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출발 #마쓰모토 세이쵸 #점과 선 #우연과 필연 #개발자 수필
얼핏 생각하면 같은 거 같지만 둘은 전혀 다른 아이디어에 의해 탄생했다. 적어도 개발자인 나는 그렇게 믿는다. 하나의 그래프에서 각각의 노드(node)와 엣지(edge)가 다른 의미를 갖듯 출발점과 출발선도 그래 보인다.
'점과 선'은 내가 이름을 외우는 몇 안 되는 일본 추리소설 작가 중 한 명인 마쓰모토 세이초(松本 淸張)의 첫 장편 미스터리 소설의 제목이다. 몇 해 전 시립도서관 일본 소설 서가에서 이 책이 눈에 들어와 빌려 읽게 된 건 딱히 내가 사회파 미스터리물을 좋아해서가 아니었다. 단지 제목을 이렇게 쓴 사람이라면 뭔가 있을 거 같다는 막연한 친근함 때문이었다. 굳이 이런 제목을 붙였다는 게 이 사람도 나랑 비슷한 부류가 아닐까 하는.
스물아홉이었으니 난 개발자로서는 한 참 늦은 나이에 데뷔를 한 셈이다. 대학을 마치고 국방의 의무를 다하고 나니 스물아홉이 되어 있었고, IMF의 후유증으로 당시 많은 기업들은 신입 공채의 지원 조건으로 만 28세 이하니 만 29세 이하니 하는 식으로 지원 가능한 연령대를 제한하는 공고를 내던 시절이었다. 그러니 길게 잡아야 2~3년 안에 취직을 못하면 만 29세를 넘어버려 웬만한 대기업엔 지원조차 못하겠다는 불안도 몇 번은 가졌던 거 같다.
하지만 운 좋게도 전역하던 해 백색가전으로 유명한 L사에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채용이 되었고 석 달이나 되는 신입 교육기간 동안의 평가도 나쁘지 않아 당시 인기 있던 모바일 프로그램 개발부서에 배치되었다.
문제는 팀에 배치받은 첫날부터였다. 난 여기저기 상급자들에게 불려 다녀야 했다. 그리고 그들로부터 잘못 온 거 아니냐, 낙하산 아니냐, 다른 곳으로 보내달라면 보내주겠다는 등의 말을 들어야 했다. 그건 내 전공이 경영학이었기 때문이었다. 개발자의 삶이 시작된 건가 싶어 맑고 푸르게 부풀었던 가슴이 왠지 모를 죄책감과 억울함, 불안 같은 불투명 무채색들로 뒤덮이기 시작한 게 그 첫날부터였다.
그리고 '출발'이란 단어는 이때부터 내 인생에 있어 가장 신경 쓰이는 단어 중 하나가 되었다.
출발점이 틀렸고 출발선에 함께 서있다고 생각했던 동료들도 착각이었다. 그들은 이미 오래전에 출발한 경쟁자들이었다. 그들의 출발점은 훨씬 오래전 지나버린 시간 어딘가에 있을 것이었기에 그들이 내 출발선을 지나치기까지 했을 노력, 피, 땀, 눈물을 어떻게든 떠올려야 했다. 그들은 내가 그걸 깨닫고 있는 순간에도 저 앞으로 달려 나갔다. 그들을 따라잡으려면 잠을 줄여 공부해야 했고 누구보다 오랜 시간 집중해야 했다. 그럴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지속하려는 습관들을 새겨가며 날 채찍질했다. 그들의 등이 가까워질수록 힘을 냈다. 그들의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올 때까진 '출발'에 대한 생각을 멈출 수 없을 것 같았다.
7년은 걸린 듯하다. 그들과 똑같은 출발선에서 시작한 경주를 하고 있다는 착각을 하고 살아도 이젠 괜찮겠다는 느낌이 들기까진.
그러나 우연처럼 인지했던 출발선이 무의미해진 순간에도 출발점은 필연처럼 바뀌지 않았다. 멀리 더 머얼리 달려가서 처음 시작한 곳이 희미하게 잘 보이지도 않거나 시작을 어디서 했든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느껴지는 때가 오면 막연히 '출발'이란 단어의 무게도 좀 가벼워질 거 같았다. 그땐 그랬다. 아니 과거의 한동안은 그랬다.
그리고 지금, 뒤돌아 출발점이 뚜렷이 보임에도 '출발'은 가벼워졌다. 그저 어떤 출발선에 서든 일단 출발을 하면 다른 출발점에 도달하게 된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마쓰모토 세이쵸의 '점과 선'이 불현듯 떠오른 이유가 집힐 것도 같다.
필연과 우연, 우연을 통해 필연을 깨닫게 되고 본질을 추적해가지만 결국 필연이 우연만큼 중요한 건 아니었던 거라 기억하는 입장에서, 내 출발점도 그 필연이란 것과 많이 닮아있지 않을까.
그래서였든 아니든 '출발'의 무게가 버거워 벗어던지려 그렇게 애를 썼으면서도, 때때로 개발자인 나는 출발점과 출발선이 아무렇게나 서로의 자리에 잘못 놓여 있는게 참 못마땅하다.
필연도 중요하지만 우연 또한 내 삶에선 소중하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