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텔에서 한 달 살기 | 플로리다 프로젝트

모든 영화에는 부동산이 있다

by 오성범

감정평가사는 영화에서 도시를 본다

요즘은 한국도 호텔이 많지만, 2010년 이전까지는 호텔보다 모텔, 여관이 더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 당시 조선호텔, 힐튼호텔은 일반인들이 이용하기에는 부담스러운 최고급 시설이었습니다. 그러다 2010년 이후 중국을 중심으로 외국 관광객이 급속하게 늘어나자 「관광숙박시설 확충을 위한 특별법」을 제정해 호텔을 짓기 쉽게 하고 용적률 인센티브도 줍니다. 외국 관광객을 모텔, 여관에 재울 수는 없었나봐요. 이때부터 호텔이 급격하게 늘어나면서 종류도 다양해졌죠. 고급 호텔만 고집하던 롯데호텔, 신라호텔도 중급 비즈니스호텔인 롯데시티, 신라스테이를 출시했고요. 자연스럽게 모텔과 여관을 대체하기 시작했습니다.


모텔(Motel)은 원래 미국에서 온 단어인데, 자동차(Motor)와 호텔(Hotel)의 합성입니다. 직역하면 자동차도로 옆에 있는 숙박시설을 뜻해요. 미국처럼 국토가 넓고 인구밀도가 낮은 나라들은 대중교통(철도)의 가성비가 나오지 않기 때문에, 개인교통(자동차)에 의존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한국처럼 일일 생활권도 아니기 때문에 자동차로 먼 거리를 이동하다보면 하루 밤 숙박이 필요할 수 있겠죠. 그게 바로 모텔입니다. 한국도 수도권 외곽 국도변에는 모텔도 식당도 있는 것처럼요.


영화는 미국 플로리다의 한 모텔에 사는 가족들의 이야기입니다. 어쩌다 하루 밤 단기 숙박을 하는 곳에서 장기 숙박을 해야 하는 경제적인 문제가 있고, 수시로 이웃이 드나들고 바뀌면서 일어나는 크고작은 갈등이 있습니다. 한국은 서울과 같은 대도시가 아니라도 아파트를 선호하지만, 미국은 뉴욕과 같은 대도시를 제외하면 단독주택을 선호합니다. 누군가와 한 건물 안에서 같이 산다는 것이 그리 달갑지 않겠죠. 190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미국에서는 모텔이나 아파트가 '사회문화적 악의 도가니', '부도덕하고 불건전한 삶', '질병을 퍼뜨리는 곳', '범죄행위에 노출되기 쉬운 곳'으로 여겨졌다고 합니다. 모르는 사람들과 복도, 계단, 로비를 공유하는 것은 가난한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이라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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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배경인 플로리다의 한 모텔


플로리다, 휴양지의 비극


더구나 플로리다는 유니버설 스튜디오, 디즈니월드 같은 유명 관광지가 있는 대표적인 휴양지입니다. 미국 남동부에 있어서 연중 날씨가 따뜻한데, 북부지역에서 여름 휴가를 오거나 은퇴하고 이주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농업과 관광산업이 잘 발달해 있고요. 그런데 관광은 기후와 경기에 민감한 산업입니다. 날씨가 좋을 때는 관광객도 많고 일자리도 많고 소비도 활발하지만, 날씨가 좋지 않을 때는 관광객도 없고 일자리도 없고 소비가 줄어들죠. 관광객이 아닌 거주민에게는 굉장히 불안한 곳입니다.


미국에서는 이런 지역들을 묶어 '샌드 스테이트(Sand States)'라고 부릅니다. 플로리다, 아리조나, 캘리포니아, 네바다 같은 해안지역(모래사장) 도시들이 공통적으로 실업률이 높고 집값 등락도 심하다는 점을 꼬집어 말한 것이죠. 사람은 많지만 대부분 언제 떠날지 모르는 관광객, 연금 외에 소득이 없는 은퇴자, 별장을 찾는 부자 등 안정적인 수요자는 아니라는 것이죠. 수요가 유동적이면 집값과 일자리도 유동적일 수 밖에 없으니까요.


먼 나라만의 일은 아닙니다. 한국에서도 제주도나 강원도는 누구나 가고 싶고 살고 싶은 관광지이자 휴양지이지만, 정작 그곳에 사는 분들에게는 고충이 있습니다. 안정적인 일자리가 없으니 청년들이 없다는 것이죠. 강원도의 청년인구 비중은 약 29%로 전국 최하위입니다. 제주도도 약 32%로 평균 수준이고요. 오히려 가장 높은 곳은 소위 '노잼' 도시라는 세종과 대전으로 각각 40%, 37%로 서울보다 높습니다.


영화의 백미는 휴양지의 비극을 어른이 아닌 아이의 눈으로 바라본다는 점입니다. 일자리가 필요해 불법적인 일까지 해야하는 엄마와 달리, 일자리가 필요하지 않은 아이에게 따뜻한 플로리다는 그저 천국입니다. 영화의 부제 "디즈니월드 보다 신나는 무지개 어드벤쳐'는 드러내지 않을수록 더 드러나는 역설이라고 할까요. 저는 이 영화처럼 장소성을 잘 활용한 작품이 드물다고 생각합니다. 이거 도시 영화 맞아요.


<플로리다 프로젝트> | The Florida Project

션 베이커, 2018


6살 소녀 무니(배우: 브루클린 프린스)는 20대 미혼모인 엄마 할리와 디즈니월드 근처의 모텔에서 살고 있습니다. 할리는 제대로 된 일자리도 없이 생계가 막막하지만, 딸 무니는 친구들과 하루 종일 장난과 모험을 즐기며 아이들만의 세계를 만끽합니다.

상황이 어려워진 할리는 결국 불법적인 일에 손대기 시작하고, 결국 아동보호서비스가 개입해 무니와 떨어질 위기에 처하는데..


"난 어른들이 울기 직전일 때는 바로 알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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