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말은 아무 생각없이 최대한 즐겨보자라고 다짐했다. 그래서, 좋은 풍경보고 맛있는 거 먹고 신나게 땀 흘리면서 운동도하고, 정신없는 시간들로만 가득 채웠다. 그렇게 월요일이 되었다. 주말에 쉬지 못해서 인지 아니면 평소보다 1시간 정도 일찍 출근해서 인지 유독 피곤하게 느껴지는 하루였다. 그리고 나는 달력을 보면서 잠시 생각에 잠길 수 밖에 없었다.
이번주 수요일은 내가 퇴사를 계획했던 날이기 때문이다. 10/18이라는 날짜 양 옆에 별 표를 해두고 아주 특별한 날인양 이 날을 기다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퇴사를 계획한 건 이번이 처음있는 일은 아니었다. 입사할 때부터 최소 1년 간은 절대 퇴사하지 않겠노라 다짐했고, 그동안 포트폴리오를 알차게 쌓을 수 있도록 참 열심히 일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1년 전에 퇴사하지는 않을거고, 이직을 통해 연봉과 커리어적으로 점프업할 수 있도록 내 포지션에서 양질의 경험들을 쌓으려고 애썼다. 하지만, 인생은 내 맘대로 흘러가지 않았고 입사 1년이 된 시점에 지원한 회사 7곳 중 1곳을 빼고 모두 서류에서 떨어졌다. (합격한 곳은 출퇴근 시간이 긴 탓에 면접을 고사할 수 밖에 없었다.) 그 때부터 나는 입사보다 이직이 더 어렵다는 것을 뼈져리게 깨달았다. 그리고 더 많은 회사에 지원했고, 최근까지 면접을 보러 다녔지만 아직 최종 합격 통보를 받은 곳은 없다. (연봉 협상 제안온 곳이 있지만, 회신을 받지 못한 상황이다)
월요일이라 그런지 아니면 쌀쌀해진 날씨에 괜시리 더 감성적으로 변한건지 내 스스로 본질에 대한 질문을 하나를 던져보았다.
'내가 퇴사를 망설이는 진짜 이유가 뭐야?'
'무엇이 너를 이토록 힘들게 하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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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승 이직 말고 너 지금 당장 퇴사하고 싶은거 맞잖아'
맞다. 난 사실 퇴사가 아주 간절하다. 회사에서 출근해서 이유없이 숨이 턱 막히는 기분도 싫고, 의욕이 떨어졌지만 그럼에도 억지로 앉아있는 내 모습도 싫다. 어떤 일이든 마음을 다해서 하는 탓에 진심 없이 그저 해야하기 때문에 하는 것은 내가 추구하는 삶의 모습과 참으로 많이 다르다. 하지만, 문득 직장 생활의 기간이 늘어날수록 진심을 다해서 일하는 것이점점 더 어려워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을하게 되었다. 1년차, 3년차, 5년차 그리고 10년차 직원들의 모습이 다 다르듯 우리는 모두 열정적인 인턴인 때가 있었지만 자연스럽게 진심은 뒤로 하고 현실과 타협하게 되지 않나. 하지만, 머릿 속으로 납득이 되면서 내가슴 깊은 곳에서는 끊임없이 살려달라고 외치고 있었다. 그리고, 정말 퇴사가 두려운 이유를 내 스스로 고민해보았다.
정답은 집이었다. 본가가 지방에 있기에 서울에서 자취를 하고 있는 나는 참으로 이사를 많이 다녔다. 내가 살아온 주거 형태도 가지각색인데 아주 오래된원룸에서 2년동안 살았던 것을 시작으로 코딱지만한 쉐어하우스부터 2인실 쉐어하우스까지 경험하기도 했다. 서울에서 마음을 정착하지 못한 탓인지 혜화 근처에서 살았던 것을 시작으로 응암, 합정, 그리고 지금은 관악구에 거주하고 있다. 나는 매번 필요에 의해서 빠르게 주거지를 결정했고 그렇다보니 집에 대한 아쉬움이 늘 마음 한켠에 남이 있었다. 그래서, 더이상 후회를 하고 싶지 않아 내가 한번쯤 살고 싶었던 곳에 살아보자!라고 다짐한게 올해 중순이었다.
합정 쉐어하우스를 떠나기로 결심하고, 나는 3곳 정도의 집을 둘러보았는데 '여기서 사는데 굳이 돈을 내야한다고?' 싶은 집들의 가격이 55만원을 웃도는 것을 보고 나는 이 돈 내고 못산다고 생각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굳이 이 집을 위해서 이 돈을 내고 싶지 않았달까. 그렇게 나의 이사 계획이 무산되나 싶었던 순간 마지막으로 보러간 한 복층집에 나는 마음을 뺏겨 버리고 말았다. 큰 층고에 온 집이 환하도록 들어오는 햇살, 인테리어를 잘 해놓은 덕에 집이 아니라 작은 갤러리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나는 집을 구석구석 보지도 않았고, 그냥 여기가 내가 찾던 곳이다라는 생각과 함께 덜컥 집을 계약했다. 그렇게 계약한 집의 월세는 68만원에 10~12만원의 관리비를 포함하니 매 달 집세로만 80만원의 금액이 나가는 곳이었다. 사실 생각해둔 예산을 약간 오버하는 금액에 고민을 하기도 했지만, 지금이 아니면 언제 이런 집에 살아볼 수 있을까 싶은 생각에 고민은 잠시 접어두었다.
'월세는 쉐어하우스보다 더 나가지만 난 이 집에서 모임을 열거고, 사이드잡을 지금처럼 꾸준히 할테니내 통장엔 전혀 무리가 되지 않아!' 하지만 호기로운 다짐도 잠시, 매 달 주거비로 80만원의 돈이 나가는 건 꽤나 큰 출혈이었다. 회사에서 본가를 통해 출퇴근 하는 직원분들과 대화를 나누다보면, 그들에겐 매 달 쉽게 모을 수 있는 돈이 나에게는 아니구나 싶은 생각에 서글퍼지기도 하고, 얼마의 돈을 버느냐보다 더 중요한 건 얼마나 아껴서 잘 쓰느냐인 것 같다는 깨달음을 얻기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80만원의 거금을 들인 덕에 내가 좋아하는 주변 사람들과 집에서 같이 도란도란 밥먹고 이야기도 나눌 수 있고, 예쁜 카페 대신 집에서 일을 하기도 하며, 보기만 해도 배부른 인테리어 덕에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나에게 힐링이 된다. 그리고, 회사는 나에게 바라는 것이 있지만 집은 그 자체로 나에게 온전한 휴식을 주니 가장 고마운 존재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매 달 나가는 월세와 충동적으로 올라오는 퇴사 욕구 사이에 오늘도 갈피를 못 잡고 있지만, 어쩌면 이 모든게 다 자취생의 숙명이 아닐까. 이 배움을 계기로 다음엔 조금 더 합리적인 집을 선택하면 되고, 충동적으로 퇴사하고 싶을 때 한번쯤 고민할 수 있는 인내심을 기르게 되기도 한다. 그렇게 하나씩 배워가는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