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영화에는 부동산이 있다
감정평가사는 영화에서 도시를 본다
중국의 정치적 수도는 베이징이지만, 경제적 수도는 상하이입니다. 실제 상하이의 소득 수준이 베이징보다 높은데, 상하이에는 고액 연봉을 주는 기업이 많기 때문입니다. 좋은 회사를 다니는 고액 연봉자들이 많은 도시이니 소득 수준과 소비 성향도 높은 것이죠. 한마디로 많이 벌고 많이 쓰는 도시입니다. 외식 물가가 서울과 비슷한 수준입니다.
상하이에 대기업이 많은 이유는 경제특구가 있기 때문입니다. 외국 기업을 유치하고자 지정한 곳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중국 본토 대비 규제가 덜합니다. 설립 절차를 간편하게 만들고, 법인세나 부가세를 감면해주거나 임대료를 지원해주는 방식이죠. 마이크로소프트, 인텔, 테슬라 같은 테크기업들은 물론 제이피모건, 도이치뱅크, HSBC같은 금융기업들도 여럿 입주해 있습니다. 상하이 여행사진에서 빠지지 않는 '동방명주'가 있는 곳이 바로 경제특구인데, 상하이를 가로지르는 황푸강 동쪽 지역이라고 해서 '푸둥(浦東)'지역이라고도 합니다.
상하이 경제특구는 1990년대에 조성되어 30년만에 상하이를 놀랍게 성장시켰습니다. 그런데 경제는 급성장 할 수 있어도, 사람은 급성장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런 격차가 세대간의 차이, 계층간의 차이를 만들어내죠. 예를 들어 한국의 베이비부머 세대는 1970년대 경제성장의 혜택을 받아 열심히 일하고 저축해서 중산층이 될 수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중산층이라고 하면 대략 월 700만원의 소득, 순자산 10억 원 정도를 말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소비수준은 여전히 1970년대에 머물러 있습니다. 어린 시절의 절약이 몸에 베어 있기 때문이죠.
급격한 경제 성장에 따라 도시는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며 스펙트럼이 넓어집니다. 드라마에서 구자(배우: 통야오)는 상하이의 야경이 내려다보이는 고급 아파트에 사는 반면, 왕만니(배우: 장수잉)는 월세 140만원으로 엘리베이터도 없는 원룸에 살고 있죠. 왕만니는 상하이라는 대도시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인물인데, 월세 부담 때문에 상하이 외곽으로 이사를 떠나게 됩니다. 출퇴근은 힘들어졌지만 집이 더 넓고 월세가 싸기 때문이죠.
PIR(Price to Income Ratio)은 소득 대비 주택가격이 얼마나 높은지를 나타내는 지표입니다. 서울의 PIR은 10~15배 정도로 중국 도시들의 평균과 비슷합니다. 그런데 상하이는 PIR이 20배를 훌쩍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 소득수준은 서울보다 낮은데, 주택가격이 더 비싸기 때문입니다.
상하이에서 내 집 마련하기
주택도 하나의 상품일 뿐입니다. 소득이 높아져야 수요가 늘어나고 가격이 오릅니다. 그런데 소득 대비 가격이 가파르게 오른다는 건, 주택이 일반적인 수요의 수준에서 벗어났다는 걸 의미합니다. 더이상 주거 목적의 필수재가 아니라 하나의 투자대상이 되었다는 것이죠. 중국은 사회주의 국가로서 개인이 토지를 소유할 수 없지만, 건물에 대한 구분소유권과 토지의 사용권을 결합해서 거래가 이루어집니다. 한국의 아파트, 오피스텔, 다세대주택과 같은 집합건물이 건물의 구분소유권과 대지사용권으로 구성된 것과 사실상 동일하죠.
중국도 한국과 같이 가계 자산에서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습니다. 결혼과 함께 내 집을 마련해야 한다는 인식도 비슷하고요. 한국은 부동산 대신 주식 투자도 많이 하지만, 중국은 주식시장이 활성화되어 있지 않아서 부동산에 대한 쏠림 현상이 더 심합니다. 여기에 중국의 독특한 주민등록제도도 내 집 마련을 어렵게 합니다. 중국의 주민등록제도를 '후커우(호구, 户口)'라고 하는데, 마치 비자(VISA)처럼 다른 도시의 사람은 상하이의 후커우를 취득하기 어렵고 후커우 없이 주택을 살 수 없습니다. 기회와 성공을 위해 상하이에 왔지만 번듯한 직장과 집을 마련하기가 너무 어려운 거죠.
상황이 이러하니 중국에서도 '영끌'이나 '빚투'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극단적인 레버리지 투자는 자산가격의 상승 속도가 소득수준의 상승 속도를 추월할 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빠르게 돌아가는 러닝머신에서는 가만히 서있으면 뒤로 밀려나기 때문에, 밀려나지 않기 위해 소득에 레버리지를 더해 자산시장에 뛰어드는 거죠. 중국의 가계부채에서 주택담보대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이미 한국을 넘어섰다고 합니다. 모두가 살고 싶어하지만 서울보다 내 집 마련이 더 어려운 상하이입니다.
<겨우 서른> | 三十而已
넷플릭스, 2020
왕만니(배우: 장수잉)는 일과 성공을 위해 멀리 저장성에서 상하이에 왔습니다. 백화점 명품숍 판매원인 만니는 원룸에서 월세를 살며 성실하게 경력을 쌓아가지만, 비싼 월세와 결혼에 대한 부담으로 마음이 복잡합니다.
만니의 동갑 친구인 중산층 주부인 구자(배우: 통야오)와 중샤오친(배우: 마오샤오퉁)은 만니보다 먼저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뤘지만, 육아와 결혼의 일상에도 어려움이 있습니다. 각자 사정은 조금씩 다르지만 세 친구는 서로 위로하고 도우면서 서른의 홀로서기를 시작합니다.
"집은 빌린 것이지만, 삶은 자신의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