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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씨 Jun 07. 2018

무지개 여신

매우 오래 잊혀지지 않는 영화 리뷰

아픈 기억보다 더 슬픈 것은 그 기억마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 간다는 것.


이루지지 않은 첫사랑. 이젠 그 진부함에 넉다운이 될 만도 한데 그 이름은 여전히 습기 하나 없이 건조해진 일찍 늙어버린 바보들의 마음을 쓸쓸하게 적셔온다. 지금 손안에 쥐고 있는 것보다 가지지 못한 과거의 기억, 혹은 영원히 다시 돌아올 가능성마저 박탈당한 죽어버린 첫사랑은 기억은 재생될 때마다 후회와 아쉬움과 쓸쓸함을 변주한다.


망각 이외에는 치료제가 없는 이 쓸쓸함의 변주곡을 감독은 다시 한번 연주한다. 러브레터에서 순백의 설원을 지나 도서카드와 함께 전달된 첫사랑의 기억은 신기한 (혹은 불길한) 수평 무지개의 노래로 다시 반복된다. 영원히 되찾을 수 없는 후회와 얼마 남지 않은 핸드폰 배터리와 함께.


신파임에도 불구하고 산뜻하게 감정을 절제하는 특유의 톤과 우에노 주리, 이치하라 하야토 두 배우의 연기가 좋은 조화를 이룬다. 휘날리는 벚꽃이나 하늘과 땅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는 설원과 같은 낭만적인 장치 없이 구질 구질한(그러나 젊은 배우들의 생기 덕에 발랄해 보이기까지 한) 일상 속에서도 그 애틋함과 설레임, 아쉬움의 감정은 더 도드라지게 느껴진다.


'끝난 건..... 나 혼자였다..' (아오이)  


한 번의 오열과 타다 만 핸드폰에 남겨진 그녀의 기억. 그러나 배터리는 그리 오래가지 않고 죽어버린 첫사랑의 기억도 아마도 망각의 저편으로 천천히 물러날 것이다. 그래서 더욱 슬프다. 젊음의 생채기에 대한 기억들이 손에 잡을 수 없는 무지개처럼 영원히 사라져 가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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