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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집 Dec 06. 2018

여행자의 강박

헤르미온느의 운명


 여행 석 달째. 이곳에서도 어김없이 나는 계획 강박에 시달린다. 여행에 대한 강박이 아니다. 일상에 대한 강박이다. 공부도 하면서 책도 읽고, 글도 쓰면서 여행도 하고, 그림도 그리면서 우쿨렐레도 치고, 기사도 읽으면서 영어 공부도 하고, 포트폴리오도 만들면서 책도 만들고...  현재를 살면서 과거를 정리하고 미래를 준비하려는 3중의 강박. 물론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되는 건 없다. 
 
 평생을 이러고 살았으니 여기 와서도 달라질거라 기대하지는 않았다. 그저 나의 고칠 수 없는 특징 중 하나라고 생각하며 살 뿐이다. 일상의 균형을 잡는 것이란 어려운 일이지만, 내게 균형을 잡을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것을 기뻐하며 즐겁게 계획과 포기를 반복한다. 어짜피 완벽한 균형은 없다. 평균대 위에서 중심을 잡기 위해 팔을 넓게 벌리고 천천히 발 하나를 내딛는 삶, 어쩌면 삶이란 그런 것이다. 그런 위태로움이 내 세계를 버티게 한다. 
 

 완벽한 균형은 없다.
위태로움이 내 세계를 버티게 한다


 나의 강박을 인지하며, 그저 물 흐르듯이 살자. 내가 해야할, 하고싶은 수많은 것들의 리스트를 확인하면서. 이걸 하고 싶으면 이걸 하고, 저걸 하고 싶으면 저걸 하고. 무언가 너무 오래 안한게 있다면 가끔 그것만 할 수 있는 온전한 시간을 가져보고.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미뤄둔 책을 읽는 날로 정했다. 좋은 책을 읽고나면 머리 속에 또 각종 질문과 아이디어로 가득해진다. 더  나은 질문과 행동으로 나를 데려가주는 책을 만나면 순식간에 삶이 확장되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




하고 싶은게 많은 사람은 언제나 신선한 자극과 강렬한 충동으로 가득차 있다 .

다만 그 '하고 싶은 것'이 이 여행에서만 할 수 있는 현재지향적인 것들이 많았으면 한다. 

평생 그랬듯이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애쓰려고 긴 여행을 떠나온 것이 아니니까. 


for. 치앙마이에 있는 헤르미온느 S에게


Édouard Vuill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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