 어디로 갔는가>라는 매거진에서 약 열편의 글을 직장 내 성차별을 주제로 연재합니다. 본인의 경험과 사례는 언제든지 공유해주세요. 이메일 applezib@naver.com


친구들에게 직장 내 성차별에 대해 물었다



최근 애나벨 크렙의 훌륭한 책 <아내 가뭄>을 읽고, 직장 내 성차별에 대한 나의 경험이 봇물처럼 떠오르기 시작했다. 진지하게 나는 나의 첫 직장이었던 현대자동차는 남자가 편하게 육아휴직을 쓸 수 있는 날보다 자율주행 5단계 상용화가 오는 시기가 더 빠를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이다. 먼저 털어놓고 싶은 이야기가 많지만, 나의 사례만 들기에는 부족할 것 같아서 카톡과 인스타그램으로 친구들의 사례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제조업, 유통업, 법조계, 간호업… 등 각 분야에 있는 친구들의 직장 내 성차별에 대해 들었다.


제조업 공장에서 일하는 J는 아직도 공장 직원들이 자기를 아가씨라고 부른다고 했다. 유통업에서 일하는 S는 퇴사한다고 밝혔을 때, 친한 선임님에게 "이렇게 자꾸 그만두니까 여자를 안받는거야"라고 들었다. S는 집합교육 때 누가 볼까봐 <82년생 김지영> 책을 가방 깊숙한 곳에 숨기던 여자 동기의 표정을 기억한다. 여대 로스쿨을 다니는 K는 "여대 출신은 찡찡거려서 선호하지 않는 편이다"라는 말을 여대 로펌 설명회에서 들었다. 인스타그램 친구인 A는 매일같이 신혼인 여직원에게 남편 밥은 차려주나는 과장님의 말을 듣는다. Y는 미팅하고 차로 이동하는 와중에 클라이언트로부터 "나는 여자 가슴 만지면서 운전해야 운전이 더 잘 되더라"라는 말을 들었다.


기분이 이상했다. 기사에서 보는게 아니라, 나랑 웃으며 카톡하던 친구들의 이야기라서 슬펐다. 우리 모두 차별을 견디며 직장 생활을 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우리가 겪고 있는 성차별의 스펙트럼이 너무 넓다는 걸 깨달았다. 가사 노동의 불균형, 경력 단절, 외모 강박, 외모 치장에 걸리는 불균형한 시간, 직장 내 펜스룰, 성희롱,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왜곡된 시선 등 ... 이 모든 성차별은 서로 한데 엮여 있어서 무엇 하나 떼고 얘기하는게 힘들었다. 여성의 성차별은 현재하는 심각하고 복잡한 문제지만, 직장이 변하지 않는다면 20대 여성은 직장에서 도망치거나, 생존을 위해 비혼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그 많던 여직원들은 어디로 갔는가



나는 직장을 다니면서 이상한 경우를 많이 봤다. 아주 능력 있는 여성 상사들이 퇴사를 하고 전업주부가 되거나, 남편의 주재원을 위해 해외로 이민가는 경우를. 왜 항상 여자가 그만둘까? <아내가뭄>에 따르면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여성의 경제 활동 참여율이 남성의 경제활동 참여율만큼 오른다면 국민 총생산이 11퍼센트 느는 것으로 확인됐다. 광업 부문이 통째로 하나 더 생기는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한국의 경우는 어떨까. 한국은 OECD 국가 중 유리천장 지수로 6년 연속 꼴찌를 기록했다. 여성정책연구원이 2013년 발표한 조사 결과, 여성의 경력 단절로 사회는 연간 15조 이상의 손해를 본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지난해 한국을 찾아 “노동시장에서 성차별 해소시 한국 국내총생산(GDP)의 10%가 늘 것”이라고 전망했다.


