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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영화에는 부동산이 있다

by 오성범

모든 영화에는 부동산이 있다

아파트처럼 여러 세대가 함께 모여 살다보면 크고 작은 갈등이 있기 마련입니다. 층간소음이나 주차가 가장 일반적인 문제이고, 복도 같은 공용공간에 자전거 같은 개인 물품을 두었다가 갈등이 빚어지기도 합니다. 당사자들끼리 원만하게 해결되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제3자의 중재가 필요하기도 합니다.


중재 역할을 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주체는 아파트 관리사무소일 겁니다. 관리사무소는 갈등의 한복판에 놓여 있기 때문에 입주민들과 충돌이 있을 수 밖에 없는데 이 과정에서 입주민의 '갑질'이 사회적 문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사실 관리사무소는 행정기구이고 관리사무소를 운영하는 실질적인 주체는 입주자대표회의입니다.


300세대 이상의 대규모 공동주택은 「공동주택관리법」에 따라 입주자대표회의라는 자치기구를 두도록 하고 있습니다. 300세대보다 적더라도 엘리베이터나 중앙난방 같이 공동으로 관리해야 할 시설이 있는 경우에는 입주자대표회의를 구성해야 하고요. 입주자대표회의는 입주민들이 낸 관리비로 운영되는데 이 규모가 연간 30조에 달합니다. 300세대를 기준으로 매월 30만원의 관리비를 낸다고 하면 연간 관리비 규모가 10억이 넘으니까요. 아파트 관리비를 징수하고 사용하는 과정에서 자금을 사적으로 유용한다던지 관리 업체 선정에 개입한다던지 하는 문제들이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입주자대표회의가 단순히 아파트를 관리하고 운영하는 것을 넘어 입주민들이 아파트를 사고 파는 것까지 관여할 때 발생합니다. 특정 가격 이하로는 아파트를 팔 수 없도록 담합하는 것이죠. 개별적인 차원을 넘어 입주자대표회의 명의로 공식 안내문을 게시하거나 공인중개사의 중개활동을 집단적으로 방해하거나 하는 사례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2019년 이런 행위를 금지하도록 공인중개사법을 개정하기도 했습니다.


입주자대표회의와 분양대행사


영화 <드림팰리스>에서는 아파트를 싸게 '파는' 것이 아니라 싸게 '사는' 것으로 갈등이 시작됩니다. 아파트가 분양에 실패하고 잔여 세대를 할인분양하는 과정에서 할인 전 분양가로 분양받은 입주자대표회의와 할인 분양을 받은 입주민들과 갈등이 발생합니다. 입주자대표회의는 "할인분양은 곧 살인분양"이라고 주장하며 새로운 입주민들을 비난하고 심지어 이사를 방해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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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주자대표회의와 분양대행사


영화의 다른 한 축은 아파트 분양을 맡은 분양대행사입니다. 혜정(배우: 김선영)은 입주 하자마자 욕실에서 녹물이 나오는 것을 보고 아파트를 판매한 분양대행사를 찾아가 따져묻지만 제대로 된 답을 얻지 못합니다. 사업 주체인 시행사, 시공 주체인 건설사, 부실시공을 책임져야 할 그 누구도 없는 곳에서 '분양을 대행한 사람'과 '분양을 받은 사람'의 답없는 대화가 이어집니다.


주인공 혜정은 영화 내내 어떤 메아리도 돌아오지 않는 공간들을 공전합니다. 회사 앞 농성장은 남편의 산업재해에 침묵하고, 분양대행사는 부실시공에 침묵하며, 입주자대표회의는 아파트 미분양에 침묵합니다. 정작 책임자는 없는 그 공간에서 피해자들만 남아 서로를 물고 뜯습니다. 농성을 하는 사람과 멈춘 사람, 분양을 대행한 사람과 분양을 받은 사람, 최초분양을 받은 사람과 할인분양을 받은 사람의 싸움만 남아 있습니다.


이기심이 언제나 개인이 아닌 집단의 형태라는 점도 생각을 많아지게 합니다. 집단이 개인의 수치심을 보호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내가 한 일이 아니라 입주자대표회의에서 결정한 일, 내가 한 일이 아니라 시공사에서 한 일이 되는 것이죠. 집단이기주의는 곧 집단에 숨어 있는 개인의 이기심이라고 할까요.



<드림팰리스>

가성문 감독, 2023


혜정(김선영)과 수인(이윤지)은 산업재해로 남편을 잃고 진상규명을 위해 회사 앞에서 천막농성을 합니다. 농성이 길어지면서 혜정은 회사와 합의하여 합의금을 받고 싸움을 멈췄지만 수인은 다른 유가족들과 농성을 계속합니다.

혜정은 합의금으로 신축 아파트 '드림팰리스'를 분양받아 새 삶을 시작하고 친한 동생이었던 수인을 설득합니다. 처음에 거절하던 수인도 어느새 드림팰리스를 꿈꾸게 되는데…


"입주민이 돼가지고 우리 아파트 미분양 난 거 천지사방에 광고하고 싶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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