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영화에는 부동산이 있다
84제곱미터는 소위 '국평(국민평형)'이라고 하는 일반적인 주택 면적입니다. 아파트 면적은 보통 전용면적과 공용면적을 합친 공급면적을 기준합니다. 30평짜리 아파트에 산다고 하면, 실제 전용면적은 30평이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국평 84제곱미터(약 25평)는 전용면적을 말해요. 방 3개, 화장실 2개, 거실과 주방으로 구성되어 3~4인 가구에 적합한 크기죠.
한국은 전체 주택의 65%가 아파트입니다. 대략 1,300만 호 정도 되는데, 이 중에서 국민주택규모에 해당하는 전용면적 60~85㎡가 약 46%를 차지합니다. 그 다음으로 전용면적 40~60㎡가 약 30%를 차지하고요. 전용면적 85~100㎡인 아파트는 전체의 2% 정도 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정작 방 3개짜리 국민주택규모 아파트에 살아야 할 3~4인 가구는 전체 가구의 32% 정도 밖에 되지 않습니다. 조금 양보해서 2~3인 가구로 보아야 국민주택규모 46%와 유사한 48%가 나오고요. 결혼을 하지 않거나 아이를 낳지 않는 1~2인 가구의 비율이 절반을 넘어 65%를 차지하면서 국민평형의 크기를 줄여야 하지 않느냐는 주장도 나오고 있습니다.
즉 전용면적 84㎡의 아파트는 '살기에 적합한' 아파트이기 이전에 '사기에 적합한' 아파트인 것이죠. 가장 많이 만들었고, 가장 많이 사고파니까요. 실제로 전용면적 60~85㎡는 전체 아파트 거래에서 평균 50%, 많게는 60%까지 차지하는 것으로 나옵니다. 공급비중은 46%인데 거래비중이 50%를 넘으니 그만큼 다른 평형 대비 거래가 잘 된다는 의미입니다.
살기에 적합한 아파트, 사기에 적합한 아파트
영화에서 우성(배우: 강하늘)은 '영끌'로 아파트를 매입합니다. 다들 아시는 것처럼 영끌은 무리하게 대출을 받아 투자하는 것을 말합니다. 여기서 '무리하다'를 따지는 기준은 매월 대출 이자를 갚을 수 있는 소득인데, 아파트에 자가 거주하는 우성은 월급 외에 대출 이자를 갚을 소득이 없습니다. 대출 이자를 마련하기 위해 퇴근 후 배달 아르바이트를 뛰고 심지어 전기요금을 아끼려 불도 켜지 않고 생활합니다.
레버리지를 활용한 투자는 기본적으로 투자수익률이 대출이자율보다 높을 때 가능합니다. 즉 대출이자율보다 아파트값 상승률이 더 높아야 하죠. 그런데 대출 이자는 정해진 이자율에 따라 정확하게 계산되어 매월 빠져나가는 반면, 아파트 가격은 얼마가 올랐는지 정확하게 알 수도 없고 아파트를 팔기 전까지는 내 주머니로 들어오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84㎡처럼 거래도 자주 이루어지고 언제든 다시 팔 수 있는 아파트를 산 것이죠.
경제학에는 할당 효율성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누구나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이익을 추구하기 때문에 특정 시장에서 초과이윤이 지속되기 어렵다는 이론입니다. 아파트 가격이 내 월급보다 빠르게 오르면 내 월급으로 아파트 투자를 하는 것이 합리적이죠. 영끌이나 빚투는 자산가격이 소득수준을 추월했을 때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문제는 나 말고 다른 사람들 역시 월급으로 아파트 투자에 뛰어든다는 것이고, 가격이 일정 수준 이상 오르면 어느 시점에서 누군가는 수익을 실현하기 위해 아파트를 팔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아파트 가격이 조정되는 그 시기에 누군가는 수익을 실현하고 누군가는 손실을 보도록 되어 있죠. 아직 실현되지 않은 손실이라고 하더라도요.
합리적인 투자자의 게임은 누군가의 손실이 누군가의 수익이 되는 것으로 끝이 납니다. 결국 남는 것은 비합리적인 투자자만 남게 됩니다. 당장의 아파트 가격이 오르고 내리는 것에 크게 영향받지 않으면서 월급의 일부로 대출을 조금씩 갚아나갈 수 있는 사람들이겠죠.
<84제곱미터>
김태준 감독, 2025
30대 직장인 우성(강하늘)은 전용면적 84㎡ 신축 아파트를 ‘영끌’로 장만합니다. 내 집을 마련했다는 기쁨도 잠시, 첫날 밤부터 의문의 층간소음이 들려오면서 아파트 주민들과 갈등이 시작됩니다.
우성은 소음의 진원지를 쫓아 윗집을 찾아 올라가고 충격적인 진실을 알게 되는데…
"아파트가 무슨 죄야? 결국 사람이 문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