순간 문정희의 시 <그 많던 여학생들은 어디로 갔는가>가 떠올랐다. "학창시절 공부도 잘하고 특별 활동에도 뛰어나던 그녀, 여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입시에도 무난히 합격했는데 지금은 어디로 갔는가 ... 저 높은 빌딩의 숲, 국회의원도 장관도 의사도 교수도 사업가도 회사원도 되지 못하고 .... 크고 넓은 세상이 끼지 못하고 부엌과 안방에 갇혀 있을까. 그 많던 여학생들은 어디로 갔는가." 1990년대의 시인데, 왜 지금도 그렇게 달라졌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 물론 20년 전에 비해서는 달라졌다. 대졸자 수는 여성이 남성을 훨씬 앞지르고, 사회 진출도 많아졌다. 하지만 아직도 여직원 900명 중 1명 만이 임원으로 승진한다. 남성은 86명 중 한 명이 임원이 될 수 있다. 여성을 공채로 뽑기 시작한지는 이미 30년이 넘었다.


직장 생활에서는 부조리 곡선이 있다. 여성들은 고위직 승진에서 어느 시점부터 그 수가 거의 바닥으로 곤두박질 치는데, 부조리곡선은 이러한 곤두박질치는 여성의 수를 표현한 활 모양의 곡선이다. 아직도 교육과 노동, 경험에서 모든 것을 다 갖춘 대부분의 여성들이 그냥 연기처럼, 공기 중으로 증발해버린다. 그래서 다시 묻는다.


그 많던 여직원들은 어디로 갔는가.




모두가 패자가 되는 시스템에서 벗어나자



이 글은 앞으로 연재할 <그 많던 여직원은 어디로 갔는가> 매거진의 프롤로그다. 약 열편 정도로 직장 내 여성 성차별에 대한 글을 써보려고 한다. 그 많던 여직원은 도대체 어디로 갔는지, 왜 사라졌는지, 사라지지 않기 위해서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 나와 친구들의 주관적인 관찰 보고.


맥킨지는 한국이 성 평등 문제를 해결하면 2025년 GDP 9%가 증가할 것으로 본다. 우리는 지금 모든 여성을 가르치고 훈련시킨 비용 뿐만 아니라 생산성까지 버리는 엄청난 낭비를 하고 있다. 이런 성차별적인 문화는 모두가 패자가 되는 시스템이다.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는 여성들, 일터에 갖혀있다고 느끼는 남자들, 아빠의 얼굴을 자주 보지 못하는 아이들. 그래서 글을 쓴다. 더 이상 여직원들이 '어디로 가지 않기'를 바라면서.


나의 친구들의 사례처럼, 여성의 어디로 가는 이유에는 수많은 이유가 있다. 경력단절, 성적대상화, 펜스룰,유리천장, 외모평가 등 ... 그래서 본 매거진에서는 직장 내 성차별에 관련된 주제를 한 편씩 연재할 것이다. 실제하는 성차별 사례를 나와 친구들이 겪은 것을 중심으로 이야기하고, 모두가 패자가 되는 시스템에 대해 짚어볼 것이다. 여성들과는 일을 그만두지 않고 공생할 수 있는 방법을 함께 찾을 것이며, 남성들에게는 성차별을 인식하고 변화하라고 말할 것이다. 가능하다면 이미 이런 고민을 하고, 나름의 해답을 찾아가고 있는 일하는 여성들의 인터뷰도 하고 싶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를 하는 것 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 당연한 이야기마저 의제가 되지 못한 시간들이 오래 되었다. 그리고 간절하게 당신의 이야기를 바란다. 함께 이야기하면 바뀔 수 있다. 브런치든, 메일이든, 인스타그램이든, 페이스북이든. 언제든지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기를 바라며 연락을 기다린다.




<연재 계획>


# 프롤로그_그 많던 여직원들은 어디로 갔는가

1. 이중노동 / 워킹맘에게도 아내가 필요하다

2. 대상화의 문화 / 신입사원 위문공연 - 아직도 회사에 치어리더를 부른다

3. 펜스룰 / 비서와 거리를 둘거지만 우선 예쁜 사람을 뽑아야겠어

4. 성희롱 / 직장인 여성 중에 미투 농담 안 들어본 사람 없다

5. 외모평가 / 우리 주위의 흔한 외모 평가

6. 코르셋 / 아침에 여자들이 버리는 시간

7. 유리천장 / 여자도 임원이 될 수 있을까

8. 경력단절 / 가사 노동의 분업 없이 워라밸은 불가능하다

9. [인터뷰]

#에필로그.


* 연재 계획(순서 및 글 수)는 변경될 수 있습니다.

* 메인사진은 Edouard Vuillard의 그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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