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영화에는 부동산이 있다
이촌향도(離村向都), '농촌을 떠나 도시로 향하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농업 기반의 사회에서는 농지가 가장 중요한 생계수단이기 때문에 사람도 농지를 따라 널리 퍼져 살아야 했습니다. 반면 제조업 기반의 사회라면 공장이 중요한 생계수단이기 때문에 사람은 공장 곁에 모여 살아야 하고요. 농업 기반 사회가 제조업 기반 사회로 바뀔 때, 사람은 농촌을 떠나 도시로 향하게 됩니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서비스업 기반의 사회라면 어떨까요? 같은 면적이라면 사무실이 공장보다 더 많은 사람을 수용할 수 있습니다. 사무실은 공장처럼 거대한 생산설비나 창고가 필요하지 않고 책상과 회의실만 있으면 되니까요. 서비스업 기반 사회는 도시에서도 사람을 더 모여 살게 만들었습니다. 사람의 수가 힘을 결정합니다. 서비스업은 제조업을 도시 외곽으로 밀어내고 도시 중심을 차지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대도시의 풍경입니다.
산업구조에 따라 같은 도시 내에도 계급이 생겨납니다. 경기도보다는 서울시가, 강북보다는 강남이 더 좋은 곳, 비싼 곳으로 인식되죠. 사람은 월급을 따라 직장을 따라 이동할 수 밖에 없으니 자연스럽게 사는 곳이 직업과 소득을 상징하게 됩니다. '어디에 산다'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알 수 있는 정도가 되었습니다.
'이촌향도'가 1970년대 산업화 시대의 서울을 상징한다면, '인서울'은 1990년대 위성도시와 함께 더욱 커진 서울을 상징합니다. 모두가 서울로 몰려들던 시기를 지나, 이제는 서울에서 밀려나는 시기에 이른 것이죠. 서울에서 직장은 구했지만 집을 구하지 못한 사람들이 1시간 이내에 통근이 가능하도록, 서울 근방에 조성한 주택지대가 바로 신도시입니다. 1기 신도시(1992)는 서울의 서쪽과 남쪽으로 고양일산, 무천중동, 군포산본, 안양평촌, 성남분당이 있고, 2기 신도시(2007) 파주운정, 김포한강, 인천검단, 성남판교, 수서위례가 있습니다. '인서울'에는 언젠가 서울에 집을 마련하겠다는 도시적 욕망이 담겨 있습니다.
아직 소득은 낮지만 당장 집이 필요한 시기가 신혼 초입니다. 돈은 없지만 서울을 포기할 수 없는 신혼부부라면 아파트 대신 빌라를 두고 고민하게 될 겁니다. 같은 지역에서도 주택의 종류로 계급이 나뉘는 순간입니다. 서울 아파트를 향한 신도시 아파트와 서울 빌라의 욕망이 서울 아파트 가격을 밀어올리고 있습니다.
일본 도쿄는 한국 서울보다 면적은 3배 이상 크고 인구는 1.5배 많습니다. 집을 가진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비율도 큰 차이는 없습니다. 도쿄는 월세가 많고 서울은 전세가 많은 정도의 차이입니다. 그런데 도쿄에서 '서울 아파트'와 같은 고층 공동주택은 '타워맨숀'이라고 부릅니다. '서울 빌라'와 같은 저층 공동주택은 오히려 '아파토'라고 부르고요. 서울에도 1970년대 지어진 초창기 아파트들은 '맨션'이나 '맨숀'이라는 명칭을 붙인 곳이 많습니다. 일본의 영향을 받아서 고급주택임을 강조하려고 했던 것이죠.
도쿄에 오면 뭔가 달라질 줄 알았다
드라마에서 주인공 쇼타는 도쿄의 동쪽에 있는 '치바현 우라야스시' 출신입니다. 한국으로 치면 서울 동쪽에 있는 경기도 구리시나 남양주시 정도가 됩니다. 쇼타는 도쿄에 있는 대학에 다니면서도 우라야스를 떠나지 않았지만, 도쿄에 사는 여자친구를 사귈 때마다 알 수 없는 열등감을 느낍니다. 대학 졸업 후 쇼타는 대기업 무역상사에 입사하면서 도쿄로 이사를 옵니다. 입사 3년차에는 연봉 550만엔(약 5,000만원)을 받으며 월세 10만엔(약 100만원)의 아파토에 살았지만, 회사에서 승진하며 타워맨숀으로 이사하게 됩니다. 쇼타의 여자친구도 도쿄 시나가와구(서울 용산구 정도)에 사는 카스미에서 토요스(서울 서초구 정도)에 사는 사유리로 바뀌게 되고요.
저는 도시적 욕망이 기회에 대한 욕망이라고 생각합니다. 인생의 가치는 지역과 무관하지만, 선택의 기회는 도시가 월등히 많으니까요. 무언가를 선택하면 다른 무언가를 포기하게 되죠. 선택과 포기를 반복하면서 나라는 사람도 조각상처럼 더욱 분명해지고요. 도시의 치열한 경쟁을 통해 성공을 얻을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어디서 무엇을 하면 살아야 할지는 분명해진다는 생각이 듭니다.
<도쿄남자도감> | 東京男図鑑
KTV 드라마, 2020
쇼타(배우: 타케자이 테루노스케)는 대학 입학을 계기로 도쿄에서 생활하게 됩니다. 대학을 졸업한 뒤 대기업, 벤처회사를 거치면서 도쿄에서 성공에 대한 욕망을 키우지만, 결국 20년간의 도쿄 생활을 정리하고 고향인 치바현 우라야스시로 돌아와 창업을 하게 됩니다.
“여기서 도쿄까지는 전철로 40분. 도쿄에 오면 뭔가 달라질 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